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고교생 투신자살 전말친구들이 옷 벗어던지고 "게임 똑바로 해" 시비끝 "있다가 학교로 나오라"K의 폭력 두려운 김군 "오늘 다 끝날 듯하네요" 메시지 남기고 옥상으로

투신자살한 대구 모 고교의 김모(16.1학년)군이 지난 2일 오후 수성구 모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에서 내리는 장면
대구 고교생 자살 사건 전말

A: 너 죽으려는 거 아니지.

김군: 오늘 다 끝날 듯하네요. 제가 죽든, 도망가려고요.

A: 꼭 싸워야겠냐.

김군: 나오래요. 밤에 학교로. 때리겠죠.

김군의 유서
A: 무슨 이유로.

김군: 깝쳤대요(까불거나 잘난체했다는 의미의 속어).

오랫동안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지난 2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 모 고교생 김모(16)군이 죽기 직전에 지인과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다.

A군 등 대화 상대는 김군이 운영하던 인터넷에서 운영하던 축구클럽 회원이었다. 이날 낮 12시24분부터 오후 4시19분까지 지인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던 김군은 4시5분쯤 집을 나섰다. 그리고 21분 뒤 인근 아파트 5층으로 올라가 2시간30분 이상 머리를 싸맸다.

'달리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김군은 결국 7시5분쯤 아파트 아래로 몸을 던졌다. 김군은 오후 6시에 가해 학생과 만나기로 했지만 극도의 공포감 때문에 약속장소에 나가지 못했다.

피어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등진 김군의 장례식이 지난 6일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거행됐다. 대구 화장장으로 운구된 김군의 관 위에는 한 번도 신어보지 않은 축구화 한 켤레와 유니폼 그리고 국제축구대회 입장권이 쓸쓸하게 놓여 있었다. 김군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선물한 것들이다.

김군의 아버지는 "아이가 누구 때문에 고통을 받았는지 꼭 밝혀야 한다"고 울부짖었다. 김군은 지난 2월에는 유서로 추정되는 글에 'XX초등학교 앞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돌려 보면 (내가) 매일 잡혀가는 모습이 나온다. 그래도 안 되면 거짓말탐지기를 써서라도 그 녀석들을 꼭 벌주라'고 절규했다.

비극의 6월 2일, 무슨 일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수성경찰서는 "김군의 휴대전화에서 지워진 기록들을 복원, 가해 학생 K(16)가 김군을 때리기 위해 불러낸 정황을 포착했다"며 "김군은 이날 하루 동안 수 차례 괴롭힘과 협박을 당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7일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K를 불러 조사한 결과 "김군을 괴롭혔다"는 자백을 받았다. 경찰은 그러나 김군 사망 이후 K가 극심한 공포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추후 의사의 소견을 참고해 가며 수사할 방침이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일 오전 9시쯤, 대구 수성구 모 초등학교 앞 CCTV에는 김군이 10여 명의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이 찍혔다. 축구경기를 마친 뒤 김군 혼자서 큰 가방을 메고 있었고, 학생 3, 4명이 김군을 향해 옷을 던졌다. 김군은 그들에게 친구가 아닌 '부하'일 뿐이었다.

이후 김군과 K 등은 PC방으로 자리를 옮겼고,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김군과 K는 1대1로 온라인 축구게임을 했다. 평소 두 사람은 실력이 비슷했으나 이날은 김군이 1대8로 크게 졌다.

그러나 K는 "똑바로 해라"고 다그쳤고, 김군은 혼잣말로 '에이씨'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K는 "어디 한 군데 부러져 봐야 정신 차리겠냐"고 김군을 윽박질렀다.

경찰은 김군의 행동,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종합했을 때 PC방에서 화가 난 K가 김군에게 '오후 6시에 다시 학교로 나오라'고 말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인 김군은 약속시간을 2시간여 앞둔 오후 4시5분쯤 집에서 나갔고, 4시26분쯤 인근 아파트로 올라가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김군은 2시간38분 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말았다.

김군의 자살 소식을 전혀 몰랐던 K는 오후 11시2분쯤 김군의 휴대폰에 다시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내일 5시, 늦지 말고 오라.' 그래도 김군의 답이 없자 K는 '대답해라, 야'라고 다시 다그쳤다.

경찰은 "K는 평소 내성적인 성격에 성적도 상위권이었다. 하지만 중1때 김군과 싸워 이긴 뒤로 김군에게만은 유독 강자로 군림했다. 결국 김군은 3년 넘게 K에게 주눅들어 지냈다"며 "김군이 저녁에 또다시 불려나가 시달리거나 맞을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구에서만 5개월 새 8명 자살

김군이 오랫동안 학교폭력에 시달려 왔다는 내용의 유서와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학교에서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 김군의 담임교사는 경찰에서 김군에 대해 "평소 밝은 성격인 데다 학교 생활을 잘하고 성적도 상위권이며 교우관계도 좋은 모범생이었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의 다른 교사도 "김군이 중학교에 다닐 때 축구 모임에서 활동했는데 고교 진학 후에도 줄곧 같이 모여 함께 운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학교폭력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했지만 김군이 왕따 등 피해를 입은 사실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하자 학교 측은 안타까움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군이 다니던 학교의 일부 학생들은 "학교에서 '기자들이 물어보면 모른다고 하라' '김군과 관련된 이야기를 추측해서 하지 마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은 그러나 "전혀 그런 적이 없다. 학생들에게 확인해볼 일"이라며 입 단속과 관련된 일체의 주장들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김군에 대한 애도의 글과 함께 한국 교육의 문제점과 무능함, 교육 행정의 안일함 등을 질타하는 글들이 쇄도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20일 한 중학생이 동급생들의 집단 괴롭힘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대구에서만 불과 5개월 새 중고생 10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리고 이 가운데 8명이 가족을 뒤로 한 채 아까운 목숨을 버렸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