수사 방해하는 정권의 실세 존재, 검찰은 발칵

검찰이 전 과장의 여동생 집에서 발견한 불법사찰 문건에는 누가, 언제, 누구를, 어떻게 사찰했는지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을 뿐 아니라 '청와대 VIP'에 대한 충성맹세까지 담겨 있다.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최근 400여건의 사찰문건을 추가로 확보해 수사에 활기를 띠고 있다. 검찰은 이 사건의 핵심인물인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의 입을 열어 수사의 속도를 높이고 싶어하지만,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진 전 과장은 아직 제대로 된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며 "진 전 과장이 양심 선언이라도 하게 되면 확보한 문건보다 훨씬 큰 핵폭풍이 불 것으로 보이지만 진 전 과장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는 내부대로 불법사찰 수사 자료의 외부 유출로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한다. 내부 기밀로 다뤄져야 할 중요 수사자료, 즉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불법사찰 관련 문건이 외부로 유출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사건"이라며 유출자 색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사찰 사건이 정치권뿐 아니라 검찰도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진 전 과장의 자살폭탄

진경락
검찰이 진 전 과장의 여동생 집에서 발견한 불법사찰 문건에는 불법사찰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그 안에는 누가, 언제, 누구를, 어떻게 사찰했는지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을 뿐 아니라 '청와대 VIP'에 대한 충성맹세까지 담겨 있다.

핵심은 VIP가 직접 불법사찰 내용을 보고 받았는지, 그리고 사찰을 지시하고 주도한 인물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검찰은 문건 내용과 함께 진 전 과장이 아직 털어놓지 않고 있는 진술을 받아내 사건의 실마리를 풀겠다는 계획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일종의 '플리바기닝'(유죄협상제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진 전 과장은 자신에 대한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주변 지인들에 "(권력 핵심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으면 모든 것을 다 불어 버릴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믿었던 윗사람들의 외면으로 궁지에 몰린 진 전 과장이 차라리 검찰과 협상을 하려 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럴 경우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몰려올 게 분명하다. <주간한국>은 지난 2,421호(2012년 4월 23일자)를 통해 "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양심선언을 고심 중"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실제로 검찰이 여동생 집에서 찾아낸 사찰문건을 놓고 "진 전 과장이 양심선언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진 전 과장이 검찰에서 제대로 진술을 하지 않고 있어검찰이 설득 중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조건을 제안하고 있지만 진 전 과장은 여전히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진 전 과장의 양심 선언 가능성에 대해서는 엇갈린다. "이미 진 전 과장이 부분적으로 양심 선언을 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 있는 반면 "진 전 과장은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으며 검찰은 진 전 과장이 어떤 내용을 자백할지 내심 우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진 전 과장의 입을 통해 어떤 말이 나오는가에 따라 검찰이 VIP에 대한 수사를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의 다음 타깃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말도 돌고 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검찰이 곧 공직윤리지원관실의 A씨를 불러 조사할 계획"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또 "검찰 수사의 종착점이 대통령실장이며 VIP까지는 수사 선을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전망이다.

수사 방해하는 세력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발견한 문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패닉 상태에 빠졌다.

한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이 문건이 밖으로 유출된 내막이 석연치 않다. 의도적인 구석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 소식통은 "최근 불법사찰 문건이 대량으로 압수됐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는데, 검찰이 발칵 뒤집혔다"며 "누군가 의도적으로 외부에 문건을 통째로 전달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도 같은 내용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입수한 불법사찰 문건이 정치권에 흘러 들어간 것을 두고 여러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며 "민주통합당은 언론에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분량의 문건을 입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문건의 외부 유출과 관련, 검찰 주변에서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한 켠에서는 "누군가 검찰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한다. 또 다른 쪽에서는 "VIP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이번에도 검찰의 부실수사가 우려돼 누군가 선제적으로 검찰 수사 내용을 폭로한 것"이라고 관측한다.

정치권에서는 일단 전자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검찰은 현재 저축은행 퇴출 로비, 파이시티 특혜 인허가 수사 등 MB 측근 및 권력 실세들을 상대로 비리 수사를 벌이고 있다. 권력 실세들에 대한 이런 수사들을 국민들로부터 가리기 위해, 이미 흘러간 이야기인 불법사찰의 증거인멸 수사를 의도적으로 키우려 획책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같은 의혹 제기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지난 18일 검찰은 정권 핵심 실세가 연루된 파이시티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건의 심각성에 비해 검찰이 이처럼 빨리 수사 결과를 내놓은 것이 이례적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또 최근 공개된 불법사찰 문건의 내용은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킬 만한 내용이지만 실질적으로 핵심을 가려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문건의 내용은 큰 의미가 없다. 사찰이 있었다는 것을 밝히는 증거로는 쓰임새가 있어도 누가, 어떤 목적에서 사찰을 기획하고 지시했는지를 밝히는 증거로는 부족한 면이 있다"며 "청와대 VIP에 대한 충성 맹세도 있지만 충성을 맹세했다는 것만으로는 사건의 핵심을 증명하기는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불법사찰 문건 유출을 두고 "검찰 고위인사나 정권 핵심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각에서는 "누군가 이 사건에 여론의 관심을 집중시켜 이상득 박영준 최시중 등 권력핵심에 대한 검찰 수사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야권에서는 검찰이 권력실세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나 무혐의 등으로 면죄부를 줄 경우, 수사중인 권력비리 모든 사건이 특검으로 갈 수도 있다며 엄정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