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민주통합당 손학규, 새누리당 정몽준, 민주통합당 정세균(왼쪽부터) 대선후보들이 참석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홍인기기자
손학규(65) 전 민주통합당 대표가 바빠졌다. 좀처럼 출연하지 않던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자주 나가고, 각종 정국 현안에 대해서도 짧지만 날카로운 비판도 마다하지 않는다.

손 전 대표는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이다. 교수,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를 두루 지낸 손 전 대표는 안정감과 경륜에서 다른 후보들에게 결코 뒤질 게 없다.

관건은 임팩트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는 '준비된 대통령', 2002년 노무현 후보는 '서민 대통령', 2007년 이명박 후보는 '경제 대통령'으로 유권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했고, 이는 필승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손 전 대표를 한마디로 표현할 만한 그 뭔가는 마땅치 않다. 대선 다자 대결 구도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안철수 서울대 교수,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에게 밀리는 이유도 손 전 대표의 임팩트가 약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손 전 대표 측 관계자는 "현재 지지율이 낮다고 해서 조바심을 내지는 않는다. 또 낸다고 해서 당장 달라질 것도 없다. 12월 대선까지 6개월 남았는데,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라며 "묵묵히 걸으며 유권자들에게 진솔하게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한길(오른쪽) 후보가 31일 전주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대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나서 이해찬(왼쪽) 후보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두르면 그르친다

손 전 대표는 지난해 4월 27일 분당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 승리로 한껏 고무됐었다. 제2의 강남이라는 분당은 민주통합당에는 부산보다 더 어려운 곳이다. 분당에서 승리로 손 전 대표는 한때 지지율을 20% 가까이 끌어올리며 박근혜 전 위원장과 1대1 구도를 형성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손 전 대표의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특히 지난해 연말 야권의 통합을 이끌고도 당의 주도권을 '전학생'인 문재인 상임고문,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에게 내주고 말았다. 또 통합 방식을 두고 의견차를 보이던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과는 등을 돌렸다.

절체절명의 위기처럼 보였지만 손 전 대표는 서두르지 않았다. 특정 지역이나 계파와 손을 잡는 데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4ㆍ11 총선 패배 후 손 전 대표가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등과 연대할 거라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양측이 불가근(不可近) 불가원(不可遠)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중한 행보와 함께 손 전 대표는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도 펼치고 있다. 그는 지난 23일에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전력이 주홍글씨처럼 발목을 잡을 때가 많았다"면서도 "그렇지만 그런 것들을 스스로 부정하지 않고 책임지고 가겠다"고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손 전 대표는 지난 27일에는 자신의 블로그에 작고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에세이 형식으로 전했다. 손 전 대표의 부친은 초등학교 교장이었으나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이후 생계를 맡은 모친이 동네에서 인분을 얻어가며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손 전 대표는 "어머니의 손발에 똥독이 올라 퉁퉁 부르터 있던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다소 감상적이라는 지적도 없지는 않았지만 손 전 대표의 인간적인 모습이 부각됐다는 평가가 더 많았다.

호남에서 희망 발견

손 전 대표뿐 아니라 문재인 상임고문, 김두관 경남지사, 정세균 상임고문 등 당내 대선 예비주자들은 하나같이 당대표 경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문 고문은 이해찬-박지원 연대의 한 축으로 분류되고 있고, 김 지사는 김한길 당대표 후보와 연합전선을 구축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해찬 당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역할 분담론에 비판적인 입장인 손 전 대표는 이 전 총리와 당대표 경쟁 관계에 있는 김한길 후보와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것으로 전해진다. 손 전 대표는 그러나 "손-김 연대는 추측일 뿐"이라고 손을 젓는다.

김 후보도 지난 31일 불교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경남에서 이겼을 때는 김한길 뒤에 김두관이 있다고 하더니, 충북과 강원에서 이기니까 김한길 뒤에 손학규가 있다고 그런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현재 구도는 '이-박 연대' 대 '반(反) 이-박 연대'로 재편된 양상이다.

그런 가운데 손 전 대표는 지난 22일 전남 화순에서 열린 광주 전남 당대표 경선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광주가 지역구(북구 갑)인 강기정 후보가 1위(488표)에 오른 가운데 김한길 후보가 2위(437표)였고, 대세론을 앞세우던 이해찬 후보는 3위(371표)에 그쳤다.

이해찬 대세론에 제동이 걸림과 동시에 호남의 대표를 자처하던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영향력에 한계가 확인된 셈이다. 경선에 앞서 손 전 대표가 최대 승부처 중 하나인 광주 전남에 많은 공을 들였음은 물론이다.

광주 전남 경선 직후 손 전 대표는 호남을 향해 크게 손짓했다. 손 전 대표는 지난 25일 불교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멀리 보는 비전을 갖고 한국의 미래를 준비한 분으로, 서민을 생각하며 민생정치를 펼쳤다"고 평가했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한 분이 누구이고, 닮고 싶은 대통령이 누구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손 전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호남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호남은 현재로서는 대선 후보 배출을 장담하기 어렵고, 경기 시흥 출신인 손 전 대표는 기댈 곳이 필요하다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결론은 제3의 길?

손 전 대표는 지난 21일 야권의 '진보행세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껍데기만 남은 진보"라며 진보진영의 구태에 일침을 가했다. '성찰적 진보'를 가야 한다는 게 손 전 대표의 일관된 주장이다.

정치권에서는 손 전 대표가 추구하는 길이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주창했던 '제3의 길'과 궤를 같이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손 전 대표는 2010년 8월 춘천 칩거생활을 정리하며 여러 소회를 밝히는 과정에서도 제3의 길을 언급했었다.

당시 손 전 대표는 "급증하는 복지 수요와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대응할 능력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 하는 것이 제 문제 인식의 출발점"이라며 "이러한 문제 의식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해법은 미국과 유럽을 풍미했던 제3의 길의 한국적 모색이기도 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영국의 블레어가 대처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당의 노선을 제3의 길에서 찾았고, 미국의 빌 클린턴이 레이거니즘을 이기기 위해 뉴 민주당 플랜을 추구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노동당 당수였던 블레어는 1997년 총선에서 '제3의 길(The third way)'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보수당에 압승을 거뒀다. 제3의 길은 블레어의 정책 브레인이었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제3의 길의 골자는 노동당의 중도좌파적 가치를 지키면서 한편으로는 경제 성장을 중시하는 보수당의 정책도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복지 분배 정책도 성장의 테두리 안에서 추진한다는 의미다.

손 전 대표는 성장 속의 분배, 지속 가능한 복지를 말한다. 이른바 제3의 길이다.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선 손 전 대표가 서서히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울산발 돌풍이 중부권서 태풍으로…
● 김한길, 이해찬에 역전승하나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 '친노 좌장' 이 후보와 1대1 구도 형성 '대성공' 결과 상관없이 사실상 승자


최경호기자


김한길(59)이 무섭다.

당대표 경선에 나선 김 후보는 이해찬 대세론을 단숨에 뒤흔들며 판도를 시계 제로로 만들었다. "이해찬이 대세론이라면 김한길은 대망론"이라는 말도 나온다.

지난 20일 울산 대의원대회에서 시작된 김한길 돌풍은 중부권으로 올라오면서 태풍으로 변했다. 김 후보는 지난 31일까지 총 10차례 지역 순회 투표에서 2,263표를 획득, 2,053표에 그친 이 후보를 210표 차로 앞섰다. 지역별 승패에서도 김 후보는 8승2패의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김 후보가 10차례 지역 대의원대회에서는 승리했다고 하지만 지역경선이 전체 투표의 30%밖에 안 되는 만큼 누구도 승부를 예단할 수 없다. 권리당원과 시민 선거인단이 참여하는 모바일 현장투표는 오는 5~8일 치러지며, 9일 전국 대의원대회 겸 서울 인천 경기 대의원 투표(전체 대의원 중 48.9%)를 통해 당대표가 선출된다.

김 후보는 '박지원 원내대표-이해찬 당대표-문재인 대선 후보'라는 이른바 역할 분담론에 반발하며 당대표 레이스에 나섰다. 경선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해찬 대 반 이해찬 구도'가 형성됐고, 특정 계파에 속해 있지 않은 김 후보는 이해찬 견제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승패를 떠나 김 후보가 당대 최대 세력인 친노(친 노무현)의 좌장인 이 후보와 1대1 구도를 만든 것만 해도 대성공이었다.

김 후보의 선전에는 문재인 상임고문과 경쟁 관계에 있는 김두관 경남지사, 손학규 전 대표 등의 힘과도 무관하지 않다. 김 후보는 친노의 아성이자 김 지사의 '영토'인 경남과 손 전 대표의 영향력이 큰 중부권에서 승리를 이어갔다.

최종 결과와 상관 없이 "김한길이 이번 당대표 경선에서 사실상 승리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린다. 경선에서 예상외의 선전으로 탄력을 받은 김 후보가 향후 전개될 대선 정국에서 어떤 형태로든 역할을 하게 될 것은 확실시된다.

김 후보는 1997년 대선 때 방송총괄팀장을 맡아 김대중 후보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2002년 대선에서는 미디어특별본부장으로 노무현 후보의 승리를 도왔다.

반면 김 후보의 선전이 곧 김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아니라는 해석도 적지 않다. 당대표 경선이 '이해찬 대 반 이해찬' 구도로 흘러간 데 따른 반사이익을 누린 것일 뿐, 김 후보 개인의 역량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김 후보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고 전제한 뒤 "당내에서는 '대선 승리를 생각한다면 누가 당대표가 돼야 좋은지 모르겠다'는 말도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18대를 거르고 4년 만에 여의도에 복귀한 4선 의원 김한길. 이해찬의 대세론에 맞서 대망론을 펼친 김한길이 최종적으로 어떤 위치에 서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