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지분율 73%나
일찍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까닭에 엄밀히 말해 현대중공업에는 총수가 없다. 1982년 31세의 나이로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전격 발탁되며 현대중공업 회장과 고문을 거치며 오너경영체제를 이어갔던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2002년 이후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상태다. 정 전 대표 이후 현대중공업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것은 민계식 현대중공업 상담역이었다. 민 상담역이 지난해 12월 일선 경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이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1987년 현대중공업 회장에서 1990년 고문으로 한 걸음 물러서고 2002년에는 그 자리마저 내놓은 정 전 대표이지만 지금도 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막강하다. 어떤 직함도 지니지 않은 채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룹의 굵직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면서 사실상의 총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 전 대표는 그룹의 지분 1.08%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1.34%에 비하면 0.26%p 줄어든 수치다. 정 전 대표의 2~6촌 이내 혈족과 1~4촌 이내 인척을 포함한 친족들의 지분율은 0.13%로 10대그룹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0.15%였던 지난해와 비교해도 0.02%p 떨어졌다.
높은 내부지분율은 1.08%에 불과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정 전 대표가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정 전 대표의 그룹 지배력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현대중공업의 10.2% 지분이다.
환상형 순환출자구조
현대중공업은 환상형 순환출자구조(이하 순환출자구조)를 이용, 내부지분율을 높이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순환출자고리는 단 한 개로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의 간단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삼호중공업의 지분 94.9%를 보유하고 있고 현대삼호중공업은 현대미포조선의 지분 46.0%를 갖고 있다. 현대미포조선이 다시 현대중공업의 지분 8.0%를 보유함으로써 순환출자고리가 완성된다. 하나의 순환출자고리지만 그룹의 3대 핵심계열사를 모두 포함함으로써 막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될 당시만 해도 현대중공업은 순환출자구조형태를 지니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는 현대중공업이 현대삼호중공업(94.92%)과 현대미포조선(27.68%)을 자회사로 두고 지배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2003년 10월 현대중공업이 자사주 5%를 현대미포조선에 장내매각하고 자사가 보유한 현대미포조선의 지분 27.7%를 현대삼호중공업에 매각했다.
미포조선 지분 매각땐 해소
현대중공업의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다.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지분을 매각하면 자연히 해소되는 것이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달 17일 발표한 '대규모 기업집단의 순환출자 현황 및 지분가치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미포조선이 현대중공업에 출자한 1조6,000억원 가량을 부담할 경우 순환출자구조를 완전히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정몽준 전 대표와 재단(아산사회복지재단, 아산나눔재단)의 지분을 모두 합해도 13.33%로 높지 않은 상황(자사주와 특수관계인들의 지분까지 모두 더하면 21.32%)이라 순환출자구조가 해소되면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순환출자구조 해소 이후에도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 전 대표가 추가로 현대중공업 지분을 획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