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민식의원이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당원명부 유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새누리당 당원명부가 19대 총선 당시 '정치적 활용'을 위해 조직적으로 유출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울러 정치권에서는 민주통합당의 당원명부도 총선을 앞두고 유출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명부 유출 파문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민주통합당 김현 대변인은 지난 22일 새누리당 당원명부 유출사건과 관련, 사건 발생 당시 당대표 역할을 했던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 "부정경선 당시 실질적 당대표로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은 유출책임, 공천부정, 불공정경선의 책임을 지고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당원명부 유출과 부정경선이 있을 때) 공천을 하신 분이자 선거운동을 하신 분이 박근혜 의원"이라며 "총체적 책임을 지고 있는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책임을 국민 앞에 밝힐 것을 요구한다"고 박 전 비대위원장에게 칼을 겨눴다.

그런 가운데 야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당원명부 유출 사건이 민주통합당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명부 유출은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오래 전부터 당원 명부가 선거 때만 되면 정치권에 공공연하게 돌아다닌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명부 유출 사건은 그동안 누구도 문제 삼지 않고 있었던 사안이고 누가 언제고 문제 제기를 하면 불거질 일이었다"며 "민주통합당이 이 일을 집요하게 문제 삼을 경우 불똥이 오히려 민주통합당에 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호남지역 당원 중심

<주간한국>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새누리당 당원명부는 총선을 앞둔 시점인 지난해 12월 초부터 정치권에 퍼지기 시작했다. <주간한국>에서는 이 시기에 퍼진 명부를 입수해 담긴 내용을 살펴보았다.

우선 호남지역 새누리당원 명단과 당원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다. 파일은 외부로 유출되기 전 누군가에 의해 새로 정리된 것처럼 보인다. 파일이 새로 고쳐진 시기는 지난해 11월 말쯤이다.

초기 파일은 광주 전남 전북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호남지역만 정리돼 있다는 점으로 미뤄서 유추해보면 이 파일의 제작 목적은 두 가지다. 민주통합당에서 텃밭인 호남지역 공략을 위해 당원명부를 활용했을 가능성과 또 하나는 새누리당에서 호남지역 관리를 위해 이 지역 당원명부를 별도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양쪽 모두에 가능성을 두고 있다. 문제는 이 파일이 유출된 경로와 원인이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명부가 어떻게 활용됐는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총선 당시 이 명부를 활용해 당선된 후보들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정치권의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정치권 소식통에 따르면 이 명부를 활용한 이들은 모두 33명으로 파악되고 있고 이 중 초선 의원이 7명이다. 주목을 끄는 것은 명부 활용이 의심되는 당선자들 중 새누리당 의원들이 많다는 점이다. 때문에 민주통합당이 이 명부를 활용했을 가능성에는 무게를 두지 않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그러나 이 파일이 외부에 유출된 시기로 추정되는 지난해 11월~12월쯤에는 여권과 함께 야권에서도 나돌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쯤 이 파일을 접했다는 한 인사는 "이 파일이 야권에서도 돌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야권에서 호남지역 새누리당원 파악을 위해 파일 내용을 일부 입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유출 경로·목적에 의구심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초기 파일이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유출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유출된 파일 중 초기 유출파일을 살펴보면 당원 명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원의 당비 납입내역과 지역 책임자와 관련된 내용까지 담겨 있다.

최근 이 파일과 관련해 야권 활용설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 중 하나는 내부 인사가 내부 자료를 활용한 목적으로 외부에 유출했다고 보기에는 어색한 면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불상의 인물이나 집단이 정치적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명부와 당비 납부 내역 등을 빼돌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이 파일 유출에 특정 언론사가 개입돼 있다는 말도 들린다. 모 언론사 관계자가 이 파일을 정치권 인사에 전달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진보 성향의 한 언론이 이 파일을 입수해 정치권 인사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이 파일의 유출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찾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현재 파일 유출자로 지목된 인물이 최초 유출자가 아니고, 처음으로 이 파일을 정치권 등에 유출한 인물이 따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파일 유출 시기가 관건이 된다. 현재 파악된 바로는 명부는 1월부터 4월 사이에 유출 판매됐다. 그렇다면 11월쯤 이 파일이 유출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근거들을 미뤄 짐작하건대 판매 목적으로 유출하기에 앞서 정치적 목적으로 또 다른 누군가가 먼저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 민주통합당 측은 "야권이 명부를 정치적 활용했다는 소문은 근거 없는 헛소문"이라고 의혹을 일축했다. 호남지역 새누리당원 명부가 총선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민주당 측의 설명이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