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은 지역구도 아닌 ‘분당구도’ “국민들에게 위로와 의지가 되는 성공한 대통령 되겠다”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국민들에게 위로와 의지가 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손 고문은 또 "생산적 복지로 다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윤관식기자
지금은 복지와 남북통일의 새로운 사회로 가는 변곡점… 갈등과 분열 극복할 자신 있다

진보, 사회적 약자 돕기 위해 자기 쇄신 필요

진보적 성장과 지속 가능한 복지 조화 이루는 나라 만들고 싶어

여야 예비주자들의 잇단 출마 선언으로 사실상 대선 정국이 시작됐다. 제18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6개월 뒤인 12월 19일에 치러지지만, 대권을 꿈꾸는 주자들의 마음은 벌써 12월에 가 있다.

여권에서는 대세론을 앞세우는 박근혜(60)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정몽준(61) 전 한나라당 대표, 이재오(67) 새누리당 의원, 김문수(61) 경기지사, 안상수(66) 전 인천시장 등 비박(非朴) 주자들이 발에 땀나도록 뛰고 있다.

야권에서는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혜성처럼 등장한 안철수(50)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손학규(65) 문재인(59)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김두관(53) 경남지사, 조경태(44) 민주통합당 의원 등이 하나같이 '적임자'를 자처하고 있다.

<주간한국>은 대통령을 꿈꾸는 여야의 예비주자들을 차례로 만나 그들의 비전, 포부, 대선 전략 그리고 인생 스토리를 솔직하게 들어보기로 했다.

얼굴이 밝았다. 편안함이 느껴졌다. 큰 관문 하나를 통과한 데서 비롯된 안도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좀더 확고한 자신감과 사명감을 갖고 나갈 겁니다."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손학규 고문을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만나 1시간 동안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손 고문은 "준비된 대통령,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힘줘 말했다.

손 고문은 <주간한국>과 인터뷰에 앞선 지난 14일에는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지금 대한민국이 원하는 리더십은 유능한 진보, 격조 높은 진보"라며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애민 대통령',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민생 대통령',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을 하나 되게 하는 '통합 대통령'을 손학규가 하겠다"고 당찬 출사표를 밝혔다.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게 '주홍글씨'일 때도 있지만, 손 고문은 현역 정치인 중 거의 유일하게 좌우를 넘나드는 폭넓은 정치 스펙트럼을 가졌다는 평도 듣는다.

손 고문은 지난해 4월 보궐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안방'인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한나라당 대표 출신인 강재섭 전 의원을 눌렀다. 또 같은 해 연말에는 야권 통합을 주도한 끝에 거대 통합체인 민주통합당을 탄생시키며 유력 대선주자로서 다시 한 번 존재감을 과시했다.

-지난 14일에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출마 각오를 짧게 정리해준다면.

"지금 우리는 새로운 사회로 가는 변곡점에 서 있다. 이번 대선은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새로운 사회란 복지사회와 남북통합이다. 그래서 내가 제시한 시대정신이 민생과 통합이다. 정치는 갈등과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

-지난 4월 유럽 순방 이후 시쳇말로 '조용히' 뜨고 있는 것 같다.

손 고문의 집무실 벽에는 그의 좌우명 '수처작주'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윤관식기자
"변화가 많이 감지되고 있다. 사실 그간에도 손학규에 대한 기대는 잠재돼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조용하게 지내니까 어떤 분들은 '손학규가 접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작년 말 야권 통합 이루자 많은 분들이 '친노 시대가 오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래 오겠지. 바람은 불고 지나갈 것'이라며 때를 기다렸다. 통합을 이뤘다고 해서 그 공을 내가 챙기는 것은 눈앞의 이익만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통합 후 조용히 뒤로 물러난 것이다.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지난 9일 끝났다. 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번 전당대회는 또 한 번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지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경선 전만 해도 '이해찬-박지원 담합'이란 이야기가 나왔고 선거도 다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당대표 선출권은 국민과 당원에게 있다. 미리 정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소리다. 경선이 시소게임으로 전개됐던 것은 민주주의 역동성 때문이다.

-4ㆍ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의 낙승이 예상됐으나 결과는 패배였다. 이를 두고 당 정체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고, 대선 승리를 위해 중도노선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체성 문제가 아니라 그거야말로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국민들은 교만해진 민주당, 불안한 민주당을 거부한 것이다. 야권 통합을 이뤘을 때 국민들은 환호했다. 민주당이 정권 교체를 할 만하겠다고 기대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모든 민주 세력이 하나로 합치지 않았나. 그걸 보고 국민들이 민주당을 지지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마치 다 이긴 것처럼 교만해졌다.

-통합진보당 부정 선거 파문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야 유력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셈법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나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진보가 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줬다. 그간 통합진보당은 가짜 진보였다. 진보의 참뜻은 사회적 약자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은 국민을 무시하고도 너무 뻔뻔했다.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종파주의, 패권주의다. 진보는 이제 이념 투쟁, 종파주의라는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자기 쇄신이 필요하다.

-손 고문은 다른 주자들에 비해 안정감, 경륜, 콘텐츠가 돋보인다는 평을 듣는다.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 후한 점수를 받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반면 젊은 층에게는 어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젊은 층에게는 아무래도 이미지가 크게 작용한다. 그렇지만 젊은 층도 대선이 가까워오면 '역시 대통령은 이미지가 아니고 콘텐츠'라는 데 공감할 것이다. 실제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후보, 제대로 된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후보를 찾는 과정에서 20~30대의 지지도 자연스레 높아질 것으로 본다.

-손 고문에게는 경기 시흥 출신이라는 점이 강점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지역기반이 없다는 점에서는 약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손학규 고문이 2004년 큰딸 결혼식에서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이번 대선은 지역구도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 변화가 요구되기 때문에 중도층의 표심이 중요하다. 굳이 말하자면 사회 계층구도가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분당 구도'라고 표현한다. 지난해 4ㆍ27 분당 보궐선거 때 광범위한 중간층의 지지를 받았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이번 대선에서 PK(부산 경남) 후보가 그 지역에서 나보다 5~10%의 표를 더 얻는다 하더라도 내가 전체 인구의 절반이 있는 수도권에서 3%를 더 리드하면 앞서는 것이다. 내가 나서면 새누리당 성향이면서도 박근혜에게는 뭔가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지지도 얻을 수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유독 호남에서 지지율이 높다.

"호남은 민주당의 본거지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민주화의 성지다. 이분들은 정치적 사명감이 강하기 때문에 전략적 판단을 한다. 어떻게 해야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고 민생과 통합이라는 시대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지 잘 안다. 재작년 10월 전당대회 때 나는 아무런 조직도, 돈도, 민주당에 뿌리도 없었지만 호남을 중심으로 손학규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면서 결국 당대표가 될 수 있었다. 손학규를 내세움으로써 정권 교체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손학규를 안정감 있는 진보, 경제적으로 뒷받침되는 복지를 할 수 있는 적임자로 보는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처럼 준비된 대통령, 성공한 대통령이 될 자신이 있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안철수 원장, 문재인 고문, 김두관 지사 등 다른 주자들을 평가한다면.

"문 고문은 노무현 대통령 생전이나 사후 한결 같이 의리 있는 분이고, 김 지사는 이장부터 지사까지 경험한, 지방자치를 잘 아는 분이다. 안 원장은 정치권에 백신 역할을 한 소중한 자산이다. 박 전 위원장은 안정감, 위기관리능력은 잘 보여줬지만,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손 고문은 경제적 뒷받침이 가능한 복지를 주창한다. 때문에 '제3의 길'을 역설했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에 자주 비유된다. 복지 정책의 핵심은 뭔가.

"진보적 성장, 지속 가능한 복지가 중요하다. 복지와 성장이 조화를 이루는 거다. 복지를 한다고 해서 나라의 경제와 재정이 파탄나는 게 아니라 복지 그 자체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경제 순환의 역할도 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복지 정책에 들어가는 재원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겠다."

-대선까지 6개월 남았다. 국민들에게 전할 메시지는.

"민생과 통합이다. 그런 뜻에서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항상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국민의 삶을 정치의 최고 목표로 삼겠다. 민생민주주의를 할 거고, 다음 정부는 민생정부가 돼야 한다. 국민의 삶을 위해 복지 정책과 진보적 성장 정책을 펴겠다."

-대통령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어떤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국민들에게 위로와 의지가 되는 대통령이 되겠다.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요즘에는 거꾸로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고 있다. 나의 능력과 안정감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에게 신뢰를 쌓겠다. 다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겠다.

"제가 귀족풍이라고요? 알고 보면…"
세살때 부친 사고사… 모친은 농사일 수배생활하며 7년 연애끝에 결혼
사위들과 가끔 동네 포장마차서 한 잔… 첫째 딸 태어났을 때 가장 기뻐

최경호기자

손학규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밤새고 노동판에서 일하고 나와도 아침에 세수하고 나면 고급호텔에서 자고 나온 사람 같다는 겁니다."

'KS(경기고-서울대)' 출신으로 교수, 장관, 도지사, 당대표를 두루 지낸 손학규의 이미지는 서민보다는 귀족에 가깝다. 하지만 손학규의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면 귀족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손학규가 세 살 때 교장선생님이었던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날 이후 손학규의 어머니는 10남매를 키우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어머니는 농사일을 하기 위해 똥지게를 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암에 걸린 어머니는 손학규가 수배생활을 할 때 세상을 등졌다. 영등포에서 친구를 통해 어머니의 타계 소식을 뒤늦게 전해들은 손학규는 형사들에게 체포될 것을 알면서도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영정사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손학규는 지금도 설날 떡국을 보면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을 붉힌다.

손학규가 부인 이윤영씨를 만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다. 부인의 전공은 약학이었다. 두 사람은 7년간 연애 끝에 결혼했다. 7년이라고는 하지만 군복무, 수배 생활 등을 감안하면 실제 연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영국 유학 시절에도 부인은 손학규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이윤영씨는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손학규를 뒷바라지했다. 손학규가 '페미니스트'가 된 것도 부인 때문이라고 한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는 질문을 받으면 손학규는 망설임 없이 "첫딸이 태어났을 때"라고 말한다. 수배 시절 손학규는 미치도록 딸이 보고 싶으면 밤 늦게 셋방 창 틈에 쪽지를 남겼고, 아내는 다음날 형사들의 감시를 따돌린 뒤 딸을 데리고 나왔다.

손학규의 두 딸은 문화 예술 분야에 종사한다. 큰딸은 영화 평론가, 작은딸은 영화 연출 일을 한다. 손학규의 큰사위도 연극 연출가다. 1년에 1,000만원도 못 버는 가난한 청년이 손학규의 사위가 된 것이다.

손학규는 이따금 사위들과 동네 포장마차에서 '미팅'을 한다. 사위들은 "장인어른은 참 소탈한 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