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역 실종 여대생의 어머니 내연남이 인터넷에 올린 글과 사진
처음엔 애틋한 부정(父情)으로 보였다. "어려운 살림에 세 식구가 방 한 칸에서 살았는데, 딸이 실종되자 아내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글이 트위터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애끓는 아버지의 심정은 SNS의 강국답게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해 급속히 퍼졌다.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은 가족 진술을 토대로 폐쇄회로 TV와 탐문 수사한 결과, 납치나 실종이 아닌 가출로 판단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내가 자살을 기도했고 하반신이 마비됐다. 부모 입장에서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딸 사진까지 공개했다. 공덕역 실종 사건(6월 5일)은 그렇게 온라인 세상에서 큰 화제가 됐고, 몇몇 누리꾼은 실종 여성 찾기에 앞장섰다.

그렇다면 딸 김○○(19)씨는 어디로 갔을까?

서울 용산경찰서는 닷새만인 10일 김씨가 경기 안산에 있는 할머니 집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이 가출 이유를 묻자 딸은 "부모 간섭을 받기 싫어서 집을 나왔다"고 대답했다. 경찰은 가정불화에 따른 가출이라고 판단했고, 아버지는 딸을 설득해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집으로 데려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공덕역 실종 사건의 주인공은 철없는 딸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공덕역 실종 사건은 '딸아이의 철없는 짓'이 절대 아니었다. 더욱 경악할 사건이 이튿날 벌어졌다.

"죽여 버리겠다"는 고함과 울음소리가 집안에 가득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머리카락이 잘린 딸은 웅크리고 앉아 엉엉 울었다. 어머니 홍모(45)씨는 칼을 들고 "자살하겠다"고 외쳤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경찰은 딸에게서 예전부터 '가혹행위'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라고 주장한 김모(36)씨를 긴급 체포했다.

아버지라던 김씨는 어머니의 내연남이었다. 내연남이 인터넷에 올린 글과 달리 어머니 홍씨도 하반신 마비는커녕 멀쩡했다. 산발이 된 채 엉엉 울던 딸에겐 어머니도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 의붓아버지 행세를 하던 김씨가 내연녀 딸을 괴롭히는데 어머니가 동조한 셈이었다.

홍씨는 오래전부터 가정불화로 남편과 떨어져 살았고, 7년 전 김씨를 집으로 데려가 딸에게 남자친구라고 소개했다. 어머니는 딸에게 김씨를 삼촌이라고 부르게 했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김씨는 중학생이었던 딸을 괴롭혔다. 일주일에 두세 차례 반복되는 '가혹행위'는 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피해자는 부끄러우면서도 두려웠던 터라 어머니는 물론이고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딸은 결국 집을 나와 친아버지에게 도망쳤다. 아버지를 따라 할머니 집에 갔던 딸은 어머니와 내연남의 설득에 닷새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경찰 수사 결과, 내연남 김씨는 홍씨의 딸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출한 이유를 추궁했고 가위를 들고 다짜고짜 머리카락을 잘라버렸다. 그래야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체포된 김씨는 내연녀의 딸에게 파렴치한 행동을 해온 사실을 자백했고, 서울서부지법은 12일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가혹행위를 방조한 혐의로 어머니 홍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홍씨는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가출할 당시 딸이 거짓말을 해 갈등이 있었다. 딸이 키워준 은혜도 모른다"며 내연남을 두둔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정신적 충격을 심하게 받은 딸은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딸이 어떤 가혹행위를 받았는지에 대해선 경찰이 피해자 명예를 이유로 입을 닫았다.

공덕역 실종 사건은 결손가정 폭력의 문제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용산경찰서 실종팀 관계자는 "딸의 소재를 파악했을 때 피해의 전말을 알지 못했다.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딸은 셀 수 없이 많이 가혹행위를 당했지만 한 번도 경찰에 신고하거나 상담을 받은 적이 없었다. 다행히 딸의 친구가 11일 이태원동 집을 방문했다 경찰에 신고한 덕분에 더 큰 화를 피할 수 있었다.

내연남 김씨가 아버지 행세를 하며 경찰에 신고까지 한 이유는 뭘까?

김씨는 "가출해 연락이 두절되자 경찰에 신고했고 인터넷에도 글을 올렸다"고 진술했다. 내연녀 딸에게 저질렀던 악행이 들통 날까 두려워 사진과 인적사항까지 공개하며 "실종된 딸을 찾습니다. 경찰에서는 기다리라고만 합니다"라는 글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트위터 등 SNS를 이용한 이유에 대해선 "붙잡아 두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어머니 홍씨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진술했다.

피해자인 딸은 경찰에 인터넷과 트위터에 널리 퍼진 자신의 자신과 인적사항, 그리고 가해자 김씨가 쓴 글을 지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피해자를 찾기 위해 퍼졌던 사진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천사의 탈을 쓴 악마가 발목을 붙잡고자 올린 사진과 글은 피해자 가슴에 멍에로 남았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