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배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지난 1월 취임식에서 "세종문화회관을 다양한 문화 공간과 연계하는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허브로 키워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히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세종문화회관이 흔들리고 있다. 진원지는 박인배 세종문화회관 사장.

취임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무수한 뒷말들을 낳고 있어서다. 낙하산 인사, 소통부재, 불도저식 경영 등이 모두 그가 낳은 논란들이다. 대체 무슨 일일까. 박 사장을 둘러싼 논란들을 조목조목 짚어봤다.

박인배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지난 1월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명을 받아 사장에 취임했다. 박 사장은 임명 당시부터 '코드인사' 논란에 휩싸였다. 박 시장의 정책자문위원회 문화ㆍ환경 분과위원장을 지내며 멘토로 활동한 경력 때문이다.

박 사장의 이력도 논란을 부추겼다. 박 사장은 과거 서울노동자문화예술단체협의회 대표,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운영위원장, 한국민족극운동협회 이사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상임이사 등을 역임한 문화예술계의 대표적 진보 인사다.

박 사장의 임명 당시 회관 안팎에서 운영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돈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특히 박 사장의 정치적 성향과 개인 취향이 강하게 세종문화회관의 문화 정책에 반영되지 않겠냐는 우려가 많았다.

이런 걱정은 현실이 됐다. 취임 직후부터 자신의 '색깔'을 제대로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게 내부관계자의 전언이다. 실제 박 사장은 최근에도 회관 중앙계단에 민중 미술가 임옥상 작가의 '농사와 예술'이란 작품을 전시하는 등 자신의 입맛에 맞춘 운영을 하고 있다. 임 작가는 지난 2001년 박 사장과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반대하며 1인 시위를 벌인 인물이다.

직원들과 소통 부재

박 사장이 이처럼 자신의 색채를 한껏 드러내고 있는 반면, 직원들과의 소통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통을 강조해 온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불도저식 경영을 벌이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먼저 박 사장은 일부 직원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회관의 대표적 문화공연 행사인 '별밤 축제'를 취소한 것을 두고서다. 지난 8년 간 시민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아온 이 행사는 지난 5월초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박 사장이 공연 1주일을 앞두고 취소를 지시했다. 권위적인 무대 규모, 광화문 광장과의 시야 단절, 스폰서 기업 광고의 지나친 노출 등의 이유에서였다.

'별밤 축제'에 들어가는 예산은 어림잡아 10억원 정도. 이 가운데 서울시에서 지원해 주는 예산은 6억원이다. 회관은 지난해 부족한 예산을 현대기아자동차의 협찬금으로 메웠다. 올해도 현대기아차의 지원이 예정돼 있었다. 따라서 공연기획을 맡은 직원들은 올해도 10억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했다.

그러나 박 사장이 돌연 협찬금을 배제하고 기존 예산의 40%가 감축된 돈만으로 공연을 기획할 것을 지시했다.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판. 여기서 박 사장과 일부 직원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이로 인해 공연기획을 맡은 직원들은 박 사장의 수정 요구에도 같은 안을 다시 제출하는 등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박 사장은 직원들의 불만에 귀를 닫았다. 박 사장은 현대기아차의 지원을 거부했고 시민이 참여하는 소규모 문화공연을 지시했다. 그 결과, 현재 회관 잔디공원에선 '2012 광화문 문화마당'이란 이름의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와 관련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상업광고가 거슬린다는 시민의 비판과 무대가 통행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서울시의 지적에 광화문 문화마당으로 방향을 튼 것"이라며 "기존에 있던 별밤 축제와 뜨락 축제를 통합한 것으로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박 사장에 불만을 토로하는 직원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박 사장은 예술단 단장들과도 갈등을 빚었다. 기존 9개 산하 예술단에 배정한 2012년 회관 정기공연 예산 25%를 삭감한 게 단초가 됐다. 9개 예술단이 25개 자치구의 문화예술회관을 순회하며 공연을 선보임과 동시에 지역의 예술 발굴사업에 나서겠다는 박 사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이로 인해 올해 뮤지컬단과 오페라단에 배정된 정기공연 예산 9억3,764만원과 13억4,274만원은 각각 7억1,404만원과 7억9,027만원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뮤지컬단이 지난 5월에 공연할 예정이던 '벌거벗은 임금님'이 취소됐고 오페라단도 4월에 공연 예정이던 '돈 조반니'를 하반기로 연기했다.

이에 김효경 서울시 뮤지컬 단장과 박세원 서울시 오페라단 단장은 박 사장과 마찰을 빚어오다 지난 3월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예산 부족으로 공연 취소가 불가피했다"며 "기존의 CEO들은 경영에만 몰두한 데 반해 현장을 잘 알고 있는 박 사장이 공연 기획 등에 관여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해명했다.

'내 사람 내 곁에' 인사

갈등으로 인한 공석을 메우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나왔다. 박 사장이 지난 4월23일 서울시 뮤지컬단 단장에 유인택 군장대 석좌교수를 임명한 것이 단초가 됐다. 회관 산하 예술단 단장은 단장선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에 대해 심사위원회가 결격여부를 확인한 뒤 사장의 최종 면접을 거쳐 임명된다.

문제는 유 교수가 박 사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인태 민주통합당 의원의 동생이라는 점이다. 회관 안팎에서는 낙하산 인사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또 새로 만든 문화예술교육팀장에 어연선 극단 '현장' 대표의 임명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박 사장이 극단 '현장'에서 예술감독을 맡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박 사장이 유인택 신임단장이나 어연선 팀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인사 편의를 봐줄 정도로 친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