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그룹 계열사간 출자 그룹 전체 지배 가능
내부지분율 사상 최고 삼성 가장 많이 증가해
이건희 회장 삼성지분 0.52%에 불과
삼성에버랜드 중심으로 6·7단계 순환고리 형성

10대그룹의 지배구조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모든 주주는 자신이 보유한 지분만큼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주식회사의 본래 의미가 무색하게 10대그룹 총수들은 1%도 채 못 되는 지분으로 그룹의 전체 계열사를 사실상 지배하며 최대한의 권리를 누리고 있다. 총수들 자신의 지분율은 점차 떨어지고 있지만 인수ㆍ합병과 기업분할 등의 방법으로 내부지분율을 높여가며 그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주간한국>에서는 10대그룹 총수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지 차례로 짚어본다.

10대그룹 총수들의 지분이 사상 처음 1%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계열사 간 출자 등으로 내부지분율은 매년 급격히 증가하며 총수들의 그룹지배력은 오히려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지난 4월 지정한 자산기준 5조원 이상의 63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하 대기업집단)의 주식 소유 현황을 분석한 결과 총수가 있는 상위 10대 대기업집단(이하 10대그룹)의 내부지분율이 1992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고치인 55.7%에 달했다고 1일 밝혔다.

내부지분율이란 그룹 전체 자본금 중 총수일가(총수 단독 지분+혈족 2~6촌ㆍ인척 1~4촌)의 지분에 계열사 및 계열사 임직원 등이 보유한 지분까지 합친 개념으로 총수가 그룹에 미치는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지닌바 지분이 곧 힘이 되는 주식회사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총수 자신의 지분율이 줄어듦에도 오히려 지배력은 늘어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 순환출자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에게 증여, 그룹의 경영권을 넘겨줬다. 왼쪽부터 최지성 삼성미래전략실장(부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주간한국 자료사진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최근 20년(1993년~2012년) 동안 10대그룹의 내부지분율은 외환위기 시기(1999년)를 제외하고는 줄곧 50% 미만이었으나 지난해 53.5%로 증가한데 이어 올해 역대 최고기록(55.73%)을 경신했다.

같은 기간 동안 총수지분율은 1993년 3.5%에서 전반적인 감소세를 보이며 올해 0.94%까지 떨어졌다. 최근 5년간 1% 초반 수준에서 큰 변동 없이 머물러 있다가 올해 처음으로 1% 미만을 기록했다.

총수지분율이 감소했음에도 내부지분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배경에는 대폭 늘어난 계열사 지분율이 있었다. 1993년 34.9% 수준이던 계열사 지분율은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 올해 52.77%를 기록했다. 특히 삼성전자 LCD사업부의 물적 분할로 삼성디스플레이가 설립된 것과 (주)GS의 에너지사업부문 물적 분할로 GS에너지가 설립한 것이 계열사 지분율 상승을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10대그룹 중 계열사 지분율이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은 삼성이었다. 삼성의 계열사 지분율은 지난해 41.97%에서 올해 58.75%까지 올라갔다. 100% 출자해 삼성디스플레이를 설립한 삼성전자가 에스엘시디의 지분을 매입하며 지분율을 높인 것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계열사 지분율이 급격히 감소한 곳은 SK였다. 지난해 62.56%에 달했던 SK의 계열사 지분율은 올해 48.80%까지 급락했다. 계열사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21.05%) SK하이닉스를 계열 편입한 까닭이다.

수평·방사·환상형 등 복잡

총수지분율이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졌음에도 내부지분율이 최고치를 기록, 10대그룹 총수들이 그룹 전체를 수월히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공정위는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 간 출자를 이용,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어 공정위는 대기업집단별 소유 지분도(이하 지분도)를 최초로 분석, 한 장의 그림에 정리하며 이 같은 의견을 뒷받침했다. 지분도란 지난 4월 기준, 각 집단별 동일인(총수, 법인 등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 및 계열사 간 소유 지분율을 표기한 그림이다.

공정위가 공개한 지분도에 따르면 대기업집단들의 복잡한 출자구조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업집단, 지주회사 전환집단 이외의 대부분 대기업집단에서 수평ㆍ방사형출자 등 다양한 출자 형태가 존속하고 있으며 일부 그룹은 환상형 순환출자구조(이하 순환출자구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지분도에 나타난 소유구조는 총수 있는 집단, 지주회사 전환집단, 총수 없는 민간집단, 공기업집단 순으로 복잡했다.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이 평균 30.4개의 계열사를 보유 중이며 수평ㆍ방사형 출자 등이 많아 소유구조가 복잡(4.44단계)한 반면 총수 없는 집단은 평균 계열사 수가 13.3개로 훨씬 적고 수직적 출자의 비중이 커 상대적으로 단순(1.75단계)했던 것이다. 단, 총수 있는 집단 중에서도 공정거래법상 출자단계가 제한(지주→자→손자→100% 증손)돼있는 지주회사 체제인 집단은 비지주집단(5.03단계)에 비해 출자단계가 적었다(3.21개).

가장 복잡한 구조를 지닌 것은 순환출자구조를 지닌 기업집단으로 이들 모두 총수 있는 집단에 속했다. 10대그룹 중에서는 삼성, 현대자동차, 롯데, 현대중공업, 한진, 한화 등이 순환출자구조를 지녔다. 이중 삼성, 롯데, 한진, 한화 등은 1개 핵심회사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출자고리가 연결된 단핵구조를 취했다. 단핵형 출자순환구조의 경우 총수가 하나의 핵심회사 지분만 틀어쥐고 있으면 전체 그룹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돼 그만큼 총수의 영향력이 강해진다.

공정위 측은 "대기업집단의 복잡한 출자구조는 총수가 적은 자본이나 가공자본으로 그룹 전체 계열사의 경영을 좌우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며 "중소기업의 영역을 잠식한다거나 총수일가의 사익 추구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고 전했다. 이번의 지분도 공개를 시작으로 공정위는 향후 채무보증현황(7월), 내부거래현황(8월), 지배구조현황(9월), 지주회사현황(10월) 등을 공개, 대기업집단의 자율시정 노력을 유도할 계획이다.

순환출자 폐지 정·재계 대립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는 지분율이 적은 총수가 전체 그룹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만드는 대표적 원인인 순환출자구조에 대한 폐지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다음 주께 순환출자 금지 등을 담은 경제민주화 법안을 2차 당론으로 발표할 예정이고 심지어 새누리당 내에서도 경제민주화실천모임 등을 통해 순환출자 규제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을 정도다.

이에 재계는 순환출자구조 폐지를 논하는 정치권의 행보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의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현금이 필요한데다 단기적인 지분변동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워 크게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정부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재벌개혁 정책을 실시,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고자 했으나 여전히 상당수 그룹들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계는 이번 공정위의 지분도 공개에 대해서도 큰 불만을 표하고 있다. 이미 알려진 내용을 굳이 공개함으로써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유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공정위의 발표 직후 오너일가 경영의 장점을 옹호하는 내용의 '가족지배기업 장점 9선 및 경영성과 보고서'를 공개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재계 1위 삼성의 지분도는 10대그룹을 통틀어 가장 복잡한 형태다. 지분도를 공개한 공정위조차 삼성의 지배구조에 대해 "계열사 출자구조가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기업집단 전체의 지배구조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고 평가할 정도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의 지분 0.52%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의 0.54%보다 0.02% 줄어든 수치다. 이 회장의 2~6촌 이내 혈족과 1~4촌 이내 인척을 포함한 친족들의 지분은 총 0.43%로 역시 전년대비(0.45%) 0.02% 하락했다. 이 회장과 친족을 합한 총수일가의 지분이 0.04% 하락할 동안 계열사의 지분율은 41.97%에서 58.75%로 대폭(16.78%) 늘어났다. 계열사 지분율 상승으로 같은 기간 내부지분율 또한 16.55% 늘어났다.

이 회장이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삼성의 순환출자구조 덕분이다. 이 회장은 삼성의 계열사 중 삼성생명보험(20.8%), 삼성전자(3.4%), 삼성라이온즈(2.5%), 삼성물산(1.4%), 삼성종합화학(1.1%), 삼성SDS(0.01%) 등을 지니고 있다. 이 중 이 회장이 그룹을 지배하는데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주식은 삼성 순환출자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삼성에버랜드의 지분이다.

순환출자 핵심 에버랜드

이건희 회장이 3.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에버랜드는 삼성 순환출자구조의 핵심으로 총 14개의 순환출자고리를 지니고 있다. 삼성에버랜드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는 삼성바이오로직스(41.8%), 올앳(30.0%), 이삼성인터내셔널(25.0%), 가치네트(21.0%), 삼성생명보험(이하 삼성생명, 19.3%), 시큐아이닷컴(8.7%), 삼성라이온즈(2.0%), 삼성중공업(0.1%) 등 총 8개사다. 그러나 삼성에버랜드으로부터 시작하는 모든 순환출자고리는 삼성생명을 통해 형성된다.

삼성에버랜드가 19.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은 대표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지분 6.5%를 갖고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SDI의 지분 20.4%를 지니고 있고 삼성SDI는 삼성물산의 지분 7.2%를, 삼성물산은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삼성에버랜드'라는 총 6단계를 거쳐 하나의 순환출자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삼성물산과 삼성에버랜드 사이에 삼성카드를 껴서 7단계의 고리를 형성할 수도 있다.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생명은 삼성물산을 통해서도 순환출자고리를 형성한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의 지분 4.1%를 보유하고 삼성전자는 삼성전기의 지분 20.4%를, 삼성전기는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4.0%를 지님으로써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에버랜드'의 총 6단계 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 6, 7단계를 거치는 삼성생명을 통한 순환출자고리 중 가장 낮은 단계로 형성되는 것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물산→삼성에버랜드',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각각 총 4단계다. 그밖에 삼성에버랜드를 정점으로 하지 않는 순환출자고리도 있다. '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삼성전자' 총 4단계로 이어지는 고리다.

삼성에는 삼성에버랜드를 정점으로 하는 14개와 삼성전자 중심의 1개 등 총 15개의 순환출자고리가 있다. 그러나 계열사 간 지분율이 1% 미만인 경우까지 포함하면 순환출자고리의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금융위원회는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의 주식 8.6%를 보유하고 있어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 위배된다면 초과 지분 3.6%를 3개월 내 처분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삼성카드는 지난달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처분, 지분율을 5%로 맞췄다. 이로써 삼성의 순환출자고리는 일부 끊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전히 큰 틀 안에서는 순환출자구조를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후계구도 가장 빨리 완성

삼성은 다른 10대그룹과 비교할 때 후계구도를 가장 빨리 완성한 곳으로 꼽힌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25.1%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이건희 회장이 1992년 증여한 61억원을 삼성엔지니어링ㆍ에스원 등 계열사 주식에 투자해 550억원으로 늘린다. 이 사장은 늘어난 종잣돈을 이용, 삼성에버랜드가 1996년 10월 발행한 전환사채(CB)를 주당 7,700원에 인수했다. 며칠 뒤 이 사장은 취득한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며 삼성에버랜드의 대주주가 됐다.

61억원으로 이 사장을 삼성의 후계자리에 앉힌 이 회장은 이후 편법 증여 혐의로 삼성특검에 의해 기소됐다. 그러나 2009년 대법원이 허태학ㆍ박노빈 전 삼성에버랜드 사장의 전환사채 저가 발행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며 같은 혐의로 기소됐던 이 회장 또한 무죄가 확정됐다. 이로써 삼성 순환출자구조 정점에 있는 삼성에버랜드의 대주주로 사실상 후계자가 된 이 사장에 대한 법리적 문제는 말끔히 해결, 이 회장으로부터의 직접적인 경영권 승계만 남은 실정이다.

삼성의 순환출자구조를 개혁하고자 하는 정치권의 강한 의지가 있지만 한동안은 구조변경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요구대로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이 회장 일가가 별도의 지주회사를 설립한 뒤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상장계열사 지분을 20% 이상 확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약 20조원 이상의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지분도를 공개한 공정위 또한 순환출자구조 해소에 대해서는 법적ㆍ제도적인 규제보다 정보공개 등 시장을 통해 기업 스스로 자율적인 시정을 해나가는 것이 낫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