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1일 새벽 검찰 조사를 마치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김주성기자
박지원(70)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 31일 전격 검찰에 출석했다. 박 원내대표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 피의자 신분으로 나가 저축은행비리합동수사단(단장 최운식 부장검사)에서 10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 2008년 임석(구속기소) 솔로몬 저축은행 회장에게 5,000만 원, 2010년 6월 오문철(구속기소) 전 보해 저축은행 대표에게 3,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다.

제1야당 원내대표가 회기 중 금품 수수 의혹과 관련 검찰 조사를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지난 19일, 23일, 27일 잇달아 소환 통보를 보냈으나 박 원내대표가 불응하자 이날 체포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체포동의요구서를 국회로 보냈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같은 날 오후 3시 자진해서 검찰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찰 소식통은 "그동안 검찰이 공격하고 박 원내대표가 방어하는 형태였는데 순식간에 양측의 위치가 뒤바뀌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박 원내대표는 검찰 조사를 받기 전 "체포영장 청구에 대한 동의 요구를 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제 입장과 결백을 설명하려고 한다"면서 "억울하지만 당과 여야 의원들에게 부담 드리기 싫다"고 자진 출석 배경을 설명했다. 박 원내대표는 조사 후에는 "황당한 의혹에 대해 잘 해명했으니 검찰에서도 이해할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통합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검찰, 새누리당, 친노의 공세에 방어로 일관하던 박 원내대표가 일격에 허를 찔렀다"면서 "정치 9단인 박 원내대표가 정면돌파를 시도했는데 일단은 성공적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박지원, 사퇴 압력도 받았다!

박 원내대표의 출석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민주통합당 당론이나 박 원내대표 개인이나 "정치 검찰의 공작에 굴복할 수는 없다"는 게 확고한 입장이었다.

박 원내대표는 그러나 검찰에 출석하기 몇 시간 전 이해찬 대표와 만났고, 자진 출석으로 급선회했다. 더 버틸 경우 대선을 앞두고 당에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공식적으로' 박 원내대표를 압박해온 것은 검찰과 새누리당이었다. 이들은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정두언 의원도 조사를 받았는데 박 원내대표만 피하는 이유가 뭐냐"고 박 원내대표를 성토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곤혹스러웠던 것은 당내 일부 여론이었다. 특히 몇몇 친노 인사들의 무언의 압력과 압박이 박 원내대표에게 작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과연 (박 원내대표와) 같이 갈 수 있겠냐"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한때 박 원내대표와 힘겨루기를 벌였던 인사를 중심으로 "한 사람 때문에 당이 이게 뭐냐. 이럴 거면 원내대표 자리에서 사퇴하는 게 옳지 않겠냐"는 말까지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체포동의안을 놓고 여야 표결 대결로 간다 하더라도 엄청난 부담이긴 마찬가지다. 민주통합당의 계획대로 부결된다면 '박지원 이슈'는 계속해서 살아 움직일 수밖에 없다. 비판 여론은 당과 박 원내대표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를 수도 있다.

반대로 가결될 경우에는 '공식적' 파트너인 문재인 대선주자에게 큰 짐이 된다. 일부 친노 인사들과 의원들이 "당당하게 조사를 받아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 안팎의 거센 압박에 장고하던 박 원내대표는 정면돌파로 승부수를 던졌고 줄기차게 "박지원 나와라"를 외치던 검찰, 새누리당 등은 한동안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또 비판적이던 여론은 박 원내대표의 자진 출석 후 동정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결국엔 불구속 기소?

우여곡절 끝에 박 원내대표에 대한 직접 수사를 마친 검찰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이미 검찰 안팎에서는 불구속 기소 쪽에 무게가 실리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박 원내대표를 추가로 소환 조사하거나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검찰로서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조사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뒤 재소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일 오전까지만 해도 박 원내대표를 한두 차례 더 소환할 듯한 분위기가 감지됐으나 이후 기류가 급변한 것이다.

박 원내대표가 "추가 소환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못을 박은 데다 검찰이 법원에 체포영장을 철회한 상황에서, 소환조사를 위해 다시 체포영장을 청구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박 원내대표가 자진해서 출석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그를 부를 방법이 마땅치 않다. 불구속 상태로 법원에서 진실을 가리게 되는 불구속 기소로 가닥이 잡혔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두언 의원처럼 재소환 없이 곧바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럴 경우 검찰의 박 원내대표에 대한 신병 확보는 장담할 수 없다.

민주통합당은 언제든지 임시국회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 국회 표결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가결을 노리는 여나 부결을 다짐하는 야 모두 '집 단속'에 만전을 기하고 있지만 이탈 표는 적지 않을 것을 보인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박 원내대표가 구속된다면) 남의 일만은 아니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또 박 원내대표에 대한 영장이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될 경우 검찰은 거센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부실 수사' '야당 탄압' 등의 여론이 들끓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박 원내대표에 대해 저축은행에서 8,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 이외에 추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그 역시 여의치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주장했던 대로 검찰이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구속된 이들의 진술만 갖고 야당 사령탑을 압박했던 것"이라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