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왼쪽) 삼성전자 사장과 최지성(오른쪽) 신임 미래전략실장이 지난 1월 9일 개막한'CES 2012'에 참석, 삼성전자 부스를 살펴보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삼성이 갑작스럽게 그룹의 2인자를 교체했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을 신임 미래전략실장에 임명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유럽을 순방하며 느낀 위기의식에 이은 제2의 신경영발표로 이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김순택 전 미래전략실장에 대한 문책과 더불어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후계구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더 힘을 받고 있다.

신임 미래전략실장 최지성 부회장

삼성은 신임 미래전략실장에 최지성 부회장을 임명했다고 지난 7일 발표했다. 삼성은 이날 발표자료를 통해 “최 부회장은 빠른 의사 결정력과 공격적인 경영으로 TV와 휴대폰 사업을 세계 1위로 견인하는 등 삼성전자를 글로벌 선진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성장시킨 삼성의 간판 CEO”라며 “반도체, TV, 휴대폰 이후 그룹을 이끌 주력 신성장엔진을 조속히 육성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글로벌 경영감각과 빠른 판단력, 강한 조직 장악력과 추진력을 갖춘 최지성 부회장의 기용은 최적의 카드”라고 설명했다.

삼성 측에 따르면 전임 미래전략실장이었던 김순택 부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했으며 다른 직책을 맡지 않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계획이다.

최 부회장의 미래전략실장 임명에 따라 삼성전자의 대표이사는 부품사업(DS)부문장인 권오현 부회장이 대신하고 최 부회장이 맡고 있던 삼성전자 완제품(DMC) 부문은 별도로 총괄 CEO를 두지 않고 사업부별 대표 체제를 유지하는 형태로 운영할 계획이다. 현재 TV와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소비자가전(CE)은 윤부근 사장이, 모바일(IM) 부문은 신종균 사장이 각각 맡고 있다.

이재용 체제 완성 위한 포석?

갑작스러운 최지성 부회장 미래전략실장 임명에 대해 재계에서는 ‘위기관리 경영’ 방식을 즐겨 쓰는 이건희 회장 제2의 신경영발표로 연관 지어 해석하는 분위기다. 공교롭게도 발표 날짜가 1993년 이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라”는 내용의 신경영을 선포한 지 19주년이 되는 날이라서 이 같은 해석은 더욱 힘을 받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단순히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기 위해 이 같은 인사를 갑작스럽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보고 있다. 주로 연초에 진행돼왔던 삼성의 인사가 주주총회 기간도 아닌 이 시점에 갑자기 이뤄진 것은 분명히 다른 의미가 있다는 내용이다.

갑작스러운 인사 배경으로는 가장 먼저 전임 미래전략실장이었던 김순택 부회장에 대한 이 회장의 강수라는 설이 주목되고 있다. 최근 이맹희씨와의 소송이 불거진 데 대한 책임, 공정위 담합으로 세간의 비난을 받게 만들었던 책임 등을 전부 2인자였던 김 부회장이 지고 물러났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는 전망은 김 부회장이 미래전략실장에 임명된 2010년 11월부터 나온 바 있다. 2008년 이 회장의 퇴임과 함께 이학수-김인주 라인이 힘을 잃자, 삼성은 그룹 경영 실무를 총괄할 적임자 찾기에 나섰다. 당시 선택된 김 부회장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물론이고 이 회장에게도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난 지금,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은 결과적으로 이 회장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김 부회장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룹 내에서 인망이 높은 ‘덕장’이지만 카리스마가 부족한 김 부회장 대신 최 부회장을 미래전략실장으로 세운 이 회장의 포석이 눈에 띄는 이유다.

최 부회장의 중용과 그에 따른 권오현 부회장의 동반승진은 자연스레 그룹 계열사에 대한 장악력이 높아진 이재용 체제의 완성을 의미한다는 주장도 힘을 받고 있다.

최 부회장은 이재용 사장의 ‘멘토’로 통한다. 1981년부터 4년간 회장비서실 기획팀 근무를 통해 이 사장을 비롯한 오너일가를 보좌한 경험이 있는 데다 삼성전자에서도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아버지로 불리며 이 사장 또한 관련 분야에서 자주 조언을 구했다는 권오현 부회장도 최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이 사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까닭에 그동안 이건희 회장을 정점으로 김순택-최지성이 양옆을 받치는 삼성의 ‘스리톱’ 구조가 이제는 이재용-최지성-권오현 ‘스리톱’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룹 내외적으로 큰 위기를 맞이한 데다 아들의 후계구도 완성을 위해 던진 이건희 회장의 ‘신의 한 수’에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