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대선 때마다 으레 정치공학적 분석의 틀로 등장하는 북한과 미국이라는 변수가 올 12월 대선에선 여느 때와 달리 실체적 힘을 발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공공연히 12월 대선에 개입하겠다는 압박성 호언을 하고, 미국은 대선 주자들에 대한 뒷조사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미국 변수’는 최근 불거진 2007년 대선 때의 ‘가짜 편지’ 논란으로 새삼 주목받고 있다. 가짜 편지 문제는 2007년 대선의 최대 이슈였던 김경준 BBK(투자전문회사) 대표의 귀국과, 이에 따른 BBK 사건의 곁가지에 불과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파급력이 큰 불씨가 될 수도 있다.

가짜 편지는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김경준 기획입국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라며 제시했던 것으로, 홍준표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 ‘클린정치위원장’이 투표를 일주일 앞둔 12월 13일 ‘이명박 후보의 낙선을 위해 노무현 정권이 벌인 정치공작’이라며 전격 공개했다. 편지 내용은 BBK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경준(46ㆍ구속)씨의 감방 동료 신경화씨가 김씨에게 보내는 글로, 노무현 정권과 김경준씨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는 것처럼 읽힌다. 당시 BBK 사건으로 수세에 몰렸던 이명박 후보는 ‘가짜 편지’ 파문 덕에 상승세를 탔고,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 편지를 홍준표 전 대표가 지난 2일 검찰에서 은진수 전 감사위원(당시 클린정치위원회 BBK팀장)에게 받았다고 고백했다. 지난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BBK 역 정치공작을 펴기 위해 가짜 편지를 만들어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그런 역 공작의 ‘몸통’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거론되면서 가짜 편지 파문이 자칫 대선정국의 뇌관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김경준 전 BBK투자자문 대표
사실 BBK 사건의 본질을 추적하면 ‘김경준 기획입국설’의 허구성이 엿보인다. BBK 사건의 핵심은 이명박 대통령이 BBK의 실소유주인가 하는 것과 BBK 주가조작과 이 대통령 관련성 여부다. 국내 검찰과 금융감독원은 대선을 앞두고 BBK와 이 대통령이 실질적인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이보다 앞서 미국은 다른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정계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대선을 9개월여 앞둔 2007년 3월 20일께 미 FBI는 극비리에 김경준을 불러 MB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조사했다고 한다. 미 FBI는 이미 2004년 5월에 김씨를 체포했는데, 하필이면 대선을 앞둔 2007년 3월에 김씨를 다시 조사하고, 이명박 후보 측의 송환 연기 신청에도 불구하고, 대선을 한 달 앞둔 11월 김씨를 한국으로 보냈다. 김씨의 송환은 그해 대선에 큰 정치적 파장을 몰아온 건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 소식통은 당시 김씨의 한국 송환을 MB(정부)를 향한 미국의 ‘경고’라고 해석했다. 그는 “미국은 대선에서 이미 MB가 대통령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면서 “MB, 또는 MB정부의 ‘약점’을 알고 있다는 것을 김씨 송환을 통해 압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주장했던 ‘김경준 기획입국설’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히려 기획입국의 주체는 미국이라고 봐야 한다.

이와 관련, MB정부 초기에 촛불시위로 이명박 정부가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던 배경에는 미국과 MB(정부)와의 불편한 관계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 MB의 ‘약점’을 파고들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압박했고, 소고기 수입이 허용되자 촛불시위가 정국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미국이 12월 대선에 관심을 보이는 부분은 역시 대선 주자들의 ‘모든 것’이라고 한다. 또 미국이 대선주자를 검증하는 잣대의 기준은 ‘미국의 국익’으로, 그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주자가 누구인지를 다방면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예를 들어 여권의 유력주자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미국의 관점도 지극히 ‘미국적’이라고 한다. 보수성향의 박 전 위원장이 미국과 잘 통해 절대적 지지를 받을 것 같지만, ‘약점’이 별로 없어 미국으로서는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는 후보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박 전 위원장을 제외한 여권의 몇몇 후보는 ‘약점’이 있는 반면 대선 경쟁력이 약하고, 야권 후보 중에는 ‘약점’이 있으나 이념적으로 미국과 상치되는 바가 많아 선뜻 지원하기가 곤란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변수는 예전의 ‘북풍(北風)’처럼 특정 정당에 유불리하게 작용하기보다 사안별로, 후보에 따라 북한의 이익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전개할 것이라는 게 베이징 북한 소식통의 설명이다.

이 소식통은 일견 북한이 야권에 우호적일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오히려 ‘경제’를 쥐고 있는 여권에 관심이 많다고 전한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을 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사람들이 주축을 이룬 민주통합당에 대해 북한은 다양한 카드를 갖고 있다고 한다. 가령 야권의 최고 공격수로 박근혜 전 위원장을 연일 압박하고 있는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에 대해선 대북송금과 관련한 파일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노무현 정부의 핵심이자 현재 야권의 제1 후보인 민주당 문재인 의원에 대해서도 북한은 상당한 자료를 축적해 있다고 전했다. 내용은 주로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대화했거나 합의한 것들로 대선에서 공개될 경우 판도에 영향을 줄 정도로 파급력이 있다고 한다.

대선 주자들의 캠프가 속속 차려지고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 하는 상황에서 북한과 미국의 입김이 어떻게 뿜어져 나올지 주목된다.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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