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FRS 도입후 변화된 국내기업 회계국제회계기준 도입 1년 실적장부 기능 넘어서 경영 비전 수립 지표로재무제표 뒤섞이는 등 일부 기업 오용 시행착오

KT&G(사진)를 비롯한 14개 기업은 2009년부터 IFRS를조기 적용했다. 시행 착오를 미리 겪기 위한 조치였다.
지난해 국제회계기준(IFRS)이 시행되면서 국내 상장사 회계 담당자 업무가 부쩍 늘었다. 포춘코리아는 한국인 최초로 국제회계기준위원회(ISAB) 위원이 된 서정우 국민대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IFRS 도입 이후 달라진 회계 시장을 살펴봤다.

국제회계기준은 유럽식 IFRS와 미국식 US-GAAP으로 나뉜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자본 시장이자 최고 수준의 기업과 금융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이 US-GAAP식 회계 기준을 맞추기란 벅찰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한국은 각국 기업 환경에 맞게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는 IFRS를 선택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 관계자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게 바로 한국 기업의 회계 투명성이었다"면서 "IMF는 지원 조건 중 하나로 기업회계 투명성 개선에 대한 실질적인 노력을 주문했다. 이게 IFRS가 한국에 상륙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다"고 귀띔했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는 IFRS를 만드는 국제 회계전문기구. 서정우 교수는 3월 19일 ISAB 위원으로 선임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국내 상장기업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IFRS는 수시로 제·개정 작업이 이뤄진다"면서 "서정우 교수가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한국의 영향력 확대와 위상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IFRS를 도입한 국가는 약 130개국. 이 가운데 국제회계기준위원회에 전문위원을 파견한 국가는 13개에 불과하다. 영국 런던에서 상주할 예정인 서정우 교수는 전문위원 15명과 함께 IFRS 세부사항을 조율하면서 한국 기업을 대변하게 된다. 서 교수는 "한국 기업의 활동 범위에 국경이 사라진 지가 오래됐다. 영어가 세계인의 공용어라면 IFRS는 기업회계의 표준이다"고 설명했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신병오 이사는 회계 정책에 따라 비즈니스 전략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2009년에 IFRS를 도입한 한 중견기업 회계담당자는 "이제 회계가 단순히 기업 실적을 확인하는 장부 기능에 그치지 않고 경영 비전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지표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기업 정보를 정확하게 만드는 게 회계의 임무였다면 IFRS 도입 이후엔 회계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IFRS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은 중요해졌다. 서 교수는 "IFRS 시대의 재무책임자(CFO)는 영업과 마케팅 최고책임자와 함께 경영전략 부문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고 예상했다. 상장 기업 CFO들은 2007년부터 IFRS 재무제표 작성과 공시를 위한 준비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국제사회에선 이미 IFRS 도입 여부를 기업의 신용 평가 기준으로 삼는 분위기다. 실제로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S&P, 무디스, 피치는 IFRS를 기업의 신용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IFRS가 시행되면서 시행착오도 있다. 최근 코스닥 시장에선 상장사 실적을 개별재무제표(K-GAAP)로 발표해서 논란이 생겼다. 상장사가 IFRS를 기준으로 연결재무제표를 발표하고 있으나 기업이 자체 감사를 통해 공시하는 실적 변동은 개별 재무제표로 내놓는 게 현실이다. 회계 정보가 뒤섞여 있다 보니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재무제표가 세 가지나 혼재됐다는 의견도 있다. 안진회계법인 신병오 이사는 "연결재무제표가 주 재무제표이지만 개별재무제표와 별도재무제표 등을 따로 만들어 기업의 회계정보를 사용자들에게 공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장사 회계를 살펴보면 사업보고서는 연결재무제표로 작성하고 실적 변경 공시는 개별재무제표로 발표하고 있다.

회계 정보를 사용하는 투자자와 증권업계로선 답답할 노릇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IFRS가 도입되면서 투자자들이 기업에서 더 많은 회계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IFRS가 위험에 대한 공시를 많이 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 익명을 요구한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지금 투자자나 일부 애널리스트가 겪는 혼란은 익숙하지 않은 재무제표를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판단한다"고 말했다. I

KT&G를 비롯한 14개 기업은 2009년부터 IFRS를 적용한 사업보고서를 냈다. 삼성전자도 의무 적용 시기인 2011년보다 1년 앞서 2010년부터 IFRS를 도입했다. 아직까진 상장사에만 IFRS를 도입해야 하지만 2013년부터는 모든 기업이 회계장부를 IFRS 기준으로 작성해야 한다. 대기업은 회계기준을 바꾸는 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IFRS를 도입하는데 부담을 느낀다. 서 교수는 "상장사라 하더라도 중소규모의 사업체에선 CFO 담당자가 직원 1~2명을 데리고 회계업무를 수행하는 게 현실이다"면서 "예전과 비교하면 IFRS에선 공시할 내용이 2배 이상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이 회계 업무에 대한 투자와 인력을 양성할 때란 말이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