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계약 포기방침에 따라 한국 관광공사가 인천국제 공항내 면세점에서 방을 빼야 할 처지에 몰렸다. 사진은 지난달 개장한 인천공항 면세점 내 국산품 전용매장에서 직원이 상품을 정리하는 모습. 주간한국 자료사진
인천국제공항이 시끄럽다.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인천공항 면세점이 내년 2월로 계약이 만료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따라 관광공사는 인천공항에서 철수해야 한다.

관광공사가 방을 빼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삼성(호텔신라)과 롯데가 다시 한 번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양사는 2009년 AK 면세점 인수(롯데 승), 2010년 루이비통 유치(호텔신라 승)에 이어 제3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

정부의 재계약 포기 방침에도 불구하고 관광공사 면세사업단은 재계약을 희망한다는 공문을 지난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보냈다. "관광공사마저 철수하면 인천공항 면세점에는 재벌기업만 남는다"는 게 관광공사의 일관된 논리다.

관광공사에 따르면 공사의 지난해 면세점 매출은 1,920억원, 순이익은 139억원이었다. 공사는 면세점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관광 개발에 재투자하고 있다.

경주보문단지, 제주중문관광단지 등의 개발비용도 공사의 면세점 사업 이익금에서 충당된다. 이런 상황에서 공사가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을 접는다면 부득불 관광진흥기금에 손을 대야 한다.

면세점은 재벌가의 전유물?

한국면세점협회의 자료를 통해 지난해 국내 면세사업의 시장점유율을 보면, 롯데가 50.75%로 압도적 1위를 달린 가운데 호텔신라가 28.38%로 2위를 지켰다. 1, 2위 업체가 시장의 80%를 점유한 과점 형태의 표본이다.

3위는 JDC(6.29%), 4위는 관광공사(4.19%), 5위는 동화(4.07%), 6위는 워커힐(2.81%), 7위는 파라다이스(2.67%) 순이다. 제주관광공사, 전남개발공사, 보훈복지공단, 현대아산 등의 시장점유율은 채 1%도 안 됐다.

면세점별 매장 전체면적에서는 호텔신라가 49%(약 2,298평)로 1위, 롯데는 35%(1,669평)로 2위다. 관광공사의 경우 16%(767평) 규모를 갖추고는 있으나 대부분 공항 후미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어렵다.

그럼에도 국산품 판매율은 2010년을 기준으로 관광공사가 44.4%인데 반해 롯데는 24.2%, 신라는 16.5%에 불과하다. 그나마 담배를 제외하면 롯데와 신라의 국산품 판매율은 더 낮아진다.

오현재 한국관광공사 노조위원장은 "막대한 국부를 유출하고 있는 롯데 신라 등 재벌들과 달리 관광공사 면세점의 국산품 판매 비중은 45%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오 위원장은 이어 "올 6월에는 중소기업 전용매장까지 여는 등 관광공사 면세점은 단순히 수익뿐 아니라 공적인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은 관광공사의 이런 기능들을 없애버리는 행위"라고 힘줘 말했다.

관광공사의 면세점 철수가 확정되면 국제 입찰을 통해 새 입주업체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 공고는 이르면 이달 안에 이뤄질 전망이다.

하지만 입찰 경쟁은 롯데와 신라 양사로 압축될 거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거대 공룡'인 롯데 신라와는 덩치 차이가 큰 3위 이하 업체들로서는 언감생심이다.

1, 2라운드 때와 마찬가지로 3라운드에서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신영자 롯데쇼핑 이사가 '전투'를 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재벌가 딸들은 모기업의 유통망을 이용해 호텔, 식품, 패션 등 '우아한' 사업에 손을 대고 있다. 삼성 롯데 신세계 현대자동차그룹 등이 앞다퉈 '참전했던' 빵가게 전쟁이 대표적이다.

공기업 선진화로 재벌만 웃는다?

인천공항에 있는 면세점들은 판매가의 평균 20%를 영업료 명목으로 공항 측에 지불하고 있다. 하지만 신라와 롯데의 대전(大戰)을 유발했던 루이비통의 경우 약 7%의 영업료율에 10년간 영업권을 보장받았다. 영업료율은 '집주인'인 공항공사가 전적으로 결정한다.

주요 품목들에 대한 영업료율은 평균 20%로 책정돼 있다. 하지만 업체들은 실질적인 영업료로 매출액의 35%를 납부하고 있다. '최소 보장액(임대료)'이라는 입찰조건 때문에 공항 내 면세점들은 매출에 관계없이 영업료율보다 높은 영업료를 납부하는 실정이다. 결국 이런 부담은 공항 이용객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관광공사는 "인천공항 내에서 갈수록 국산품이 홀대됨과 동시에 재벌들의 독점이 횡행하고 있지만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이 같은 현상이 심화되는 데 인천공항공사의 책임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가 징세권을 포기한 면세사업도 공기업 선진화 정책의 태풍을 피하지는 못했다. 공기업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 시책에 따라 공항 면세점들이 민간으로 넘어가는 게 좋은 예다.

그 결과 MB 정권 출범 직전이던 2007년 53%이던 롯데와 신라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80%로 상승했다. 반면 2007년 시장 점유율 2위(12.02%)였던 관광공사는 4년 만에 4%대의 군소업체로 전락했다.

면세사업은 말 그대로 국가재정의 근간이 되는 징세권을 국가가 포기한 대표적 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세금을 면제해주는 특혜가 유통 공룡인 롯데와 신라에 돌아가는 구조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언론과 정치권에서 인천공항 매각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도 공항이 갖는 공공성을 지키자는 것"이라며"말로만 공공성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수익성만 좇는다면 인천공항의 공공성은 날로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