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금품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정두언(가운데) 새누리당 의원이 조사를 받기 위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주영기자
저축은행에서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상득(77) 전 새누리당 의원이 검찰에 조사를 받은 데 이어 정두언(55) 새누리당 의원도 검찰에 출두해 세간의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금품수수 사실을 대체로 부정하고 있다. 정 의원 역시 받은 돈을 다시 되돌려 줬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의 진술을 믿지 않고 있다. 검찰이 확보한 여러 조각의 퍼즐을 맞춰보면 이들이 금품을 수수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주간한국>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정 의원은 검찰 수사를 앞두고 이 전 의원 측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자신의 결백을 호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 의원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당시 회장을 소개시켜주고 나는 즉시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 회장과는 개인적인 친분도 없는 관계다. 내가 결백하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느냐"며 당시 상황을 되새겼다.

이 전 의원의 한 측근은 "정 의원이 이런 문자를 왜 보냈는지 잘 모르겠으나 검찰이 수사중인 저축은행 회장과의 커넥션에 대해 결백을 주장하는 것 같다"며 "이 전 의원도 10원짜리 한 푼 받은 적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이 한 번 소개받은 사람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게 잘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이 현재 주장하는 내용을 정리해 보면 두 사람 모두 돈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 금품수수 의혹을 떠넘기는 분위기다. 이 같은 태도는 검찰에서도 그대로 되풀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내부에서는 두 사람 중 하나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금품수수 사실에 대한 결정적인 증언을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검찰은 정 의원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서울시장이던 시절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기 때문에 대선자금과 관련해 뜻하지 않은 수확이 나올 수 있어서다.

정권 말, 다시 동지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산하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단장 최운식 부장검사)은 지난 5일 솔로몬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정 의원을 소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수사팀은 정 의원을 상대로 2007년 초 알게 된 임석(50ㆍ구속기소)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그해 하반기에서 이듬해 사이에 1억원 안팎을 받았는지, 그리고 돈의 대가성 여부를 집중 추궁했다.

수사팀은 임 회장이 정 의원에게 건넨 돈이 어떤 성격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동시에 금품전달과 함께 구체적인 청탁이 있었는지도 캐물었다.

이에 대해 정 의원은 "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지만 국무총리실 후배인 이모 실장을 통해 바로 되돌려줬다"며 '배달사고'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의원에게 돈이 건네졌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소개만 시켜주고 곧바로 자리를 떴기 때문에 그 이후 저축은행 회장과 이 전 의원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정 의원이 소환 직전 이 전 의원 측에 보낸 문자메시지와 거의 비슷한 내용이다.

수사팀은 임 회장이 돈을 건넸다는 진술과 정황 증거, 제3자 진술 등을 제시하며 정 의원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정 의원이 왜 이 전 의원 측에 그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결백호소로 볼 수도 있지만 검찰의 시각은 좀 다르다. 말하자면 조사를 앞두고 양측이 특정 사안에 대한 일종의 '입 맞추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의 관계가 지금은 악화됐지만 현재 검찰이 조사하는 내용은 관계가 악화되기 전 양측에서 대선을 위해 힘을 합치던 시기의 일이다. 따라서 이 일에 대해서는 말을 맞출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또 두 사람의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 정 의원이 문자메시지를 보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 이 문자를 본 이 전 의원의 한 측근도 고개를 갸웃했다. 이 측근은 정 의원이 이 같은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왜 보냈냐는 질문에 "나도 솔직히 좀 의아하다. 정 의원이 대체 왜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는지 의도를 잘 모르겠다. 어차피 검찰에 나가 진술하면 될 일인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대선자금, 대선정국 달군다

이 전 의원과 정 의원 수사가 대선자금 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게 정치권의 분위기다. 대선자금과 관련해 야권에서는 정권 초기부터 "저축은행의 자금이 이 대통령의 대선자금으로 사용됐다"는 말이 돌았다.

또 올 초에는 정치권과 사정기관 전반에 저축은행 수사가 대선자금 수사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다만 이 수사가 본격화되는 데 촉매제가 무엇이 될지 그것만은 예측 불가능했다. 최근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에 대한 본격 조사가 진행되면서 이 두 사람을 통해 사실상 대선자금수사의 닻이 올랐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이 전 의원의 경우 대선자금을 담당했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정권인수위원회 시절에는 정치자금을 여러 군데에서 조달했다는 말도 파다했다. 이 전 의원이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측면에서 도운 핵심 인물이 바로 정 의원으로 꼽힌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명박 정부의 정치자금과 관련해 핵심인 두 인물이 현재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를 본격화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이 다시 적에서 동지로 돌아설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것도 한 배를 탔던 이들이 검찰 수사에 공동대응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이 농후해서다.

지금까지의 움직임만으로 볼 때 여러 혐의를 서로 미루는 형태로 갈 가능성이 크다. 통상적으로 수사기법상 특정 비리에 대해 타인의 증언이나 진술이 나오면 그것을 바탕으로 당사자의 자백을 받아낸다.

수사상의 난맥 중 하나는 당사자와 타인의 경계가 불투명한 가운데 양측이 혐의를 서로에게 미루고 이와 관련된 뚜렷한 물증이 없을 경우다. 이런 식으로 수사가 진행 될 경우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된다.

지금 검찰 수사가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이 받았다는 돈은 현금이기 때문에 증명되기 힘들다. 또 진술 역시 저축은행 회장의 진술만 있을 뿐 당사자들의 자백이 없기 때문에 이른바 '핑퐁게임'만 하다 수사가 마무리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의 '핑퐁게임'으로 이번 수사에 대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편 여야는 이번 검찰 수사가 대선자금수사로 전환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권에서는 이를 의식한 듯 "불법자금 수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며 벌써부터 꼬리 자르기에 나선 분위기다.

야권에서는 이번 검찰 수사를 정치 쟁점화해 대선까지 끌고 간다는 전략이 서 있다. 다만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방향을 주시할 필요가 대두됨에 따라 추이를 지켜보고 본격 여론몰이에 나설 계획이다.

민주통합당은 대선자금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이명박 정부의 여러 비리 의혹들을 같이 끄집어내 쟁점화 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한 상태다. 민주통합당이 주력하고 있는 부분은 측근 비리와 4대강 사업의 비리 의혹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