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희씨
삼성가 상속소송전의 세 번째 전투가 벌어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32부(부장판사 서창원)는 지난 25일 오후 4시 故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의 장남 를 비롯한 형제들이 을 상대로 낸 주식인도 소송에 대한 3차 공판을 진행했다. 재판이 열린 서울지방법원 동관 466호 민사대법원은 이전 공판 장소와 달리 규모가 컸지만 이날도 방청객, 취재진 등 200여 명 이상의 인파가 몰려 방청석을 가득 메웠다.

일종의 유산상속문서

이날 공판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상속재산분할협의서'(이하 협의서)의 실효성이었다. 측의 이병철 선대회장 유언장 공개 요구에 이건희 회장 측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하면서 남겨진 증거인 A4 한 장짜리 협의서가 공방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이 회장 측이 공개한 협의서는 삼성가 상속자들이 재산을 어떻게 나눌지를 합의한 일종의 유산상속 문서로 지난 1989년 이 선대회장의 '기명' 상속 재산에 대한 등기절차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공동상속인 전원이 날인한 협의서에는 전주제지 주식 7만4,632주 등을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에게, 제일합섬 주식 7만5,425주는 차남인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에게, 조선호텔과 신세계 주식 일부는 넷째딸 이명희 신세계 회장에게 상속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서명도 공증도 없다"

측은 협의서의 진위부터 문제 삼았다. 이씨 측은 "문건에 날인만 있을 뿐 서명이 없고 공증된 흔적도 없으며 연도 이외에 구체적인 작성일시도 없다"며 "대한민국 최고 기업인 삼성에서 상속을 위해 만들었다면 당연히 변호사의 도움을 받았을 텐데 이렇게 허술할 리가 없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만약 진짜 협의서라고 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며 "소송의 목적은 차명주식인데 협의서 어디에도 차명주식에 대한 언급은 없다"고 설명했다. 공동상속인 간에 차명주식에 대한 분할 협의가 전혀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씨 측은 "이번 소송의 대상이 이 회장이 실명전환한 삼성생명, 삼성전자의 차명주식이지 문건에 있는 기명 상속재산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씨 측은 또한 1996년 9월 당시 동아일보 신문기사를 증거로 제출하며 "이병철 선대회장이 직접 붓글씨로 '계훈'이라는 이름의 유언장을 작성해 법원 공증까지 받았다"며 "(이 회장 측에서) 유언장을 공개하지 않는 건 선대회장이 포괄승계 유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거나 그 뜻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선대 회장 유지 인정"

이건희 회장 측은 측의 주장에 대해 "모든 상속인들이 선대회장의 유지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이 회장 측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확고한 뜻대로 생전에 이미 적정한 재산 분재가 이뤄졌고 나머지 삼성 계열사 주식 전부는 이건희 회장이 단독상속하는 것으로 정해졌다"며 "협의서는 상속재산 등기 등을 위해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서류"라고 설명했다.

이어 "협의서는 각 상속인들이 개별적으로 내용을 확인한 후 날인한 것"이라며 "협의서의 내용을 다 받아들였기 때문에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회장 측은 "당시 차명주식은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관행이었다"며 "도 차명주식 보유 사실을 안 상태에서 협의서에 날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차명주식을 포함한 재산분할과 관련한 협의가 끝났다는 내용이다. 이 회장 측은 이씨의 장남인 이재현 CJ 회장도 선대회장으로부터 안국화재 차명주식 9만주를 받은 사실을 내세워 "부친인 이씨가 차명주식 존재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 측은 선대회장이 사망 1년 전인 1986년 한 인터뷰에서 "10년 전에 이미 분배를 끝냈습니다"라고 발언한 점이나 이씨가 자서전 <묻어둔 이야기>에서 "누이들도 어느 정도의 재산 지분을 통해서 불만이 없었다"고 밝힌 점 등을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다.

차명주식 동일성 여부

양측의 공방이 과열되자 서창원 부장판사는 "선대회장의 유지는 상속분할협의에 한정되는 것 같다"며 "이 사건의 최대 쟁점인 차명주식의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상속권 침해행위인지 규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명주식의 동일성 여부에 대한 부분이 본 재판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건희 회장 측은 "선대회장 타계 후 물려받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차명주식은 일부를 제외하고 유상증자와 수많은 매매과정을 거치며 동일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측은 "상속재산의 동일성은 삼성 특검 판결에서 이미 확정된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서 부장판사는 이 회장 측이 제출한 '삼성전자 실명전환 주주내역' 문건에 주목하며 "차명주식 명의수탁자의 정확한 명단과 주식 취득일자가 상속된 주식과 현재 주식의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니만큼 삼성전자 차명 주주들의 주식 취득시기를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특검자료 처음 공개될 듯

재판부는 이날 양측 모두에게 비자금과 관련한 부문의 삼성특검 수사자료를 증거조사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자료는 이병철 선대회장 생전에 차명으로 관리되다 상속된 삼성생명 및 삼성전자 주식 현황과 의결권 행사에 관한 수사자료, 차명계좌 추적자료, 이건희 회장의 특검 진술조서, 공판조서 등이다.

특검 자료 증거조사는 양측이 판사에게 증거조사 목록을 신청하고 판사가 승인하면 검찰에서 관련 자료를 복사해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에 따라 다음 달 29일에 열리는 4차 공판 때는 삼성특검 수사 자료가 최초로 공개될 예정이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