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유통업자들이 대상베스트코의 골목상권 침해에 반발해 농성을 벌이고 있다.
중소상인들의 생계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상생은 뒷전, 무차별적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대기업들 때문이다.

따가운 여론과 상인들의 호소, 관련 부처의 선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탄탄한 자본력과 유통망 앞에 중소상인들은 속수무책이다.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골목골목에서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중소상인들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대기업은 대체 어딜까. <주간한국>은 중소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나쁜 대기업'들을 차례로 짚어본다.

베스트코vs도매상 거친 일전

'청정원', '미원'으로 잘 알려진 대상그룹이 최근 지역 중소 유통업자들과 일전을 벌이고 있다. 유통업자들에 맞서 전선의 최전방에 서 있는 건 자회사인 대상베스트코. 식자재 유통을 주요 사업 목적으로 하는 회사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유통업자들의 반발은 거세다. 회사 앞에 모여 농성을 벌이는가 하면 계란 세례를 퍼붓기도 했다. 포크레인을 동원해 대상 물류창고 출입문 앞을 가로막는 일도 있었다. 일부 상인들은 대상에 대한 불매운동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유통업자들이 대상베스트코과 이처럼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유는 과연 뭘까.

지역 유통업체 18개 인수

발단은 대상베스트코가 식자재 유통업에 깊숙이 진출한 데서 비롯됐다. 대상그룹은 지난 2010년 대상베스트코를 설립한 이후 안양 대전 인천 청주 원주 부산 등지에서 지역 식자재 유통업체를 차례로 인수해 나갔다.

그 결과 대상베스트코는 ▲신다물유통 ▲우덕식품 ▲에이에스푸드서비스 ▲푸덱스식자재 ▲푸드엔푸드시스템 ▲청정식품 ▲한일마트 ▲극동물류푸드 ▲싼타종합유통 ▲청정식품 ▲한미종합식품 ▲중부식자재 ▲배추벌레 ▲송정유통 ▲대한식자재 ▲만세종합유통 ▲예름에프에스 ▲한려종합식품 등 모두 18개의 지역 유통업체를 인수했다.

대상베스트코가 골목을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통업자들은 까맣게 몰랐다. 대상베스트코가 대기업의 이름을 감춘 채 골목에 숨어 들었기 때문이다. "대상이 지역업체를 인수한 뒤 그 업체 이름으로 신규 매장을 내는 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왔다"는 게 유통업자들의 주장이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장녀 세령씨
특히 대상베스트코는 지역 유통업체의 인수와 함께 대형 식자재 매장도 설립해 나갔다. 그리고 대리점 출고가보다 낮거나 비슷한 가격으로 파격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영세 식당에 식자재를 배달하거나 작은 점포에서 판매하며 생계를 꾸려온 영세 유통업자들로선 대기업의 막대한 자본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내 식자재 유통업 시장은 약 20조원 규모다. 이 중 92%를 2000여개의 개인사업자나 중소 도매업체가 점유하고 있다. 대기업의 입장에선 치열한 경쟁 없이도 시장을 잠식할 수 있는 '먹잇감'인 셈이다.

반면 대기업의 등장은 중소업자들에겐 재앙이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때문이다. 실제, 유통업자들은 대상이 골목으로 들어온 지 불과 3개월여 만에 매출이 3분의 1 가까이 줄었다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유통업자들이 반발하는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이에 유통업자들은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 신청을 하며 맞서고 있다. 중기청은 "대기업의 진출로 인한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사실이 인정됐다"며 일부 지역의 사업조정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게 유통업자들의 생각이다. 일을 잠시 미뤄놓은 것뿐 대기업이 밀고 들어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통업자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차녀 상민씨
오너家 배 불리는 구조

그럼에도 대상베스트코는 요지부동인 모습이다. 최근 대기업의 골목 상권 장악이 사회적인 이슈로 비화된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도 식자재 유통업체 인수를 위한 물밑 작업을 계속하는 등 대상베스트코의 확장세는 거침이 없다.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식자재 시장의 성장 잠재력 때문이다. 업계에선 해당 시장이 연평균 10%씩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증가하면서 외식산업이 급격히 발전한 때문이다.

또 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마켓(SSM)과 달리 유통산업발전법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대상베스트코가 식자재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또 재계 일각에선 대상베스트코의 지배구조와 연관 짓는 시선도 있다.

대상베스트코의 지분은 과 그의 장녀인 세령씨, 차녀인 상민씨가 각각 10%씩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대상㈜으로 나머지 70%를 갖고 있다.

대상㈜의 최대주주는 지주사인 대상홀딩스로 지분 39.52%를 쥐고 있는데, 이 회사의 지분은 차녀인 상민씨가 37.42%를, 세령씨가 19.9%를 각각 가지고 있다. 또 임 명예회장이 2.89%를, 그의 부인인 박현주 대상그룹 부회장이 2.80%를 보유하고 있다. 대상베스트코에서 발생한 수익이 돌고 돌아 결국 오너가(家)의 호주머니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다.

이런 이유로 대상베스트코는 유통시장을 계속해서 잠식해 나가고 있다. 당연히 영세 식자재 유통사업자들이 설 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상베스트코의 욕심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이 회사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