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연합뉴스
ING생명보험 한국법인(이하 ING생명)이 파업 초읽기에 들어갔다. 9일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의 조정절차가 한 번 더 있을 예정이지만 노사 양측 입장의 간극이 워낙에 큰 탓에 사실상 파업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전체직원 1,030명 중 820명 이상인 노조가 사실상 파업을 결정하면서 현재 진행 중인 ING생명의 매각에도 불똥이 떨어졌다. 오는 18일 예비입찰을 앞둔 ING생명의 인수ㆍ합병 과정에 난항이 예상된다.

ING생명은 1989년 미국 조지아생명보험의 한국지점으로 첫 영업을 시작, 1991년 네덜란드생명보험으로 사명을 변경했다가 1999년부터 현재 이름인 ING생명으로 사업을 해왔다. 급진적인 영업전략과 선진 금융기법으로 2008년부터는 국내 생명보험 빅3인 삼성생명, 대한생명, 교보생명의 뒤를 쫓고 있다. 올해 출범한 농협생명에 4위 자리마저 내주긴 했지만 여전히 외국계 생명보험사 중에서는 1위다.

성적표는 더욱 좋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ING생명의 2011회계연도 당기순익은 2,556억원으로 전년대비 무려 56.58%나 증가했다. 전체 생명보험업계의 당기순이익이 15.85% 감소했고 1, 2위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 교보생명 또한 각각 51.54%, 14.63% 감소한 것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수치다.

잘 나가는 ING생명이 매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은 네덜란드에 위치한 ING그룹의 유동성 위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ING그룹은 2008년 정부로부터 100억유로(약 16조원)의 구제금융을 받아 2013년까지 이를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속적인 사업 매각에도 여전히 약 5조원 내외의 빚이 남아있는 ING그룹은 ING생명 한국법인을 포함한 ING생명 아시아ㆍ태평양법인을 매각, 재무불안을 해소할 방침이다.

자체부실 없어 매물 인기

ING생명은 기존에 매물로 나왔던 여타 금융사와는 다르게 자체부실이 없는 까닭에 여러 보험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 ING아시아가 보유한 영업망도 상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후문이다. 당초 금융업계에서는 ING 아태법인 통째로 사들이기 위해서는 약 8조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법인과 나머지 국가 법인 매각에 각각 4조원씩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ING생명 아태법인 매각은 지난 1월 매각 주관사로 JP모건과 골드만삭스를 선정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4월 JP모건과 골드만삭스 국내외 인수후보군 20여개사에 투자안내문을 발송했고 6월 중순에는 ING아태법인이 위치한 홍콩에 각국 매입 희망자들이 실사에 매달리기도 했다. ING그룹은 내달 16일 본입찰을 거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현재 ING생명 인수에는 KB금융, 대한생명, AIA 등 대형 보험사들이 달려들어 접전을 벌이고 있다. ING그룹은 ING생명 아태법인 전체를 묶어 일괄 매각할 계획이지만 KB금융지주와 AIA는 한국법인에, 대한생명은 동남아 법인 인수에 관심을 보고 있어 매각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4~5조원을 실탄을 보유한 데다 우선매수청구권을 지니고 있는 KB금융이 가장 유력한 후보자로 떠오르고 있지만 우리금융 합병설에 휘말리며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노조 13일 파업 찬반투표

문제는 ING생명 노조의 파업 여부다. 적어도 이달 중 파업에 돌입할 계획인 ING생명 노조는 매각의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노조 측은 단체협약에 따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성과급 문제 해결, 고용안정협약서 체결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이를 모두 수용할 경우 매각이 쉽지 않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ING생명 노조 측은 지난달 28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내고 5일과 9일 조정을 진행했다. 중노위 조정신청은 정부의 조정과 중재를 요청하는 취지로 열흘 동안 갖게 되며 이 기간 동안 교섭이 이어지지 않으면 노조는 파업권을 갖게 된다. ING생명 노조는 13일 파업 찬반투표를 가진 후 찬성이 50%가 넘으면 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 4일부터는 아예 본사 앞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간 상태다.

이기철 ING생명 노조위원장은 "여러 언론에 나온 것처럼 9일부터 파업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라며 "조정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사측과의 입장이 너무 차이가 커 13일 찬반투표 이후 파업을 하게 될 것 같다"고 전했다.

ING생명 노사 간에 가장 큰 입장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고용안정협약서의 체결이다. 노조 측은 ING생명은 대규모의 흑자를 내는 우량회사인데 매각으로 주인이 바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구조조정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사측은 고용안정을 보장하면 매물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올해 나온 매물 중 건실한 영업력을 지닌 ING생명이 가장 우량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직원 대부분이 파업에 돌입한다면 보험 신계약 유치와 기타 서비스에도 차질이 빚어져 최악의 경우 매각 절차가 아예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노사갈등 심화시킨 HR BCP
파업 대비 비상인력 확충안… 노조 "사장·임원 퇴진" 반발


ING생명 노사 간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9년 8월 설립된 ING생명 노조는 이미 지난해 3월 성과급 책정을 놓고 크게 충돌한 바 있다. 당시 노조는 회사가 임의로 책정한 2010년분 성과급을 반납, 파업과 농성 등 쟁의행위를 했다.

ING생명의 노사갈등이 심해진 배경에는 사측이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HR BCP(Human Resource Business Continuity Plan)가 있었다. BCP는 본래 기업들이 테러나 화재, 자연재해 등이 발생해도 비즈니스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비상 체계를 구축해 놓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ING생명의 HR BCP는 노조원들이 파업을 해도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비정규직으로 비상 인력을 확충해놓는다는 내용이 포함, 사실상 노조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된다.

아예 초안부터 "노조의 파업 돌입시 희망퇴직자 등 외부인력을 투입한다"고 명시된 해당 문건을 입수한 ING생명 노조는 그간 사측에 지속적으로 계획 철회를 요청했다. 이에 사측은 내부 검토를 거쳐 이를 철회했지만 비정규직, 파견직 채용을 확대해 파업시 업무 지장을 방지한다는 계획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기철 위원장은 "사측은 파업을 무력화하기 위해 명백한 노동법 위반을 저질렀음에도 여전히 이에 대한 사과 한마디조차 없다"며 "파업 전 협상에서 HR BCP 관련 임원 및 사장 퇴진까지 요구하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ING생명 관계자는 "BCP의 경우 이미 그룹 차원에서 2003년부터 시행되고 있었고 2009년 노조가 생기면서 그 변수가 반영된 것일 뿐 노조 탄압 등의 목적은 절대 아니다"라며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고객에게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의도로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