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나지 않은 수수료율 분쟁롯데카드, 계열사 빅마켓과 낮은 수수료율 독점계약"자영업자만 차별하나" 7월1일 단체행동 예고골목상권 잠식논란 맞물려 시민단체 칼 빼들어

서울시 강북구 인수동에서 김밥 체인점을 운영하는 김모(40세)씨는 손님들이 김밥 한 줄을 사 먹고 카드를 꺼내 들 때마다 난감해진다. 김밥 가격 2,000원에서 재료비와 인건비, 가게세 등을 제한다면 김씨에게는 고작 100~200원이 떨어지는데 여기서 카드 수수료 3%를 떼면 정말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가게에서는 카드 이용 시 현금으로 계산할 때보다 몇백원이라도 더 받는다고들 하지만 김씨는 이러한 논리로 손님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

더 화가 나는 것은 하루 종일 일해도 10~20만원 벌이에 만족해야 하는 자신은 3%나 되는 카드 수수료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데 대형마트 안에 위치, 손님으로 북새통을 이루는 김밥집은 절반 정도의 수수료만 지불하면 된다는 사실이다. 사업규모가 영세할수록 많은 카드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현실에 한탄만 나올 뿐이다.

김씨 같은 자영업자 100만명이 집단행동을 개시했다. 수익 감소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특정 카드에 대한 결제거부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상대는 '유통공룡' 롯데그룹이다. 벌써 세 번째 시도되는 특정 카드 결제거부 운동이라 세간의 입방아가 염려되지만 카드사와 대형마트 등 대규모 사업자들의 짬짜미 횡포를 더이상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는 반응이다.

짬짜미 횡포에 뿔났다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 및 유권자시민행동은 지난 18일 롯데카드 마사지ㆍ숙박업ㆍ휴게음식업ㆍ유흥음식업ㆍ단란주점업 등 60여개 자영업단체와 함께 오는 7월 1일부터 롯데카드 결제거부 및 롯데마트 불매운동에 돌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자영업 시민단체들의 결제거부 결의는 롯데카드가 최근 롯데마트 계열의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인 '빅마켓'과 낮은 가맹점 수수료율(이하 수수료율)로 독점계약을 체결한 것이 알려지며 촉발됐다.

지난해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직능 소상공인 결의대회에 참석한 업주들이 '1.5%쟁취' 라고 쓴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오호석 유권자시민행동 대표는 "대형가맹점들은 오래도록 낮은 카드 수수료율을 적용받으면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다"며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으로 수수료율 체계 개편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롯데카드와 롯데마트의 독점계약은 자영업자 카드 수수료율 인하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규탄했다. 이어 "현재 백화점의 평균 수수료율은 1.56%, 대형마트의 수수료율은 1.5% 정도인데 반해 일반 자영업자의 수수료율은 2.23~4.5%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롯데마트는 이달 말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개점 예정인 빅마켓의 가맹점 계약을 위한 2차 카드사 공개입찰에서 롯데카드만을 사업자로 확정했다. 롯데마트는 당초 롯데카드를 포함한 복수의 사업자를 선정할 방침이었으나 롯데마트와 카드사 양측이 원하는 수수료율이 크게 차이 났던 것으로 보인다. 입찰에 응한 카드사들은 현행 대형마트 수준인 1.5%의 수수료율을 원했지만 롯데마트 측은 그 이하를 요청했고 이 같은 입장차는 결국 카드사들의 입찰 철회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롯데카드 측은 "금융 당국의 지침이 있어 1.5% 아래의 수수료율로 계약할 수가 없는 상황인데 오해가 생긴 것 같다"며 "가맹점 단체를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고 롯데카드가 소상공인들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고 해명했다.

자영업 시민단체들은 대형 가맹점의 특혜 관행을 저지하기 위해 롯데마트 송파점을 시작으로 이마트 성수점, 홈플러스 잠실점 등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롯데카드와 롯데마트에 대한 압박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카드업계 "툭하면 겁주냐"

카드 수수료율에 대한 입장 차이로 발발한 자영업자들의 결제거부 결의는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다. 물론 자영업 시민단체들이 처음부터 실력행사를 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한국음식업중앙회가 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위한 '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를 벌인 것을 필두로 자영업 시민단체들은 결의대회 등의 평화적인 방법으로 카드사들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등 유력 대기업들의 수수료율 인하에도 불구, 자영업자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자 결국 자영업자들은 배수의 진으로 카드 결제거부에 돌입했다.

대표적 자영업 시민단체인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는 지난 2월 수수료율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 통과를 요구하며 신한카드에 대한 결제거부를 예고했다. 카드업계 1위 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에 소극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한카드 결제거부를 시작하기로 한 당일 "신용카드 수수료율 차별을 금지하는 개정법안의 국회 통과 여부를 보고 행동하기로 했다"며 결제거부 조치를 연기했다.

자영업 시민단체들이 신한카드에 대한 결제거부를 미룬 지 일주일 만인 2월 27일, 국회에서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에는 영세가맹점에 대한 우대 수수료율 적용과 불합리한 가맹점 수수료율 차별 금지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개정안 통과로 잠시 잠잠해지는듯 했던 카드 수수료율 논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불거졌다. 삼성카드가 코스트코와 0.7%라는 낮은 수수료율로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는 코스트코에 대한 특혜조치를 수정하지 않을 경우 4월 1일부터 삼성카드에 대한 결제거부에 나서겠다고 밝혔고 협상 끝에 삼성카드는 결국 자영업자들을 위한 제휴카드를 만들어주기로 결정하며 사태를 진정시켰다.

신한카드, 삼성카드에 이어 벌써 세 번째인 자영업 시민단체들의 특정 카드 결제거부 움직임에 카드업계에서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대형가맹점들에 대한 수수료율 특혜가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결제거부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너무 습관적으로 이용해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것이 아니냐는 내용이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실력행사에 나서더라도 막상 해당 카드로 결제하겠다는 손님이 있으면 무턱대고 거부할 수 있겠냐"며 "의도는 이해하지만 너무 자주 쓰면 오히려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감한 시기 기름 부은 꼴

그러나 특정 카드 결제거부 운동이 자칫하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자영업 시민단체들이 이번 일을 벌인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유통공룡인 롯데그룹과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함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자영업자 '백만대군'이 '유통공룡' 롯데에 날카로운 검을 빼든 형국이라는 주장이다.

롯데그룹은 대기업들의 골목상권 위협을 얘기할 때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회사다. 유통그룹인 만큼 롯데마트, 롯데슈퍼, 바이더웨이 등 상당수의 계열사가 골목상권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중소기업연구원에서 발표한 '유동서비스 적합업종 추진방안'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총 79개 계열사 중 22개사가 도ㆍ소매업, 숙박ㆍ음식점 등과 같이 자영업자들이 많이 영위하는 생계형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상호 의존성이 높은 유통그룹의 특성상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가 많은 것도 자영업 시민단체들이 롯데그룹을 지목한 이유다. 실제로 이번에 롯데카드 결제거부 움직임이 시작된 원인도 롯데마트 계열의 빅마켓에 대해 롯데카드가 기존 대형마트들 만큼이나 낮은 수수료율을 특혜로 베풀었던 것에 기인했다. 계열사 부당지원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시기상 죄질도 나빴다. 지난 2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이 오는 12월에 시행될 예정이고 이미 지난 4월 발표된 '가맹점 수수료 체계 개편안'을 통해 최종 방안 또한 어느 정도 밑그림이 그려진 상태다. 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은 최근 각 카드사에 공문을 발송,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앞서 수수료 계약을 할 때도 법 개정 취지에 맞도록 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슈퍼갑인 타 회사 대형마트도 아닌 자사 계열의 신생 할인점에 개정안의 취지와 어긋나는 특혜 계약을 한 롯데그룹으로서는 자영업 시민단체들의 롯데카드 결제거부 조치를 반박하기 어렵게 됐다.

이에 롯데그룹 측은 조속한 시일 내에 협상테이블을 마련, 양 측 모두 만족시킬 만한 결론을 짓는다는 입장이다. 롯데카드 관계자는 "자영업 시민단체들도 수수료율을 일괄적으로 내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닌 '성의를 보여라' 수준의 요구라 협상의 여지가 충분하다"며 "신한ㆍ삼성카드 때와 마찬가지로 결제거부까지는 가지 않은 상태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