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양궁 개인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기보배를 안아주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2012 런던올림픽'이 수많은 열정과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선수들이 지난 4년간 피땀을 흘린 결과다. 물론 선수들이 혼자서 이뤄낸 것만은 아니다. 국내 기업들의 물심양면 후원이 자양분이 됐다.

실제 국내 기업들은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10대 기업이 국내 스포츠에 지출한 비용만 4,000억원대에 이를 정도다. 같은 기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예산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대기업의 지원은 지난해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적게는 수년에서 십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그 결과'2008 베이징올림픽' 당시 10대 그룹이 지원한 종목에서 금메달 7개와 은메달 7개, 동메달 4개가 쏟아져 나왔다.

그렇다면 이번 런던올림픽에선 대기업들은 어떤 결실을 이뤘을까. 종목별후원과 메달을 중심으로 대기업들의 올림픽 성적표를 들여다봤다.

삼성- 다양한 종목, 현대차-양궁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전에 출전한 박태환을 응원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일가.
먼저 삼성은 '국내 1위 기업'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다양한 분야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계열사 삼성전자를 통해 마라톤, 경보 등 육상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삼성생명은 레슬링과 탁구, 에스원은 태권도, 삼성전기는 배드민턴 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회사 차원의 지원만 있던 게 아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부터 부인 홍라희 여사,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등 일가족이 총출동해 열렬한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야말로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셈이다.

이 회장은 레슬링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서울사대부고 시절 레슬링 선수로 활동한 이 회장은 1982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을 맡아 비인기종목인 레슬링을 한국 금메달 밭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에 힘입어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김현우가 남자 그레코로만형에서 8년 만에 금메달을 따내는 등 쾌거를 달성했다.

또한 삼성생명 탁구단 소속 유승민ㆍ주세혁 선수가 주축을 이룬 남자 탁구는 단체전에서 예상밖 은메달을 따냈고, 태권도에서도 다수의 메달을 획득해 종주국 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반면 기대를 모았던 배드민턴에서는 남자 복식의 이용대-정재성이 동메달을 따는 데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삼성은 비인기 종목의 육성에 큰 보탬을 줬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8강전에서 러시아를 이기고 4강에 진출한 여자 핸드볼 선수들을 격려 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오래 전부터 양궁에 집중적인 투자를 해왔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1985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양궁협회장을 역임했다. 이후 한국 양궁은 정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밑거름 삼아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정 회장이 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한국 양궁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정 회장도 명예회장을 맡아 무대 뒤편에서 한국 양궁을 떠받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지원은 그야말로 아낌없었다. 계열사 현대모비스는 레이저를 활용한 연습용 활을 제작해 선수들에게 제공했으며, 정 회장은 사비를 털어 심장박동수 측정기, 시력테스트기를 구매해 양궁협회에 보내기도 했다.

또 1991년 폴란드 세계선수권대회 때 선수들이 물 때문에 고생하자, 스위스에서 비행기로 물을 공수해준 일화는 유명하다. 런던올림픽에서 여 궁사들이 여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고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바로 정 부회장이 있는 관계자석이었다는 점이 이를 대변한다.

그 결과 한국 양궁은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여자단체전을 비롯 남자와 여자 개인전에서 오진혁과 기보배가 각각 금메달을 따는 등 3종목을 석권했고, 남자단체전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SK-펜싱, 한화-사격 '대박'

SK그룹은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왔다. 2008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에 부임하면서다. 최 회장은 먼저 지난해 434억원의 예산을 지원해 국내 첫 핸드볼 전용경기장을 건립했다.

올 1월에는 해체 위기에 놓여 있던 용인시청 여자 핸드볼팀을 그룹 계열사인 SK루브리컨츠가 인수해 재창단하기도 했다. 이에 여자 핸드볼은 '우생순 신화'를 이어가며 SK의 후원에 화답했다.

또 SK텔레콤은 2003년부터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를 맡아 우수선수 발굴과 선수들의 기량향상 지원, 국제대회 유치 등 다양한 후원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또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대한펜싱협회장을 맡아 한국 펜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에 힘입어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펜싱은 수많은 메달을 획득하는 결실을 이뤘다. 여자 펜싱 개인 사브르에서 김지연이 금메달을 땄으며, 여자 단체 에페에서 정효정-최은숙-신아람-최인정이 은메달을, 여자단체 플뢰레에서 정길옥-오하나-전희숙-남현희가 동메달을 탔다.

또 남자 개인 플뢰레와 남자 개인 에페에서 최병철과 정진선이 각각 동메달을 거머쥐었으며, 남자 단체 사브르에선 원우영-오은석-김정환-구본길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펜싱 최강국 이탈리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성적표다.

SK텔레콤은 또 2007년부터 국가대표 수영팀의 박태환을 후원해 왔다. SK텔레콤은 'SK 박태환 전담팀'을 통해 박태환이 최고의 환경에서 훈련에 집중해 올림픽에서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도록 하였다. 박태환은 이번 올림픽에서 은메달 2개를 수확해 후원에 보답했다.

한화그룹은 2002년부터 대한사격연맹의 회장사를 맡아 전폭적인 지지를 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80여억원의 사격발전 기금을 지원해 국내 사격선수들이 보다 좋은 여건에서 맘놓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또 김승연 한화 회장은 2008년부터 대한사격연맹 창설 이후 기업이 주최하는 최초의 사격대회인 '한화회장배 전국사격대회'를 개최하며 국내 사격선수들의 실력향상과 유망주 발굴에도 기여해오고 있다.

특히 2009년부터 한화회장배 사격대회는 국내 대회 가운데 유일하게 전 종목, 전 부별로 종이표적이 아닌 전자표적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선수들이 쌓은 경험은 국제 경기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한화는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우리 사격 대표팀의 선전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진종오 선수가 남자 50m 권총과 10m 공기총에서 금메달을, 김장미가 여자 25m 권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김종현이 남자 50m 소총에서, 최영래가 남자 50m 권총에서 각각 은메달을 건졌다. 이는 역대 올림픽 최고의 성적이다.

포스코는 체조에서 양학선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서 남다른 후원이 조명받고 있다. 포스코는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이 1985년 대한체조협회 회장사를 자청한 이후 1995년 포스코건설이 바통을 이어받아 후원을 해왔다. 특히 2010년 대한체조협회장을 맡은 정동화 포스코건설 부회장은 지난해 7월 경기도 고양에서 '코리아컵 고양 국제체조대회'를 열어 한국체조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는가 하면, 체조 금메달리스트에게 1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하는 등 전폭적인 후원을 해왔다.

두산그룹은 회사차원에서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대한체육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올림픽 출전 선수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땀을 흘리고 있다.

박 회장은 1982년 대한유도협회 부회장을 맡으며 체육계와 인연을 맺은 데 이어 1995년에 국제유도연맹 회장에 선출됐다. 2002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돼 되기도 했다. 박 회장은 2009년 대한체육회장을 맡아 다시 한국 체육계를 이끌고 있으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뤄낸 숨은 주역이기도 하다.

한국 스포츠 세계수준으로

이처럼 국내 기업들은 스포츠에 많은 지원을 해왔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0대 그룹의 스포츠 관련 지원액은 총 4,276억원에 달한다.

특히 비인기 종목에 대한 투자가 돋보였다. 탁구, 레슬링, 양궁 등 18개 종목에서 23개 실업팀을 창설했고, 선수단 운영 471억원, 협회 지원 140억원, 주요 국제대회 유치 및 개최 714억원 등 1,325억원을 투입했다.

물론 대기업들이 후원한 모든 종목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 건 아니다. 그러나 올림픽 메달 성적으로 후원기업을 평가할 건 아니다. 한국 스포츠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사실이 메달보다 값진 일이기 때문이다.

'본전'도 못찾은 대교
배드민턴 '져주기 파문'… 허술한 규정 자충수

이번 올림픽을 통해 스포츠를 후원한 대부분 기업은 브랜드 가치 상승 등 호재를 맞았다. 반면, 아예 '본전'도 못 찾은 기업도 있다.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이 대표적인 예다. 강 회장이 맡고 있는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이 최근 국가 대표 배드민턴 선수들의 고의 패배와 관련 전원 실격을 내리면서 '자충수'비판이 뒤따랐다.

선수들의 스포츠정신에 대한 지적도 많지만 BWF가 사실상 규정의 허점을 만들었다는 비판여론도 만만치 않다.

BWF는 올해 처음으로 조별예선제를 도입했다. 남녀, 혼합복식은 모두 16개조가 A~D조에 배분돼 조별리그를 치러 상위 1~2위팀만 8강전에 오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됐다. 이미 2연승으로 8강 진출이 확정된 한국과 중국선수 등이 굳이 최선을 다할 이유가 없었다. 대신 다른 조의 경기 상황을 봐서 강호를 피하는 등 결선 토너먼트 대진을 유리하게 받기 위한 일종의 '조절'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자연스레 '져주기 게임'이 나왔다. BWF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즉각 청문회를 열었고, 해당 4개조를 모두 실격 처분했다. 한국은 즉각 BWF에 이의제기를 했지만 결국 기각됐다.

화살은 강 회장에 향했다. 허술한 규정으로 자충수를 뒀다는 비판이 나왔다. 강 회장은 "올림픽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