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가 ‘선’자 돌림으로 계열사 맡아 내실 다지는 은둔의 경영자

재계 2위인 현대가 ‘선(宣)’자 돌림(3세) 경영인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언론의 공개를 꺼리며 은둔의 경영자로 남아있는 CEO가 있다. 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장남인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이다. 그동안 삼촌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비호 아래 자신의 입지를 굳게 다진 정 사장이 지속되는 업황 악화를 뚫고 회사를 정상화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자신이 인수한 곳에서 사장까지

1970년생인 정일선 사장은 경복고등학교와 고려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땄다. 정 사장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곳은 기아차였다. 1999년 기아차 기획실 이사로 입사한 정 사장은 2000년 인천제철로 옮긴 후 그해 말 삼미특수강(현 현대비앤지스틸)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실무를 맡는다.

정 사장은 자신이 인수를 주도했던 삼미특수강으로 2001년 자리를 옮긴 후, 2003년 영업본부장(부사장)을 거쳐 지난 2005년 대표이사(사장)를 맡아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다. 2001년 4월 현대차그룹 계열사로 편입된 현대비앤지스틸에는 한때 정대선 현대비에스엔씨 사장, 정문선 현대비앤지스틸 전무 등 정 사장 3형제 모두가 몸담기도 했다.

삼촌 정몽구 회장 애정 극진

정일선 사장의 부친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4남인 고 정몽우 회장이다. 40대에 현대알루미늄 회장을 맡았던 정 회장은 평소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결국 1990년 4월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친의 사망 이후 정 사장을 돌본 것은 현대가의 사실상 장남으로 평소 알뜰하게 가족들을 챙기는 것으로 유명한 정몽구 회장이었다. 정 회장은 정 사장의 기아차 입사부터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에 오르기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해왔다. 지난 2001년 고 정 명예회장 명의로 돼있던 청운동 소재 2층 주택을 상속받았던 것도 정 사장에 대한 정 회장의 각별한 애정을 보여준다.

또한 정 사장은 동갑내기 사촌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과도 어릴 적부터 친분을 쌓아왔다. 고려대학교 89학번으로 함께 학교를 다닌 두 사람은 어려울 때마다 서로에게 의지가 되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정 사장은 미국 유학시절 같은 대학 심리학과로 유학 온 여섯 살 연하의 구은희씨를 만나 1996년 결혼했다. 구씨는 구자엽 LS산전 회장의 딸로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손녀다. 비교적 소박한 혼맥을 유지해왔던 현대가에서 정 사장의 혼사는 대형 재벌가와 맺은 첫 사돈이라는 측면에서 입소문을 탔다.

공정거래 강조 뒤엔 일감 몰아주기

정일선 사장은 현대가에서도 공정거래에 대한 의지가 강한 편이다. 지난해 7월에는 회사 사보에 자신의 명의로 ‘공정거래 자율준수 선언문’을 실었고 전문을 회사 홈페이지 배너에 띄워 모든 직원 및 방문자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2009년 5월에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공정거래 준수에 대한 의지를 밝힌 후 두 번째다.

선언문에서 정 사장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공정한 거래와 상생이 화두가 되고 있다”며 “우리 회사는 공정거래와 소비자 보호의 자율적인 실천이 진정한 경쟁력임을 자각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혹시 있을지 모를 공정거래 법률 위반 가능성을 적발하기 위해 자체 감시체계를 강화하고 법률 위반자에 대해서는 스스로 적발 및 제재하여 법 위반 행위를 근절하려 노력하고 있다”며 “임직원 여러분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공정한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항상 공정거래법규와 규범을 철저히 준수해 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 사장은 지난해 개인회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현대머티리얼이 지난해 올린 총매출은 757억원이었다. 이중 현대비앤지스틸에서 올린 매출은 90억원으로 전체의 11.9%에 달한다. 현대머티리얼이 현대비앤지스틸에서 올린 2010년 매출이 16억원에 불과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1년 만에 562.5%나 늘어난 셈이다. 현대머티리얼은 1차 금속제품 및 금속광물 도매를 주업으로 하는 회사로 2010년 6월 설립됐고 그 해 8월 현대차그룹으로 편입됐다. 정 사장은 현대머티리얼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대표이사 사장도 겸하고 있다.

업황 악화 뚫고 상승할까

지난해 현대비앤지스틸은 8,288억원의 매출과 31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7,824억원의 매출, 41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2010년과 비교해 매출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크게 떨어졌다. 영업이익률 또한 5.24%에서 3.85%로 대폭 추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쟁 심화로 업황이 지극히 악화된 까닭이다. 정일선 사장도 올해를 열면서부터 위기극복 의지를 북돋았다.

지난 1월 초 열린 현대비앤지스틸 시무식에서 정일선 사장은 “스테인리스 업계는 사상 유례가 없는 장기 침체기를 맞이해 대형업체들이 서로 통폐합을 하고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한 뒤, “오늘날의 기업 경쟁력은 규모가 아니라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열린 조직문화와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력에 있다”고 기업의 나아갈 바를 제시했다. 이와 함께 정 사장은 2012년 현대비앤지스틸의 목표를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과 선진 조직문화 구축’으로 정했다.

그러나 정 사장의 강한 포부에도 불구하고 현대비앤지스틸은 올해도 여전한 업황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현대비앤지스틸은 올해 1분기 2,112억원의 매출과 5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6.55%, 66.34% 감소한 수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두 차례(8월 6.1%, 12월 6.5%)에 걸쳐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렸던 정부가 또다시 인상 의지를 보이고 있어 원가부담 또한 더욱 커진 상태다. 대표이사에 오른 지 채 7년이 되지 않아 스테인리스 시장의 25%에 달하는 점유율을 차지한 정 사장의 묘수가 기대되는 까닭이다.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

출생 1970년 10월 12일

학력 경복고등학교

고려대 산업공학과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학 석사

1999 기아자동차 기획실 이사

2000 인천제철 상무

2001 삼미특수강 상무

2003 비앤지스틸 영업본부장(부사장)

2005 현대비앤지스틸 대표이사(사장)

●현대가 가계도

故 정주영--------------- 故 변중석





故 정몽우----------------이행자





정일선--------정문선--------정대선

(부인 구은희) (부인 김선희) (부인 노현정)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