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비산 위험 KCC수원공장터
문제가 발발한 KCC수원공장터는 1969년 이후 35년 동안 1,000만톤의 석면 시멘트 제품을 만들어온 국내 최대의 석면공장이 있던 곳으로, 2010년부터 백화점과 주상복합건물을 짓기 위해 해당 공장을 철거 중이다. KCC는 철거 과정에서 5만여 톤의 석면폐기물이 묻혀있는 것을 확인, 지난 3월부터 노동부와 수원시의 허가를 받아 석면폐기물 처리공사에 들어갔다.
이 석면폐기물 검출 논란은 KCC가 자발적으로 처리에 나선 게 아니라 수원 시민단체들이 해당 사업장을 노동부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해체 공사 초기부터 안전대책확보를 문제 삼았던 ‘KCC수원공장 석면문제 시민대책위’(이하 시민대책위)는 석면폐기물 해체 및 제거작업이 한창인 KCC수원공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반사항을 담은 사진 자료와 고발장을 지난달 27일 노동부에 접수했다. 관련 사진에는 근로자들은 방진복, 마스크 등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 석면 비산위험이 있는 슬레이트가 비닐 포장 없이 노출된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특히 환경단체들이 관련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KCC수원공장터 석면폐기물 검출 논란은 구체화됐다. 수원환경운동연합과 환경보건시민센터, 서울대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은 지난 8일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수원KCC공장 석면조사보고서’(이하 보고서)를 발표했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들어오면 폐암, 악성중피종암, 석면진폐증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지난해 말 유명을 달리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사인도 석면으로 인한 흉막섬유종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 모든 종류의 석면사용이 금지됐다.
이와 관련, 환경보건시민센터 측은 “즉시 공사를 중지하고 석면폐기물 처리 전 과정에 비산방지조치를 취하라”며 “그간의 공사로 인해 오염된 주변환경에 대한 정밀조사를 실시하고 현장작업자와 인근 지역 시민들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억울하다” KCC 해명에도…
환경단체들의 보고서 공개에 KCC 측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폐기물 처리지침에 따라 석면을 처리하고 있으며 보고서의 내용대로 기준치 이하(0.25%)의 미미한 슬레이트 성분만이 검출되는 등 토양환경보전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없다는 입장이다.
KCC 관계자는 “수원역 근처는 자동차가 많아 평소에도 타이어 분진 등에서 나오는 석면이 검출되는 지역”이라며 “KCC수원공장터에서 나온 석면폐기물이 인근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놀이터까지 쌓여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오래 전에 매장됐던 석면폐기물 문제가 터져 우리로서도 난감하다”며 “안전한 공사를 위해 석면전문감리기관에 공사 전반에 대한 감리를 맡겼고 매일 공사현장과 인근 지역에서 공기질을 측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론을 위해 KCC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공사현장에서는 비산방지를 위해 습윤장치를 가동하고 있으며 전 현장에 대해 덮개를 덮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KCC 측의 설명에도 환경 전문가들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작업 중인 석면폐기물 해체 업체가 저가 낙찰로 인한 부실작업 의혹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감리기관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점, 석면은 다른 발암물질과 마찬가지로 역치가 없어 옅은 농도에서도 충분히 위험할 수 있다는 점 등 여전히 위험성은 남아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KCC 관계자는 “현재 선정된 업체는 환경부에서 인정하는 토양정화 기술로 환경부장관상까지 받은 업체”라며 “이번 일을 위해 일본, 영국, 네덜란드 등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습득을 받았다”고 반박했다.
친환경기업 기치 바닥에
KCC수원공장터 석면폐기물 검출 논란이 KCC측에 더욱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KCC가 그동안 친환경기업을 표방해 왔기 때문이다. KCC는 그동안 페인트, 보온단열재, 흡음재, 바닥장식재, 천장마감재 등 100개가 넘는 제품군에서 친환경마크를 획득했다. 지난해에는 ‘자원순환 선도기업’으로 선정, 환경부장관상을 2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친환경 기치를 내세우던 KCC로서는 지난 3월 울산공장 폐기물 보관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로 대기오염을 일으켰다는 비난을 받은 데 이어 연달아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 난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부산지역 석면공장 주변의 피해 주민이 해당 기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한 것도 KCC로서는 부담이다. 지난 10일 부산지법 제6민사부는 석면공장인 제일화학 근처에 살다가 석면중피종으로 숨진 김모씨(사망 당시 44세)와 원모씨(사망 당시 74세)의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제일화학에 60%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석면공장에서 석면이 상당 정도로 공기 중에 날아다녔다는 점, 악성중피종 발발 원인의 80~90%가 석면인 점을 종합할 때 제일화학 측에 60%의 책임을 지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유사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 판결은 KCC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만약 수원역 근처에서 악성중피종을 포함한 석면관련 질병 환자가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을 피해가기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
공사 중단에 피해 소송 우려
이번 논란은 KCC수원공장터에 건설 중인 롯데종합쇼핑몰 건설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수원시는 석면안전관리법에 비춰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을 경우 해당 공사 중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친 바 있다.
현재 수원시는 KCC수원공장터에서 나온 석면과 비산먼지 등에 대해 사전 조치한 뒤 오염예상지역 정밀조사를 추진키로 하고 환경부를 위시한 외부전문기관에 조사를 의뢰한 상태다. 환경부 관계자는 “KCC 내부자료가 포함돼있어 회의 및 조사자료를 공개할 수는 없다”며 “추후 정돈된 보고서를 통해 발표하겠다”고 전했다.
만약 외부전문기관 조사 결과, 석면폐기물 검출이 확인되면 석면안전관리법에 따라 후속조치가 취해질 방침이다. 최악의 경우 관련 공사가 아예 중지될 수도 있고 최소한 비산먼지가 해결된 후에나 공사가 재개, 내년 말 완공 예정인 공사 일정이 상당 기간 지연될 전망이다.
환경단체들의 사후 대응도 주목된다. 이번 조사결과 발표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들을 물색, 소송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석면폐기물 검출로 문제가 된 유치원 바로 옆에 위치한 센트라우스 아파트 주민들은 벌써부터 집단행동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새다. 석면폐기물로 인한 피해사실이 과학적으로 규명될 경우 이번 문제가 일파만파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