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 1부 김영종 부장검사가 지난달 27일 삼성과 LG의 아몰레드 핵심기술 해외유출 사건과 관련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요즘 LG디스플레이의 소식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그것도 기술유출, 담합, 실적 및 재무유동성 하락 등 대부분 기업 이미지 하락과 직결된 중요한 사안들이다. 6분기에 걸친 적자행진을 끊고 올 하반기부터 재도약을 준비하는 LG디스플레이로서는 이어지는 악재에 전전긍긍할 뿐이다.

LG디스플레이는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s: 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유출 사건을 둘러싸고 삼성디스플레이와 치열한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양사는 각각 '사과와 손해배상 청구',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주장하며 강하게 대치 중이다.

양사의 공방은 검찰이 OLED 기술유출 혐의로 삼성디스플레이 전ㆍ현직 연구원들 및 LG디스플레이 임직원들을 기소하면서 발생했다. 수원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최길수)는 삼성디스플레이의 핵심기술을 빼돌린 혐의(산업기술유출방지법 위반)로 조모씨 등 삼성디스플레이 전ㆍ현직 연구원 6명과 정모씨 등 LG디스플레이 임직원 4명, LG 협력업체 임원 1명 등 총 11명을 지난 13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관계자에 따르면 이번에 기소된 LG디스플레이 관계자들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OLED TV의 핵심기술 개발을 주도했던 조모씨에게 접근,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등을 통해 기술을 빼돌린 것으로 보인다. 조씨는 2010년 말 퇴직, LG디스플레이로 이직을 시도했고 조씨와 함께 일했던 삼성디스플레이 출신 연구원 5명도 지난해 차례로 자리를 옮겼다.

법원 밖 공방의 포문을 연 것은 삼성디스플레이였다. 심재부 삼성디스플레이 상무는 지난 16일 오전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사건으로 OLED 제조에 필요한 핵심기술과 개발 과정이 모두 유출됐다"며 "LG디스플레이 전사(全社)차원에서 저지른 심각한 범죄행위이니만큼 사법당국이 강력한 법적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디스플레이 측은 이번에 유출된 핵심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1조2,000억원이 투입됐으며 피해규모 또한 천문학적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LG트윈타워 전경. 주간한국 자료사진
불과 세 시간 후 LG디스플레이도 반박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방수 LG디스플레이 전무는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유출됐다고 주장하는 정보는 첨단기술이 아니라 일반적인 영업과 기술개발동향 정도"라며 "(삼성디스플레이 측이) 의미와 규모, 심각성 등을 과장해 언론에 뿌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우리는 독자적 기술(화이트 OLED)을 통해 55인치 TV용 OLED 패널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상태"라며 "방식 자체가 아예 다른 삼성디스플레이의 기술이 필요치 않다"고 해명했다.

이미지 추락 불가피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인 OLED는 얇게 만들 수 있는 데다 세밀한 영상 구현도 가능해 향후 LCD를 대체할 기술로 꼽힌다. 특히 지난해 LCD 가격이 폭락한 이후 OLED는 대형 디스플레이 시장을 좌지우지할 미래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구본무 LG 회장 모두 OLED TV의 상용화 시점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후문이 나올 정도다.

지난 2007년 삼성은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후 10인치 이하 중소형 OLED 패널을 생산하며 글로벌 시장의 95% 이상을 선점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OLED TV 등 대형화 추세로 이어지며 LG디스플레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TV용 55인치 대형 OLED 패널 개발에 나선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 초 시제품을 내놨고 이에 질세라 LG디스플레이 또한 같은 크기의 시제품을 선보인 바 있다. 양사 모두 TV용 55인치 대형 OLED 패널 시제품은 선보였지만 수율 등 기술적인 문제로 양산은 시작하지 못한 상태다.

LG디스플레이는 기존의 LCD 생산시설을 활용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대형화에 유리한 화이트 OLED 기술로 개발에 성공, 삼성디스플레이에 한 발짝 앞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에 삼성디스플레이 측은 그동안 경쟁상대도 되지 않았던 LG디스플레이가 자사의 기술을 훔쳐 개발 기간을 단축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번 기술유출 사건과 관련, 손해배상을 포함한 민사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자업계 내에서는 치명적인 결점으로 꼽히는 기술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만큼 LG디스플레이 측은 그 어느 때보다 민감히 반응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술유출 혐의로 소송을 당할 경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침묵으로 대응하는 데 반해 LG디스플레이는 삼성디스플레이의 공세에 "악의적인 흠집내기를 중단하라"고 강하게 반격하고 나섰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모종의 의도를 지니고 사실과 다른 악의적인 정보로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다"며 "회사 및 임직원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된 이상 적절한 시점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그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LG디스플레이가 유례없이 강한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코너에 몰려있기 때문"이라며 "만약 법원이 삼성디스플레이의 손을 들어줄 경우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요구하는 손해배상금을 물 경우 향후 투자비용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자사의 임직원들이 기술유출 혐의로 기소를 당한 이상 LG디스플레이로서는 이미지 실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고 전했다. 고전 끝에 삼성디스플레이와의 소송에서 이길지라도 이미 흠집난 도덕성은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해석이다.

담합으로 실적에도 영향

LG디스플레이가 최근 이미지 추락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은 비단 기술유출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담합 혐의로 미국에서 지난 2007년 소송을 당했던 LG디스플레이는 최근에서야 해당 소송을 마무리했다.

LG디스플레이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제기된 담합 소송에서 미국 소비자집단 및 8개 주정부에 3억8,000만달러(약 4,354억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해 소송이 종결됐다고 지난 13일 공시했다. 전자업계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를 포함한 7개 TFT-LCD 제조사들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담합해 판매가격을 올린 혐의로 미국 소비자집단으로부터 2007년 집단소송을 당했다. 이후 LG디스플레이는 일본, 유럽위원회, 캐나다, 대만, 멕시코, 브라질 등에서도 유사한 상황에 직면했다.

기수유출과 더불어 대표적인 부당 공동행위로 꼽히는 담합으로 인해 LG디스플레이의 기업이미지는 또다시 급감했다. 특히 계열사인 LG전자 또한 지난 1월 삼성전자와 담합한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로 드러나며 그룹 전체의 신뢰도가 흔들리기도 했다. 반복되는 담합으로 인한 여론악화에 구본무 회장까지 나서 "담합에 대해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나설 정도였다.

일각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담합으로 기업이미지 훼손뿐만이 아닌 실질적 손해도 입었다고 보고 있다. LG디스플레이 측은 "그동안 합의금 관련 충당금을 설정해 왔으며 2분기 추가 반영금액은 전체 합의금의 50% 미만"이라고 피해범위를 축소했다. 그러나 업계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소송 합의금이 기존 예상치보다 컸던 만큼 앞으로도 상당한 규모의 충당금을 설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 큰 문제는 미국 내의 소송은 마무리됐지만 다른 국가들에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지난 2010년 12월 담합 혐의로 LG디스플레이에게 2억1,500만유로(당시 환율 기준 약 3,25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으며 현재 항소 중에 있다. 캐나다에서도 지난해 5월 구매자 집단소송에 대한 온타리오 연방 법원의 집단승인 결정에 대한 항소 절차를 밟고 있다. 국내에서 또한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314억원의 과징금에 대해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이에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유럽과 우리나라에서 받은 과징금에 대한 충당금은 이미 쌓아놓은 상태"라며 "항소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지불해야 할 액수가 처음 부과된 과징금보다 더 이상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한 만큼 추가 부담은 없다고 봐도 좋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각국 소송 진행경과에 따라 LG디스플레이 측의 추정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 여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실적·재무건전성도 바닥

삼성디스플레이와의 법적 공방과 담합으로 인한 국내외 소송 부담은 LG디스플레이의 최근 실적과 맞물려 더욱 큰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10년 25조원을 돌파했던 매출은 23조4,713억원으로 줄어들었고 각각 1조244억원, 1조26억원이었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1조2,511억원, -9,910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올해 1분기 매출(5조9,557억원)은 전년(5조518억원)대비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영업손실(-2,263억원), 당기순손실(-1,751억원)을 면치 못했다.

지난해 LG디스플레이의 각종 재무건전성지표 또한 바닥을 달렸다. 2010년 말과 올해 1분기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유동자산이 줄어든 데(8조4,999억원→6조9,545억원) 반해 유동부채는 늘어나면서(8조4,539억원→9조3,650억원) 100.5%에 달하던 유동비율이 74.3%까지 감소했다.

총자산(23조1,580억원→23조7,414억원)에서 자기자본(10조8,707억원→9조5,117억원)이 차지하는 자기자본비율은 46.9%에서 40.1%로 감소한 반면, 부채총액(12조2,873억원→14조2,297억원)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부채비율은 113.0%에서 149.6%로 크게 늘었다.

다행인 점은 LG디스플레이의 실적 및 재무건전성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판가 상승과 출하량 증가, 고객사들의 신제품 출시 등이 올 하반기 LG디스플레이의 실적을 견인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아직은 수면 아래에 있는 악재가 직접적인 손실로 떠오를 경우 어렵게 유지되는 LG디스플레이의 회복력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을 예정이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