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 "YS에 3,000억 줬다"YS는 "DJ비자금 1,300억" 무기상도 비자금 진술 소문

전두환(오른쪽)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12ㆍ12 군사반란과 5ㆍ18 민주화운동 관련 1심 재판에 나선 모습.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인 두 전 대통령은 대통령을 주고받으며 영화를 누렸지만 결국 법의 심판을 받았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내 비자금을 수사해달라!"

노태우(80) 전 대통령의 의뢰에 검찰도 당황하지 않았을까? 지난 25년 동안 감추기에 급급했던 비자금을 스스로 수사해 달라고 나섰으니 말이다. 공교롭게도 재산이 29만원뿐이라던 전두환(81) 전 대통령이 육군사관학교 발전기금으로 1,000만원을 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역대 대통령의 비자금이 화제로 떠올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8년 11월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특히 집권여당의 총재로서 정당을 유지하고 선거를 치르자면 적지 않은 정치자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면서 "과거 정부와 당의 고위간부들이 각기 정치자금을 조달함으로써 권력형 부패의 온상이 되었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정치자금의 창구를 일원화했다"라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통령이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는 건 당연한 듯 보였다. 그렇게 전 전 대통령이 기업으로부터 받은 돈은,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것만 9,500억원이었다.

대법원도 1997년 4월 기업에게서 받은 돈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노 전 대통령에게는 추징금 2,628억 9,600만원을, 전 전 대통령에게 2,205억원을 선고했다. 정치 자금을 일부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총 97차례에 걸쳐 2,397억 9,300만원(추징금의 91%)을 납부했다. 전 전대통령은 추징금 2,205억원 가운데 24.1%에 해당하는 532억원 납부에 그쳤다.

노 전 대통령이 최근 사돈인 신명수(71) 신동방그룹 회장에게 맡겼던 비자금을 되찾으려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이유는 뭘까?

아들 노재헌씨와 며느리 신정화씨의 불화가 직접적인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신씨는 지난해 3월 홍콩법원에 남편 노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냈다. 재계에선 이들 부부가 이혼하려는 이유로 서로 배우자의 외도를 꼽았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아들이 결혼했던 1990년 "자녀들을 위해 맡아서 관리해달라"며 신 전 회장에게 230억원을 건넸다. 이 돈은 서울 소공동 서울센터 건물을 사는 데 쓰였고, 신 전 회장은 이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자신의 빚을 갚았다고 한다.

노 전대통령은 사돈에게 맡긴 비자금 230억원은 이자를 포함해 현재 654억 6,500만원의 가치를 가졌다며 미납 추징금(231억원)을 내는 데 사용할테니 받도록 해달라는 뜻을 검찰에 전달했다. 추징금은 이자가 붙지 않기 때문에 654억 6,500만원을 돌려받으면 추징금을 빼고도 423억원 이상이 남는다. 아들과 며느리가 남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자금을 돌려받으면 추징금을 내더라도 실속을 챙길 수 있게 된다.

남은 재산이 없다던 전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손녀 결혼식에 참가했다. 할아버지는 빈털터리라며 추징금을 낼 돈이 없다고 했지만 손녀는 억대 호화 결혼식을 치른 것이다. 그가 아직 내지 않은 추징금은 2,205억원 가운데 1,673억원이다. 전 전 대통령 자녀는 수백억원대 자산가이지만 현행법상 본인 재산 외에 추징금 납부를 강제할 수단이 없으니 지켜볼 수밖에 없다.

전 전 대통령은 2003년 갖고 있는 모든 재산이라며 추징금으로 29만 1,000원을 내자 비난 여론이 속출했고, 이듬해인 2004년 검찰이 비자금을 찾아내자 부인 이순자씨가 200억원을 대신 납부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아들 전재용씨는 아버지에게서 국민주택채권 167억원을 받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추징금은 당사자가 사망하면 징수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전 전 대통령이 버티면 사망이후 끝나는 셈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도 비자금을 챙겼다. 박 전 대통령은 비자금을 집무실과 비서실장실에 있는 금고에 넣어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이 1979년 사망하자 금고에 있던 비자금 가운데 6억원은 딸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에게 생계비로 전달됐다. 비자금과는 거리가 있지만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도 박근혜 의원 형제자매의 몫이었다. 정수장학회는 MBC 주식 30%와 부산일보를 소유한 재단으로, 박 의원 측근인 최필립 이사장이 운영하고 있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6월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강제로 이뤄졌으니 정수장학회는 헌납 주식을 국가에 원상회복하고 국가는 재산을 원래 소유주에게 반환하라고 권고했다. 삼화고무 김지태 사장이 1962년 부일장학회를 당시 군사정권 최고통치기구였던 국가재건최고회의에 헌납한 게 아니라 뺏겼으니 돌려주라는 뜻이다. 그래서 정수장학회는 대통령을 꿈꾸는 박 의원에게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통해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3,000억원을 선거자금으로 줬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발끈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주화 동지이자 앙숙이었던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이 1,300억원에 이르렀지만 덮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 문제를 직접 거론했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주성영 의원은 2008년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 결과 김 전 대통령이 감춘 비자금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비자금 수사는 대통령을 자살로 내몰기도 했다. '박연차 게이트' 때문에 수사를 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가족이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미국에서 아파트를 살 때 13억원이 밀반출됐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고,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주장했던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등은 아직도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

카다피 244조원… 석유 지분 더하면 '눈덩이'
● 외국 비자금 사례
민주화 열풍에 목숨을 잃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전 국가원수의 비자금은 얼마나 될까?

미국과 영국 언론은 카다피 일가가 소유했던 자산이 리비아 국부펀드를 포함하면 최소한 2,000억 달러(약 244조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국제연합(UN) 결의로 영국과 미국이 동결한 자산만 각각 500억 달러(약 610조원)와 300억 달러(약 366조원)에 이른다. 카다피 가족이 리비아 석유ㆍ통신ㆍ건설업 등에 투자했던 지분을 더하면 자산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

카다피와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등은 고객 비밀 유지를 철저하게 보장하는 스위스 은행에 거액을 숨겼다. 그러나 스위스 정부는 독재자를 몰아낸 리비아와 이집트를 돕고자 카다피와 무바라크가 감춰둔 돈을 찾아냈다. 스위스 정부는 카다피가 스위스에 숨겨둔 자산이 6억 5,000만 스위스프랑(약 7,930억원), 무바라크가 은닉한 자산이 4억 1,000만 스위스프랑(약 5,002억원)이라고 밝혔다.

스위스 정부는 횡령과 부패 등으로 자산을 축적했다는 혐의가 유죄로 입증되면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와 이집트 정부에 카다피와 무바라크의 재산을 넘겨줄 계획이다. 미국과 영국 등은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NTC)가 리비아를 재건하는데 카다피 일가 재산을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박정희 구권5억, 신권3억과 바꾸자" 사기
● 비자금 관련 사건·사고
존재하지 않는 대통령 비자금조차 각종 사건ㆍ사고의 원인이 된다.

어떤 이는 비자금을 가로채려고 전 대통령 사위를 습격했고, 어떤 이는 비자금을 관리한다며 사기 행각을 벌이다 사정당국에 적발됐다.

구권 화폐 사기 사건은 90년대 후반부터 끊이질 않고 있다. 구권 화폐란 1994년 이전에 발행된 만원짜리 지폐. 사채시장에선 금융실명제 때문에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이 구권 화폐로 보관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사기꾼들은 '옛 정권이 비자금을 구권으로 갖고 있는데 자금 추적 때문에 은행에 넣지 못하고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 신권으로 3억원을 주면 구권으로 5억원을 주겠다'는 식으로 꼬드겼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 비자금을 미끼로 사기 행각을 벌여온 박○○씨 등을 붙잡았다. 자신을 비자금 관리자라고 소개한 박씨는 구권 화폐와 일본 채권, 금괴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투자하면 창고에 있는 물건을 팔아 130억원을 주겠다고 속였다. 3억 6,500만원을 건넨 피해자 최모씨가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박씨는 오히려 "신고하면 가족을 몰살시키겠다"고 협박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는 2006년 구권 화폐 사기에 이용됐다. 사기꾼은 "전두환 대통령 비자금이 구권 화폐로 65억원인데 싸게 살 수 있다"면서 "현금 45억원을 구했는데 5억원이 부족하다. 5억원을 빌려주면 6억원으로 갚겠다"는 말로 사기 행각을 벌였다. 이들이 전경환씨와 식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반신반의하던 피해자들은 돈을 건넸다.

전경환씨 동거녀 딸 김○○씨도 2006년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 재산을 물려받았다며 국책사업권 추진비 명목으로 윤모씨 등에게서 16억원을 받아 가로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김영삼 전 대통령 사위 이○○씨는 2009년 1월 괴한에게 습격을 받았다. 이씨 집에비자금이 감춰졌다는 소문을 믿은 괴한들은 "지하 벙커에 보관된 YS 비자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어떻게 18세기에나 있을 법한 일이 법치국가에서 벌어질 수 있느냐"며 혀를 찼다.

경찰에 붙잡힌 괴한들은 미국 항공모함에서 지령을 받았다며 자신들을 비자금 회수 임무를 맡은 국제연합(UN) 국제금융수사단이라고 밝혔다. 한국 대통령의 비자금을 찾는데 UN이 개입됐다는 황당무계한 진술에 경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국 당국에 국제금융수사단의 존재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청주 흥덕경찰서는 올해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비자금을 찾는 일에 투자하라며 수천만원을 가로챈 사기꾼을 붙잡았다. 금융통화위원장을 사칭한 사기꾼은 비자금을 찾는 경비를 지원하면 5억원을 주겠다는 말로 2,000만원을 가로챘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