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왼쪽 첫 번째), 김석동 금융위원장(두 번째), 김기철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세 번째), 윤용로 외환은행장(네 번째)이 지난 2월 17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하나금융지주-외환은행 노조 간 협상 타결 기자회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우리, 국민, 신한은행 등 대다수 시중은행원들이 여름을 맞아 일제히 반소매 하계근무복(이하 쿨비즈)를 착용하고 있다. 은행의 상징 색깔에 맞춘 쿨비즈를 통해 홍보효과는 물론, 구성원으로서의 상징성과 직원들끼리의 일체감까지 느낄 수 있다는 평이다. 그러나 유독 외환은행 직원들은 반팔 와이셔츠에 노타이라는 밋밋한 복장으로 올 여름을 보내고 있다.

당초 하나금융지주(이하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경영진의 제안을 받아 쿨비즈를 올해부터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독립경영 침해'라는 명목으로 외환은행 노조가 반발했고 내부보고 지연 등 실무적인 문제까지 겹치며 결국 도입시도는 무산됐다.

단순히 복장 문제만이 아니다. 올해 초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는 '독립경영'에 대한 견해차를 보이며 수시로 갈등을 벌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하나금융의 무리한 '끌어안기'가 오히려 외환은행의 반발심을 자극하게 된 형국이다.

극적합의 골자 '독립경영'

하나금융이 2010년 1월부터 추진해온 외환은행 인수작업이 완료된 것은 올해 2월이었다. 금융위원회 승인(2012년 1월 27일), 대금 납입(2012년 2월 9일) 등 만만치 않은 인수과정을 모두 거친 하나금융이 마지막으로 해야 했던 과정은 외환은행 노조와의 합의였다.

김기철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은 지난 4월 20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에게 "독립경영을 보장한 합의서의 내용을 지켜라"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보냈다.
KB, 신한, 우리 등 여타 금융지주사에 비해 규모가 작았던 하나금융은 외환은행을 끌어안으며 단숨에 2~3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점포 수로는 업계 2위로 올라섰고, 취약했던 기업금융 부문도 보완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하나금융에 인수되는 것을 반대하는 외환은행 직원들과의 화학적 결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총파업 등 극심한 인수 후유증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외환은행 직원들과의 화학적 결합을 위해 하나금융이 선택한 강수는 '5년간 독립경영 보장'이었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노조가 설정한 협상 데드라인이었던 지난 2월 17일, 극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합의문의 골자는 "외환은행이 하나금융의 자회사 편입 이후 외환은행 명칭을 쓰는 독립법인으로 존속하고 편입 5년 뒤 대등합병 원칙에 의해 합병을 협의한다"는 것이었다. 충청은행(1998년), 보람은행(1999년), 서울은행(2002년)을 인수했을 당시 1년 내 합병했던 것과 비교하면 하나금융이 크게 양보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외환은행의 독립법인 조건으로 ▲독립법인 존속기간 동안 노사관계, 인사, 재무, 조직 등 독립경영 보장 ▲인사 및 노사담당 임원은 외환은행 출신 선임 ▲인위적 인원 감축 없고 영업점포 수 이상의 점포망 운영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당시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두 은행 중 잘하는 곳이 5년 후 합병 주체가 될 것"이라며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독립경영 침해하고 있다"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가 '독립경영'에 대한 합의서를 작성한 지 채 5개월이 못돼 갈등은 극에 달했다. 외환은행 노조는 하나금융이 합의 이후 예산ㆍ인사ㆍ업무 간섭 등 숱한 합의위반을 시도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외환은행 노조 측에 따르면 하나금융은 ▲자사의 '시너지 박스'라는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에 외환은행의 모든 고객정보를 제공하라고 요구하고 ▲2억원 이상의 신규투자는 하나금융에서 사전 승인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으며 ▲하나은행 인근의 점포설립을 사실상 금지하며 외환은행의 점포 순증을 막고 ▲외환은행의 신입직원 채용 및 연수를 하나금융 차원에서 진행하기로 결정하는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경영방해를 해오고 있다.

이에 외환은행 노조 측은 지난 4월 2일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앞으로 '2012년 2월 17일자 합의서 준수 요청'이라는 제목의 내용증명을 보내기도 했다. 내용증명에는 "노사관계, 인사, 재무, 조직 등 경영활동 전반에 대해 독립경영을 보장한 합의문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하나금융 측 일부 인사들이 시너지 증진, 효율 등을 명분으로 하여 합의내용에 어긋나는 요청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독립경영? 분리경영?

외환은행 노조의 주장에 대해 하나금융 측은 독립경영의 주체가 하나금융이 아닌 하나은행이기 때문에 지주사 차원에서 필요한 부분을 요구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이라는 투트랙(two track) 전략을 취할 뿐이지 계열사가 어떻게 지주사로부터 완전한 독립경영을 이룰 수 있겠느냐는 주장이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독립경영이라는 것은 5년 동안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합병 없이 별도로 간다는 뜻이지 지주사의 간섭을 완전히 받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며 "시간이 지나고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가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이에 외환은행 노조 측은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이 따로 경영을 하는 것은 독립경영이 아닌 분리경영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독립경영이라는 것은 하나금융으로부터 경영침범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경영을 한다는 뜻으로 하나금융의 주장은 합의서를 전면 부정하는 내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외환은행 노조는 최근 하나금융의 경영간섭 사례를 모아 금감원에 투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하나금융이 독립경영 합의를 아직 위반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을 뺐다. 외환은행의 경영에 관련한 제안을 했다가 노조가 반발하면 철회하는데 그 정도 수준은 독립경영 위반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또한 문제가 되는 독립경영 합의는 양측의 사적인 영역이라 이를 어긴다고 금감원이 제재할 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외환은행 노조의 기대와는 다르게 하나금융은 5년의 독립경영 기간 동안 통합을 위한 끌어안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 지붕 아래에 생각이 다른 두 가정이 있는 이상 한동안은 잡음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하나금융 경영간섭 주요 사례


▶HANA 시너지박스
하나금융의 ' 시너지박스' 라는 CRM 툴에 외환은행의 모든 고객정보 제공 요구

▶KEB 고객정보 요구
생명보험업 자회사를 내세워 TM 하겠다며 월 15만건의 고객정보 요구

▶IT 신규투자 사전승인 추진
지주사 임직원들로 구성된 ' IT투자심의(실무)위원회' 에서 2억원 이상의 신규투자는 사전 승인하겠다는 방침

▶점포증설 억제
하나은행 근처의 점포 설립을 사실상 금지함으로써 올해 외환은행 점포순증 전무

▶중복차주 신용등급 일치 추진
중복차주의 신용등급 등을 하나은행 기준에 일치시키려 추진

▶외환은행 공채 폐지 추진
신입직원 채용 및 연수의 지주사 차원 공동진행 추진

▶지주사 행사 강제동원
어린이날, 어버이날 가족동원, 7월 14일 축구 응원행사 동원

▶복장 및 CI 동일하게 추진
쿨비즈 등 하나금융과의 통일복장 요구. 향후 달력과 명함 등 공동제작 요구 예상

*출처=외환은행 노조 배포자료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