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 당선후 인사하는 강기갑 대표
두루마기와 수염 그리고 범상치 않은 눈빛. 외모만 보면 무협지에 나오는 도인(道人)을 연상케 한다.

지난 4ㆍ11 총선 직전 "반드시 MB 정권을 심판하겠다. 저부터 새로운 혁신, 새로운 정치를 위해 모든 것을 걸겠다"며 20여 년간 길러온 수염을 깎고, 한복 두루마기를 벗었지만, 그래도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두루마기와 수염이다.

'강달프' 강기갑(59) 통합진보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9~14일 실시된 당대표 선거에서 2만861표(55.8%)를 얻어 1만6,479표(44.2%)에 그친 구 당권파 강병기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따돌리고 당대표에 올랐다.

영화 속 간달프처럼 해결사로 등장한 강 신임대표에게 당대표 직함은 이번이 두 번째다.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 분당된 직후였던 2008년 7월에도 그는 당대표로 선출됐었다.

당시 총선 패배와 당원들의 집단 탈당으로 당 지지율은 끝없이 추락했지만, 강 대표 취임 1년여 만에 10%대를 회복했다. 강직하고 진솔한 강 대표의 힘이 컸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2009년 1월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농성중인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에 대한 강제해산과 국회 경위들의 최고위원회의 방해에 항의하기 위해 박계동 사무총장실을 찾아가 원탁 위에 뛰어오르고 있다 이 장면 때문에‘공중부양’ 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자주 그를 지칭할때 거론되곤 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1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강 대표의 일성은 사과였다. 강 대표는 "눈물로 반성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되돌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며 "이제는 사과가 아닌 사자후를 토해내야 할 때"라고 힘줘 말했다.

강 대표는 취임사에서 여러 차례 '과감한 혁신'이라는 표현을 썼다. 또 구 당권파를 염두에 둔 듯 "당원들의 희생과 헌신을 왜곡하고 당 위에 군림하는 패권적 정파활동은 종식시킬 것"이라며 "이제는 분열하는 진보가 아닌 통합하는 진보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강달프와 공중부양

강 대표는 사천농고를 졸업한 뒤 23세에 한국가톨릭농민회에 입회하면서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가톨릭에 심취한 그는 6년간 수도자 생활을 했고, 한국가톨릭농민회 경남연합회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농민운동가의 길에 접어들었다.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한 강 대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등을 부르짖으며 69일간 단식을 하는 등 4년간 농민의 대변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난 7월 15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2기 지도부 출범식에서 강기갑 신임대표(앞줄 왼쪽부터), 심상정 원내대표, 강병기 당대표 후보, 노회찬 의원, 이혜선 최고위원, 유선희 최고위원 등 참석자들이 민중가요를 부르고 있다.
18대 총선에서 고향인 경남 사천에 출마한 강 대표는 당시 한나라당의 실세였던 이방호 사무총장을 누르는 파란을 일으키며 재선에 성공했다. 또 미국산 소고기 파동 때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며 일약 당의 얼굴로 떠올랐다.

두루마기에 긴 수염이 트레이드마크였던 강 대표는 영화 '반지의 제왕'의 주연급인 '간달프'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강달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강 대표가 대중적 인기를 누린 것도 '강달프'라는 별명을 얻은 이후부터다.

'강달프'가 애칭이라면 '공중부양'은 달갑지 않은 꼬리표다. 강 대표는 2009년 1월 초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국회 농성 강제해산에 반발하며 국회 사무총장의 책상에 올라 발을 구르고 문을 발로 차다가 '공중부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강 대표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사천에서 3선에 도전했으나 새누리당 여상규 의원에게 석패했다. 8년간의 의정활동을 접게 된 강 대표는 2선으로 물러나는 듯했다.

강 대표는 그러나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 경선 의혹이 불거진 이후 신 당권파 중심의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며 다시 당 전면에 나섰다. 그리고 구 당권파인 이석기 김재연 의원 제명 등 이른바 혁신 작업을 주도했다.

야권연대 진도 낸다

강 대표는 지난 17일 오전 국회에서 첫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국민에게) 박수를 받을 것인지, 더 큰 실망을 안겨드릴지도 우리의 몫"이라며 "당원과 국민이 주신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심기일전하겠다"고 다짐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파문 이후 소원해졌던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에도 진도를 낼 계획임을 분명히 했다. 강 대표는 "갈 길이 멀기도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걱정하셨던 야권연대는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며 "(민주통합당과) 공동 정책 이행을 위한 기구 구성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또 이날 오전 BBS 라디오 '고성국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야권연대를 위해 7월 안으로 이번 사태에 대해 모두 정리할 계획"이라며 "우리 당의 알토란 같은 대선 후보들을 과시하면서 민주통합당과는 야권연대를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

강 대표 등 신 당권파가 구상하는 야권연대는 '선(先) 정책 공조, 후(後) 후보 단일화'다. 이와 관련 강 대표는 "여러 사정으로 다소 늦어지긴 했지만 9월까지는 후보 선출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통합진보당은 대선 후보를 선출하고 난 뒤 공동 정권 창출 등을 조건으로 민주통합당과 후보 단일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갈 길이 험난한 강 대표는 구 당권파의 간판 격인 이정희 전 대표에 대해 예리한 '견제구'도 날렸다. 강 대표는 이 전 대표의 대선 출마설과 관련해서 "(이 전 대표가) 어떤 의지를 갖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면서도 "(이 전 대표가) 잠시 정치 현장에서 물러나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번 당대표 선거 때 많이 움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일침을 놨다.

이석기 김재연 제명 추진 그러나…

강 대표는 지난 17일 BBS 라디오에 나와 통합진보당 사태의 단초가 된 이석기 김재연 의원 처리에 대한 입장도 확실하게 밝혔다. 강 대표는 "아마 내주(7월 23~29일) 내로 처리하지 않을까 전망한다"고 운을 띄웠다.

강 대표는 이어 "제명은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줄기차게 추진해온 사안이고, 당심도 이번에 정리됐기 때문에 상식과 순리를 벗어나지 않게 무난히 처리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강 대표와 뜻을 함께하고 있는 심상정 원내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제명안은 충분히 논의하고 당원 뜻과 국민 바람에 부합할 수 있도록 책임 있게 처리하겠다"며 강 대표를 거들고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당의 '대주주'로 남아 있는 구 당권파 측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구 당권파 측의 유선희 최고위원은 "지난번처럼 개입하고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조율하고 합의를 만들어가는 지도부가 돼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유 최고위원은 이어 "의원단 제명 문제도 일부 의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과정에서 결정됐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 문제도 모든 의원들이 참여하는 속에서 정치적으로 잘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 당권파 측은 국민적 여론 등을 감안해 공개적인 비판이나 반발은 자제하고 있지만 불쾌한 감정까지는 숨기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당대표 선거 결과는 인정하겠지만 강 대표 등 이른바 신 당권파의 독주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당이다.

원내대표 선출 이후 첫 의원총회가 열렸던 지난 16일 구 당권파 의원 6명 모두 불참한 게 단적인 예다. 구 당권파의 저항을 '합리적으로' 잠재우는 것이 강 대표 리더십의 첫 번째 시험대인 셈이다.

●강기갑 신임 통합진보당 대표는

생년월일: 1953년 6월 7일

출생지: 경남 사천

최종학력: 경남 사천농고

가족관계: 부인 박영옥씨와 3남 1녀

주요경력: 사천시 농민회장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남도연맹 부의장

민주노동당 당대표

국회농ㆍ어업 회생의원모임 공동대표

17, 18대 국회의원

통합진보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

통합진보당 당대표

강기갑 살린 '숨은 표심'
● 당대표 경선 '작은 기적'

강기갑의 승리는 신 당권파에는 '작은 기적', 구 당권파에는 '멘붕(멘털 붕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구 당권파는 1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경기동부연합과 광주전남연합의 조직표에 5,000명쯤 되는 부산경남연합의 든든한 지원을 받은 상태에서 선거를 치렀다.

반면 혁신파는 8,000명이 넘었던 국민참여당 당원들이 통합 과정에서 6,000명 가량으로 줄었고, 인천연합 등 민주노동당계 비주류와 진보신당 탈당파를 합쳐도 1만 명 정도였기에 절대 열세가 예상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온라인 투표에서 강 대표가 강병기 후보에 2,000표 가까이 앞섰고, ARS 모바일 투표에서는 4,295명의 응답자 가운데 3,707명이 강 대표를 지지했다. 강 대표의 승리는 이른바 '숨은 표' 덕분이었다.

특히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과정에서 실시한 ARS 모바일 투표에 참가한 사람들은 신구 당권파 어느 한 쪽에 속하지 않은 순수한 일반당원이라는 점에서 강 대표를 비롯한 혁신파들에게 힘이 실리고 있다.

강 대표가 당선 인사에서 "저의 당선으로 혁신을 바라는 민심과 당심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한 것도 일반당원들의 '숨은 표'를 염두에 둔 것이다.

구 당권파의 저항이 만만치 않지만, 일단 강기갑호의 순항을 예상할 수 있는 것도 침묵하는 다수, 일반당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심상정, 당 대선후보 1순위
노회찬·유시민·이정희도 거론

비례대표 부정 경선 파문으로 난파 위기에 몰렸던 통합진보당이 강기갑 대표-심상정 원내대표 체제 출범과 함께 대선 체제에 돌입했다.

강 대표는 취임 직후 "여야 정당들이 대선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9월까지 대선후보 선출절차를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당내에서 스타급이라 할 '선수'들이 자천타천 대선 후보 물망에 오르고 있다. 후보로는 강 대표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심 원내대표, 혁신파인 노회찬 의원, 유시민 전 의원, 구 당권파인 이정희 전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지금은 당 신뢰 회복에 전력투구할 때"라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심 원내대표는 당내 여러 인사 중 대선후보로 가장 적합하다는 평을 듣는다. 당초 심 원내대표는 당대표 출마를 검토했으나 '당의 신뢰 회복이 먼저'라는 논리에 따라 뜻을 접었다.

혁신파의 대표주자 격인 노회찬 의원과 유시민 전 의원도 당내 후보로는 손색없다는 평가다. 노 의원 측 역시 대선 출마와 관련해서는 언급을 자제하고 있으나 출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 전 의원은 당내 인사 중 대중적 인지도가 가장 높다는 게 강점으로 꼽힌다. 비례대표 부정 경선 파문으로 당의 지지율은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도 유 전 의원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원내대표에 이어 당대표까지 내준 구 당권파로서는 이정희 전 의원이 마지막 보루다. 잇단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들었던 구 당권파가 대선후보 배출에마저 실패한다면 심각한 존립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 전 의원이 조만간 활동을 재개할 거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