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레이스가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지지율 면에서 가장 앞서 있는 후보에 대한 상대 후보들의 공격이 불을 뿜고 있다.

7월29~30일 예비 경선을 통해 총 8명의 후보 중 3명을 탈락시킨 민주당은 문 후보 등 5명의 주자가 본 경선에 들어간 상태지만 '문 후보 때리기' 양상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초반만 해도 문 후보에 대한 공세는 약점을 건드리거나 단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을 부각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세 수위가 높아졌고 문 후보가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감정싸움으로 격화했다. 신경전이 가열되면서 네거티브 공방전으로까지 흐를 조짐이다.

문제는 문 후보는 한 명이고, 상대 후보는 4명이란 점이다. 그나마 7명의 적군이 예선을 거치며 3명 줄었다는 게 문 후보 입장에서는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문 후보를 상대로 한 비문(非文ㆍ비)주자들의 정치적 생명을 건 전쟁이 시작됐다.

참여정부 공과 논란

안철수
문 후보에 대한 공격 포인트는 대개 참여정부의 공과(功過)와 맞물려 있다. 과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가 우수했느냐, 참여정부가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했느냐 하는 부분이 논란의 핵심이다.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인 문 후보는 당연히 강경한 입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친노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는 데다 노 전 대통령의 분신 격인 이미지로 지금의 지지율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참여정부를 부정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문 후보는 참여정부의 총체적 성공론을 폈다. 그는 최근 대선 후보 경선 합동연설회에서 "참여정부는 모든 면에서 큰 성과가 있었던 총체적으로 성공한 정부였다"면서 "2007년 대선에서 졌다고 해서 그 정부를 실패한 정부라고 할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히 비노(非盧) 진영의 후보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그 중에서도 문 후보의 1위 자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위협하는 손학규 후보의 공격 강도가 셌다. 손 후보는 서울과 부산, 광주 등으로 이어진 지역 순회 합동 연설ㆍ토론회에서 문 후보의 '참여정부 총체적 성공론'에 대해 집중 포격을 가했다.

손 후보는 "문 후보가 참여정부를 성공한 정부라고 해서 놀랐다"면서 "중산층이 줄고 빈곤층이 늘어나 양극화가 (참여정부에서) 본격 시작됐는데 그게 성공이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26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18대 대선 예비후보 경선을 위한 영남지역 합동연설회에서 8명의 예비 후보자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왼쪽부터 정세균, 김영환, 김두관, 김정길, 박준영, 문재인, 조경태, 손학규 예비후보
손 후보는 이어 "5년 전 참여정부의 민생 실패가 대선에서 530만표라는 역대 최고의 표차로 민주당을 쓰러뜨렸다"면서 "그런데도 정권을 빼앗긴 책임이 있는 세력들은 아무런 반성도 없는 상태에서 아직도 잘못이 없고 성공한 정부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고 거듭 공세를 폈다.

이에 문 후보는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를 실패한 역사라고 하는 것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인데 그렇게 말하는 건 민주당 정체성에 맞지 않다"고 손 후보의 옛 한나라당 전력을 은근히 거론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참여정부 출신인 김두관 후보는 손 후보 편에 서서 문 후보를 겨냥한 협공에 나섰다. 김 후보는 "정리해고법을 누가 제정했으며 저축은행 부실 사태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란이 어디서 시작됐느냐"라고 반문한 뒤 "아무도 국민한테 반성도 없이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하면 누가 표를 주겠느냐. 잘못한 것은 국민에게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문 후보를 집중 공격했다.

야권 분열 책임론도 제기

문 후보를 겨냥한 또 다른 공격 포인트는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노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하면서 결과적으로 민주당과 분당(分黨)하게 된 이른바 '야권 분열 책임론'이다. 여기에는 대북송금 특검을 실시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정적으로 사이가 멀어지게 됐고 이로 인해 호남의 지지층이 상당수 등을 돌렸다는 원성도 들어 있다.

역시 손 후보가 이 부분에 대한 지적에도 선봉에 섰다. 손 후보는 "대북송금 특검을 잘한 일이라고 강변하면서 민생 실패, 대선 패배, 총선 패배까지 민주세력 3패를 불러온 무능과 무반성의 3패 세력으로는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며 "정권을 빼앗긴 게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억지 부리는 세력으로는 국민에게 다시 정권을 달라고 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호남 출신 주자들도 나섰다. 전남지사인 박준영 후보는 "참여정부 내내 국민은 피곤했다"며 "대북송금 특검 때 김대중 대통령은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울먹였고 열린우리당으로 분당될 땐 눈물을 흘렸다"고 호남 유권자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전북 출신 정세균 후보도 "당원들이 피눈물 흘릴 때 같이 부둥켜 안고 울었던 사람이 후보로 나서야 한다"고 지난해 말 입당한 문 후보를 정조준했다.

김두관 후보는 "참여정부의 대북송금 특검은 분명히 잘못했다"며 "호남에 대해 인사 차별을 한 것도 제가 먼저 용서를 구한다"고 고개를 숙이며 문 후보와는 조금 다른 자세를 취했다.

이에 문 후보는 "대북송금 특검은 민주당과 호남을 분열시키며 호남분들에게 상처를 남겼다"면서도 "(그러나) 당시 자금을 제공한 현대그룹에서 밝히고 나서 수사가 불가피했다"고 참여정부 정책 결정 과정의 불가피론을 역설했다.

이밖에 대선 후보 예비경선 레이스에서 조경태 후보는 "총선에서 민주당이 부산ㆍ경남에서 3석 획득에 그쳤는데 문 후보가 친노ㆍ비노를 통합하려고 노력했는지 묻고 싶다"고 공격했고, 김정길 후보도 "입당한 지 1년도 안돼 민주당 이름으로 의원이 되고 대통령 후보가 된다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고 문 후보를 정조준했다.

김두관 후보 가장 공격적

김영환 후보도 "문 후보의 특전사 복장이 화해를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광주항쟁에 대한 가해자 사과도 없는 상태에서 특전사의 위용을 드러내야 했는가"라고 비판했다.

다른 후보들의 문 후보를 겨냥한 집중 포화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김두관 후보는 아예 자신의 홍보물에다 '으로 질 것인가. 김두관으로 이길 것인가'라는 문구를 인쇄해 문 후보와의 적대적 개념을 분명히 했다.

김 후보는 그러면서 "문 후보가 현재는 당내에서 지지율 1등이지만 대선에서는 승리할 수 없다"며 "문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되면 이변도 감동도 없기 때문인데, 문 후보로 질 건지 김두관으로 이길 건지 선택해 달라"고 비교 우위론을 내세워 문 후보를 압박했다.

이를 두고 야권 지지층에서는 '치졸한 네거티브'란 비판이 나왔다. 이에 김 후보 캠프에서는 "문 후보가 민주당 후보가 되면 편안하게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지는 길"이라며 "김 후보 홍보물의 카피가 문제가 아니라 정작 문제는 문 후보의 대선 경쟁력이 없다는 데 있다"고 맞받아쳤다.

상대 후보의 집중 공격에 대한 방어도 버거운 상태에서 장외에서 압박해오는 원장의 행보도 문 후보 입장에서는 보통 골치거리가 아니다. 안 원장은 최근 저서인 <의 생각>을 출간하면서 주목을 끌더니 SBS '힐링캠프'에 출연하면서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안 원장의 지지율 상승은 곧 문 후보 지지층의 이탈을 의미하고 있어 문 후보 캠프가 보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거의 비상 사태나 다름없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의 7월24~25일 조사에 따르면 안 원장이 31.7%로 박근혜 후보(29.8%)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한때 안 원장을 제치고 2위에 올라섰던 문 후보는 10.0%의 지지율로 3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두자릿수 지지율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문 후보 측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문 후보 캠프에서는 안 원장이 뜨면서 2,3위간 격차가 벌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민주당 경선에서 ' 대세론'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문 후보로는 박근혜 후보와의 대선 본선 경쟁 이전에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안 원장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비판론이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전국 순회경선서 승부"

문 후보 입장에서는 8월25일부터 9월16일까지 이어지는 전국 순회 경선에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그리고 9월23일 민주당 대선 후보 결선에서 2위와 큰 표차를 나타내며 최종 후보로 선출돼야 안 후보와 일전을 겨룰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보여준 리더십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안 원장에 대해 손학규 김두관 후보 진영에서는 연일 각을 세우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벌써부터 안방을 내줄 생각을 하는 약한 마음으로는 대선 승리를 이끌 수 없다"는 '민주당 자강론(自强論)'이 이들 주장의 요체다. 그러면서 두 후보는 안 원장에게도 "정당 조직 없이 대선 승리는 없다" "정치적 아마츄어의 국정 운영은 불안의 연속일 것"이란 말로 안 원장을 공격하고 있다.

문 후보만이 "야권 연대의 대상"이라며 안 원장을 감싸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그 사이 안 원장은 책 출간과 TV 출연 등을 통해 떨어졌던 지지율을 회복했고 상대적으로 문 후보는 자신의 지지층을 빼앗겼다.

더구나 안 원장은 조만간 대선 공약에 준하는 정책 내용 등을 내놓을 계산도 하고 있고 대선 출마 선언에 앞서 지역이나 대학가를 순회하며 강연 형식으로 지지층 확산 전략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민주당이 당초 자체 경선을 통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문 후보나 손학규 김두관 후보에게 쏟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계산법에 차질이 생겼음을 뜻하는 것이다.

다른 후보들이 안 원장을 타도의 대상으로 치부할 때 연대의 대상임을 주장하며 '- '구도로 몰아가려 했던 문 후보도 이젠 전략 수정이 필요해졌다.

당내 후보 공격에 방어에만 급급하다 코너에 몰렸고, 안 원장과 연대를 강조하다 지지율마저 추락하고 있는 게 지금 문 후보의 불리해진 정치적 상황이다.

이젠 상대 후보에게도 보다 적극적인 공략법으로 맞서면서 장외의 고수인 안 원장에게도 공격 모드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란 분석이 많다. 그래야 박근혜 후보를 뛰어넘는 리더십을 과시하며 안 원장을 주저앉힐 수 있다는 얘기다.

합리적 이미지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유약한 리더십으로도 비칠 수 있다. 생각이 바뀌는 건 순간이다.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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