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 ○○○들아! 가만히 두지 않겠다." 술에 취한 그 남자가 소리를 지르면 의사부터 간호사, 환자까지 모두 숨을 죽였다.

"입원을 시켜달라." "돈을 빌려달라." "진통제를 놓아달라." 그가 병원 응급실에 나타나면 비상이 걸린다. 의사와 간호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진료를 방해한 횟수를 따져보면 무려 131회였다.

# 그날도 아버지(65)는 대낮부터 술을 마셨다. 술주정은 심했고 가족은 괴로웠다. 참다 못한 딸(40)이 "술을 계속 먹을 거면 여기서 같이 죽자"고 외쳤다. 이를 못마땅히 여긴 아버지는 딸과 몸싸움을 벌였다. 아버지는 칼에 찔렸고 놀란 딸은 경찰에 전화했다. "내가 아버지를 찔렀다."

# "야, 냉면 내놔. 장사 오늘만 할 거야?" 그날도 어김없이 술에 취한 남자가 찾아왔다. 여자 혼자 장사하기에 행패를 부려도 속수무책이었다. 소리를 버럭 지르며 발로 의자를 걷어차면 손님은 나갔다. 신고를 해봤지만 처벌이 약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선지 술에 취한 그 남자는 10년 가까이 여주인을 유린했다.

경찰이 주폭(酒暴)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주폭이란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주취폭력배의 준말. 경찰은 만취 상태에서 상습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기물을 파손하며 사람을 때리는 사람을 주폭으로 규정했다.

주폭이란 서울경찰청 김용판 청장이 2010년 충북경찰청장으로 일할 때 만든 말이다. 술에 취해 경찰에게 행패를 부리는 음주폭력을 목격한 김 청장은 "경찰관에게도 이 정도인데 서민에게는 얼마나 심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공무집행 사범 가운데 70% 이상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들어 주폭과 전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술에 취해 상습적으로 폭력을 일삼는 음주폭력을 막으면 범죄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달 18일 전체 회의에서 만취 상태에서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 처벌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강화된 주폭 처벌 기준은 7월 1일부터 적용됐고, 주폭이 정신을 잃거나 판단력을 상실할 정도가 아니면 형을 깎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술에 너그러운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주폭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지난 4일 조선족 아내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홍모(67)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홍씨는 2일 저녁 8시에 강동구 성내동 자택에서 술에 취한 채 아내 이모(57)씨를 흉기를 찔렀다. 전과 6범인 홍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셨고, 동네에서 술주정이 심하기로 유명했다.

경찰에 붙잡힌 홍씨는 "막걸리를 두세 병 마신 상태였는데 아내가 칼로 위협하자 흥분해 빼앗은 다음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이씨를 부검한 결과 이씨 손에선 칼을 쥔 흔적이 없었다. 경찰은 알코올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술에 찌든 홍씨가 아내에게 상습적으로 손찌검을 해온 것으로 파악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병원 응급실에서 131차례나 진료를 방해한 이모(42)씨를 구속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응급실 주폭으로 유명했던 이씨는 2008년부터 지난달까지 무려 131차례나 서울 시내 모 병원 응급실에서 행패를 부렸다.

이씨는 간호사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관을 짜서 찾아온다"고 소리를 질렀다. 의사와 간호사 등은 그동안 보복을 두려워해 차마 신고하지 못했다.

이씨에 대한 소문을 듣고 수사를 시작한 경찰은 이씨가 병실 바닥에 눕는 등 의료진의 진료를 방해하고 응급환자 치료를 방해한 사실을 확인했다. 피해자들은 이씨의 행패가 더 심해지거나 보복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진술을 꺼리기도 했다.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은 "죽인다" "가만두지 않겠다" 등의 협박을 피해 병원을 그만두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환자 생명까지 위협하는 응급실 주폭을 막고자 경찰서 주폭수사전담팀과 병원 당직자를 연결하는 전화를 마련했다.

술 때문에 시작된 가정폭력이 비극적으로 끝난 사례도 있다. 성남중원경찰서는 지난 4월 주폭이었던 가장 박모(47)씨를 질식사하게 한 아내 이모(47)씨와 둘째 딸(27), 넷째 아들(15)을 붙잡았다.

숨진 박씨가 술에 취해 큰딸(29)을 마구 때리자 아내 이씨는 박씨를 제압해 손과 발을 묶고 입을 청테이프로 막은 다음 이불을 뒤집었다. 둘째 딸과 넷째 아들은 박씨를 제압하는 데 도움을 줬다. 박씨가 이불 속에서 질식해 숨지자 이씨 등은 경찰에 자진 신고했다.

각종 음주폭력 사건이 쏟아지자 주폭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주폭 검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경찰청이 주폭과 전쟁을 선언하면서 경찰서마다 실적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주취폭력배는 알코올 중독자일 가능성이 큰데 경찰이 단속에만 집중할 뿐 치료에는 관심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외국처럼 알코올 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고 처벌보다 치료 명령을 내린 다음 음주폭력이 반복되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도 꽤 있다.

걱정과 비판이 꽤 많지만 경찰이 펼치고 있는 주폭과 전쟁은 술주정에 대한 너그러운 인식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주폭 검거에만 몰두한 채 알코올중독 치료를 등한시한다면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