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최태원(왼쪽) 회장-노소영 부부
부부란 헤어지면 남이다. 그냥 남이 아니라 원수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 도 한다. 대통령 자녀와 재벌가 자녀도 이혼할 때쯤에는 서로 으르렁거린다. 혼인을 시킬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노태우(80) 전 대통령은 아들 재현(47)씨 부부가 이혼 소송을 밟자 사돈인 신동방그룹 신명수(71) 전 회장에게 맡긴 비자금을 찾아달라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상류사회에까지 충격을 안겨준 이 사건은 권력과 재벌간 혼맥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당사자들간의 의견보다는 권력과 재벌의 이해를 먼저 살핀, 권력과 부를 대물림하기 위한 정략적(?) 혼인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권력과 금력의 결합

고려는 귀족사회였고, 조선은 양반사회였다. 귀족과 양반은 부를 세습하면서 결혼을 통해 상류층을 이뤄 기득권을 대물림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상류층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경제개발 과정에서 형성된 재벌을 중심으로 정ㆍ관ㆍ재계가 거미줄처럼 촘촘한 혼맥을 만들었다. 일부 재벌은 권력자와 사돈이 되면서 정경유착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벽산그룹과 사돈 사이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셋째 형 박상희씨가 낳은 조카를 통해 벽산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막내 조카 박설자씨는 1972년 벽산그룹 김인득 창업주의 둘째 아들 김희용 동양물산 회장과 결혼했다. 벽산그룹은 박 전 대통령이 군림하던 1970~80년대에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부도 위기에 시달렸고, 워크아웃 상태를 오가던 벽산건설은 기어코 지난달 26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총알과 동전을 만드는 회사로 알려진 풍산그룹(당시 풍산금속) 창업자 고(故) 류찬우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3년 뒤인 1982년 그의 둘째 딸 박근령(59ㆍ당시 이름 박서영)씨를 맏며느리로 맞았다. 류 회장은 "(박정희)대통령이 생존해 있을 때는 사돈 맺기를 원하는 사람이 줄을 서더니 타계하고 나서는 외면하는 얄팍한 인심이 싫다"면서 "친정아버지 이상으로 시아버지의 사랑을 쏟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풍산그룹 장남 류청(63) PMX인더스트리 전 사장은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박근령씨와 이혼했다. 시어머니였던 배 여사는 이혼 후에도 박근령씨를 큰며느리라고 불렀다고 알려진다. 풍산그룹을 뛰쳐나간 박근령씨는 2008년 자신보다 열네 살 어린 신동욱(44) 전 백석문화대 겸임교수와 결혼했고, 육영재단 운영을 놓고 대통령 후보로 손꼽히는 언니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갈등을 빚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혼맥

12ㆍ12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의 정점에 선 전두환(81) 전 대통령은 아들과 딸을 앞세워 재벌과 사돈이 됐다. 전 전 대통령은 1988년 2월 차남 전재용(48)씨 배필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넷째 딸 박경아씨를 선택했다. 아들 전재용씨가 1990년 이혼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백담사에서 은둔하던 전 전 대통령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이혼은 안 된다"며 말렸다. 그러나 끝내 아들의 뜻을 꺾진 못했다.

전재용씨는 이혼한 지 2년 만인 1992년 5월 최모씨와 재혼해 아들 둘을 낳았지만 2003년 5월 배우 박상아와 미국에서 결혼했다. 당시 비자금 수사를 피하고자 내연녀와 서둘러 결혼했다는 해석이 쏟아졌다. 이중혼 관계를 유지하던 전재용씨는 2007년 2월 아내 최씨와 이혼하고, 7월에 박상아와 혼인신고했다.

딸인 전효선씨는 1985년 한국투자신탁 윤광순 전 사장의 아들 윤상현(50) 의원과 결혼했다. 대통령의 사위였던 윤 의원은 그러나 재벌 사위로 변신, 뭇남성의 부러움을 샀다. 전효선씨와는 2005년 이혼하고 2010년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의 조카인 신경아(40)씨와 재혼한 것이다. 윤 의원의 장인은 신 회장의 막내동생인 신준호 푸르밀(옛 롯데우유) 회장이다.

셋째 아들 전재만씨는 1995년 운산그룹 이희상 회장의 맏딸 이윤혜씨와 부부가 됐다. 장인이 된 이 회장은 결혼 당시 사위에게 결혼 축하금으로 160억원 규모의 채권을 건넸다. 당시 검찰은 이 돈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고 판단했었다.

'보통사람 시대'를 부르짖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국가원수가 되자 선경(현 SK그룹)과 동방유량(현 신동방그룹)과 사돈 관계를 맺었다. "자녀의 뜻을 존중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던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9월 딸 노소영(51)씨를 SK그룹 최종현 회장의 맏아들 최태원 현 회장에게 시집을 보냈고, 1990년 6월엔 해표 식용유로 유명한 신동방그룹 신명수 전 회장의 외동딸 신정화씨를 며느리로 삼았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의 말로?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했던가? 나는 새도 떨어트릴 것 같았던 대통령도 퇴임하면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주장대로라면 노재헌ㆍ신정화 부부가 이혼하기 직전인 상황에서 신 전 회장은 사돈에게서 받은 비자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아들이 결혼했던 1990년 "자녀들(아들 부부)을 위해 맡아서 관리해달라"며 사돈에게 총 654억원을 건넸다고 주장하면서 이 돈을 되찾아 미납 추징금(231억원)을 내겠다는 뜻을 검찰에 전달했다.

아들에 이어 딸도 이혼한다는 소문에 노태우 전 대통령은 마음이 편할 날이 없을 것 같다. 사위 최태원 회장이 아내 노소영씨와 이혼하기로 결심했다는 보도가 최근 나온 것이다. SK그룹은 이혼설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지만 이들 부부의 불화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으며 수세에 몰렸는데, 노씨가 외부에서 남편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노소영씨와 최 회장은 미국 시카고대 유학 시절 만나 결혼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SK그룹의 정경유착 의혹을 비판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자 측근을 모아놓고 "재벌들 돈을 받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김현철씨는 롯데그룹 실세로 불렸던 전문경영인 김웅세 전 롯데물산 사장의 딸 김혜숙씨와 결혼했다. 김혜숙씨는 김현철씨 여동생과 친구 사이로, 어려서부터 두 집을 오가며 김현철씨를 알고 지냈다고 한다.

역경을 딛고 국가원수가 된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벌과 혼맥을 맺지 않았다.

이명박(71) 대통령은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업가로 활동했기 때문인지 혼맥이 가장 화려하다. 현대건설 회장을 지낸 이 대통령의 셋째 딸 이수연(37)씨는 2001년 9월 한국타이어 조양래 회장의 아들 조현범(40) 사장과 결혼했다. 이 결혼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은 효성그룹과도 사돈이 됐다. 대통령 딸을 며느리로 삼은 조양래 회장은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동생이다.

효성그룹은 정계와 재계, 관계에 방대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이명박, 전두환, 노태우 등 전ㆍ현직 대통령은 효성그룹을 통해 겹사돈이 됐다. 조석래 회장의 큰아들 조현준(44) 효성 사장은 운산그룹 이희상 회장 딸 이미경씨와 결혼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 전재만씨와 동서 사이가 됐다.

대통령의 둘째 형인 이상득(77) 전 국회부의장의 혼맥도 눈에 띈다. 코오롱 사장을 거쳐 정계에 진출한 이 전 부의장은 LG그룹 사위를 맞았다. 큰딸 이성은씨는 LG벤처투자(현 LB인베스트먼트) 구자두 회장의 아들 구본천 대표와 결혼했다. 구 회장은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숙부. 구 회장의 셋째 형 구자학 아워홈 회장은 삼성가의 이숙희씨와 결혼해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사위가 됐고, 구 회장의 조카딸은 대림그룹 창업자 이규덕 회장의 며느리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