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2002년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이후에도 현대중공업의 순환출자구조를 이용, 그룹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사진은 현대중공업이 지난 5월 준공한 바레인 발전ㆍ담수 플랜트. 주간한국 자료사진
10대그룹의 지배구조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모든 주주는 자신이 보유한 지분만큼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주식회사의 본래 의미가 무색하게 10대그룹 총수들은 1%도 채 못 되는 지분으로 그룹의 전체 계열사를 사실상 지배하며 최대한의 권리를 누리고 있다. 총수들 자신의 지분율은 점차 떨어지고 있지만 인수ㆍ합병과 기업분할 등의 방법으로 내부지분율을 높여가며 그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주간한국>에서는 10대그룹 총수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지 차례로 짚어본다.

내부지분율 73%나

일찍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까닭에 엄밀히 말해 현대중공업에는 총수가 없다. 1982년 31세의 나이로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전격 발탁되며 현대중공업 회장과 고문을 거치며 오너경영체제를 이어갔던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2002년 이후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상태다. 정 전 대표 이후 현대중공업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것은 민계식 현대중공업 상담역이었다. 민 상담역이 지난해 12월 일선 경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이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1987년 현대중공업 회장에서 1990년 고문으로 한 걸음 물러서고 2002년에는 그 자리마저 내놓은 정 전 대표이지만 지금도 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막강하다. 어떤 직함도 지니지 않은 채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룹의 굵직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면서 사실상의 총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 전 대표는 그룹의 지분 1.08%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1.34%에 비하면 0.26%p 줄어든 수치다. 정 전 대표의 2~6촌 이내 혈족과 1~4촌 이내 인척을 포함한 친족들의 지분율은 0.13%로 10대그룹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0.15%였던 지난해와 비교해도 0.02%p 떨어졌다.

정몽준 전 대표. 주간한국 자료사진
정 전 대표와 친족을 합한 총수일가의 지분율은 1.22%에 불과하지만 현대중공업의 계열사 지분율은 10대그룹에서 가장 높다. 지난해 68.98%였던 계열사지분율은 올해 69.42%로 더 높아졌다. 현대중공업은 10대그룹 중 가장 높은 계열사지분율에 힘입어 내부지분율 또한 최고 수준이다. 현대중공업의 내부지분율은 73.38%로 2, 3위인 GS(64.39%), 삼성(62.21%)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다.

높은 내부지분율은 1.08%에 불과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정 전 대표가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정 전 대표의 그룹 지배력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현대중공업의 10.2% 지분이다.

환상형 순환출자구조

현대중공업은 환상형 순환출자구조(이하 순환출자구조)를 이용, 내부지분율을 높이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순환출자고리는 단 한 개로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의 간단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삼호중공업의 지분 94.9%를 보유하고 있고 현대삼호중공업은 현대미포조선의 지분 46.0%를 갖고 있다. 현대미포조선이 다시 현대중공업의 지분 8.0%를 보유함으로써 순환출자고리가 완성된다. 하나의 순환출자고리지만 그룹의 3대 핵심계열사를 모두 포함함으로써 막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될 당시만 해도 현대중공업은 순환출자구조형태를 지니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는 현대중공업이 현대삼호중공업(94.92%)과 현대미포조선(27.68%)을 자회사로 두고 지배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2003년 10월 현대중공업이 자사주 5%를 현대미포조선에 장내매각하고 자사가 보유한 현대미포조선의 지분 27.7%를 현대삼호중공업에 매각했다.

이러한 이중작업으로 현대중공업을 정점으로 했던 지주회사 체제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을 세 축으로 하는 순환출자구조로 변모하게 됐다. 이 작업이 고문직을 내려놓은 데다 현대중공업의 지분을 적게 지니고 있었던 정몽준 전 대표의 경영권 안정에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이후 현대삼호중공업이 현대미포조선 주식을 추가 취득하고 현대미포조선도 현대중공업의 주식을 추가로 확보하면서 순환출자구조를 강화했다.

미포조선 지분 매각땐 해소

현대중공업의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다.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지분을 매각하면 자연히 해소되는 것이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달 17일 발표한 '대규모 기업집단의 순환출자 현황 및 지분가치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미포조선이 현대중공업에 출자한 1조6,000억원 가량을 부담할 경우 순환출자구조를 완전히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정몽준 전 대표와 재단(아산사회복지재단, 아산나눔재단)의 지분을 모두 합해도 13.33%로 높지 않은 상황(자사주와 특수관계인들의 지분까지 모두 더하면 21.32%)이라 순환출자구조가 해소되면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순환출자구조 해소 이후에도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 전 대표가 추가로 현대중공업 지분을 획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