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손용석기자
박지원(70)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코너에 몰렸다. "정치 검찰의 공작 수사에는 절대 응할 수 없다"는 게 당과 박 원내대표의 공식 입장이지만, 박 원내대표를 둘러싼 작금의 상황은 그리 호의적이지 못하다.

우선 새누리당에서는 "그렇게 떳떳하다면 당당하게 검찰에 나가서 조사에 응하라"고 박 원내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박 원내대표와 마찬가지로 저축은행 금품 수수 사건에 휘말린 정두언 의원도 검찰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지 않았느냐"고 목청을 높인다.

여기에 민주통합당 일부 의원들과 일부 친노 인사들도 "더 이상 당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며 박 원내대표에게 자진 출두를 권유하고 있다. 대선 경선에 나선 친노 진영의 김정길 후보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수사에 응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그럼에도 박 원내대표는 검찰(대검찰청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ㆍ단장 최운식 부장검사)의 소환에 거듭 불응했다. 검찰은 박 원내대표가 끝내 출석하지 않는다면 체포영장 등 강제구인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2008년 총선 전 솔로몬ㆍ보해 저축은행에서 약 1억 원의 불법자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박 원내대표의 신분을 참고인성 피혐의자로 규정하고 있다. 혐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죄 또는 정치자금법 위반.

민주당 "절대 못 진다"

검찰은 임시국회가 끝나는 내달 초를 전후로 박 원내대표에 대해 체포영장 등을 청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모든 게 검찰의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정치 검찰에게는 절대 굴복할 수 없다"고 선언한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지난 24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국회법상 9월 정기국회 개최 이전인 8월에 결산 (심의의결)을 완료해야 하고, 헌법재판관 5명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민간인 불법사찰특위를 해야 한다"며 "7월 임시국회 다음날인 4일 곧바로 임시국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시국회는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만 있으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이 대표의 말처럼 7월 임시국회가 종료된 직후에 8월 임시국회가 곧바로 열린다면 엄연히 회기 중인 만큼, 검찰이 체포영장 등을 청구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박 원내대표를 구인할 수 있다.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보고되면 여야는 72시간 내에 무기명 표결을 부쳐 재적의원 과반수(151명) 참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 "검찰의 부당한 수사에는 절대 응할 수 없다"는 게 민주통합당의 공식 입장이기에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다면 검찰이 또다시 박 원내대표에 대해 영장을 청구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럴 경우 검찰 수사는 불구속 기소로 선회할 확률이 높다는 게 검찰 소식통의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박 원내대표가 버틴다고 해서 수사를 안 할 수는 없는 검찰의 현실적인 선택은 불구속 기소 아니겠냐"며 "박 원내대표의 '법원에서 모든 진실을 밝히겠다'는 말을 잘 음미해보면 불구속 기소로 가닥이 잡히고 나면 그때 가서 조사에 응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확실한 물증 있을까

"제1야당 원내대표를 부를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냐"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박 원내대표의 1억 원 수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검찰은 박 원내대표가 2008년 4월 총선을 즈음해서 임석(구속기소) 솔로몬 저축은행 회장에게 5,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액수가 그리 많지 않은 데다 비교적 처벌이 가벼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경우 구속까지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검찰이 보해 저축은행 수사에까지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검찰은 최근 보해양조 임건우(구속기소) 전 대표와 자금 담당 임직원 등 회사 관계자 10여 명에 대한 계좌 추적에 착수했다. 검찰은 박 원내대표가 오문철(구속기속) 전 보해 저축은행 대표에게 금품을 수수했다는 정황을 입증할 만한 증거 확보를 위해 최근 6, 7년간 보해양조 임직원들의 계좌 거래내역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그럼에도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정황 증거만 포착했을 뿐"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박 원내대표가 오 전 대표와 임 전 대표에게 2010년과 2011년에 각각 수천만 원을 수수한 단서는 잡았지만 확실한 증거는 확보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한 의원도 "검찰이 확실한 물증을 갖고 있다면 지금까지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냐"며 "구속기소된 사람들한테 받은 진술만 갖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라고 말했다.

靑은 소기의 성과 달성?

당초 이 사건이 터졌을 때만 해도 검찰 주변에서는 "무조건 구속"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대선 정국에 앞서 '청와대 저격수'인 박 원내대표를 꽁꽁 묶어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뒤 일각에서는 "자칫하면 역풍을 맞는다. 박지원을 위축시키고 야당의 대선 경선 정국에 찬물을 끼얹으면 그것으로 소기의 성과는 달성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박 원내대표가 "대선 정국을 앞두고 청와대와 검찰이 박지원과 야당 죽이기에 나섰다"고 핏대를 세웠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체적인 진위 여부를 떠나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뒤로 '야권 사령탑'인 박 원내대표의 운신의 폭이 많이 좁아진 게 사실이다. 며칠 걸러 흘러나오는 '소환설(說)'도 박 원내대표에게는 심적으로 큰 부담이다. 박 원내대표는 "생명을 걸고 싸우겠다"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힘이 부치는 기색이 보인다.

박 원내대표에 대한 수사는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검찰의 수사가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 시기와 맞물리다 보니 좀처럼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김이 샌다"는 당 관계자들의 푸념이다.

한 캠프 관계자는 "명색이 제1야당의 대선주자 경선이 한창인데 하필 같은 시기에 검찰 수사가 집중되고 있다. 당이나 주자들로서는 이래저래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