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 대통령'으로 불렸던 김운용(81)씨는 태권도계 대부로 대한체육회장을 지냈다.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였던 김씨는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회장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승승장구하던 체육 대통령은 2001년부터 쇠락하기 시작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 체육 대통령을 꿈꾸던 김씨는 2001년 7월 16일부터 패배와 구설의 늪에 빠졌다. 김씨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IOC 위원장 선거에서 자크 로게(벨기에)와 경합했지만 대권을 잡진 못했다. 후안 사마란치 전 위원장과 유럽세가 로게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탓에 아시아인 최초의 IOC 위원장은 탄생할 수 없었다.

김운용의 아성은 한국에서도 무너졌다. 세계태권도계에서 철옹성을 쌓았지만 한국에선 김운용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졌다. 태권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불거진 편파 판정과 태권도협회 간부 비리 사건으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2001년 11월 15일 대한태권도협회장과 국기원장 자리를 놓았다.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2002년)에서도 구설에 올랐다. 안톤 오노(미국)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김동성이 금메달을 빼앗겼지만 대한체육회장으로서 "성공적으로 치러진 올림픽이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솔트레이크시티 뇌물 사건에 연루된 터라 '오노보다 김운용이 더 나쁘다'는 말까지 들어야만 했다. 결국 2002년 2월 28일 대한체육회장직을 사퇴했다.

뇌물 수수와 외환 관리법 위반으로 검찰 수사를 받자 2004년 1월엔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와 국회의원 자리도 내놓았다. 팔다리가 묶이고 날개가 꺾인 신세였지만 2005년엔 IOC에서도 쫓겨났다. 체육계와 태권도계에선 김운용의 공도 많다는 평가도 있다. 외교관 출신답게 정치와 외교에 능해 서울올림픽 유치와 태권도 세계화에 공이 많았다.

그러나 물이 고이면 썩는 법이다. 아들과 측근이 각종 비리에 연루되면서 김운용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졌고, 30년 동안 공들여 쌓은 체육 대통령이란 자리는 불과 3년 만에 무너졌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