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본사
위기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지난해부터 꼬리를 무는 세 가지 악재를 맞아 휘청했던 농심을 이끄는 의 단단한 대처가 주목되고 있다.

차근차근 단계 밟아

1958년생인 신동원 부회장은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화학공학 학사, 무역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신 부회장이 농심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77년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놀면 뭐하느냐"는 아버지 신춘호 농심 회장의 한마디에 대신공장에서 호된 신입사원 교육을 미리 받은 것이다. 1979년 12월 농심 평사원으로 입사한 신 부회장은 이듬해 3월부터 정식 출근을 시작했다.

신 부회장은 그룹 총수의 맏아들이라는 출신성분이 무색하게 차근차근 업무과정을 밟아나갔다고 전해진다. 그 과정에서 재경, 구매, 기획, 해외업무 등 회사의 전반적인 실무를 익힌 신 부회장은 1997년 농심 국제담당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2000년 마침내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다.

각종 모임 이끌며 두각

신동원 농심 부회장
부드러운 인상과 달리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을 듣는 신동원 부회장은 가족, 출신학교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친목모임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신 부회장은 범롯데가의 젊은 2세들이 만든 친목모임을 이끌고 있다. 지난 1996년 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부지를 놓고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과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 법정다툼까지 가는 등 형제간 어색해진 관계가 지금까지 내려오는 '호'자돌림 1세들과 달리 '동'자돌림 2세들은 화목하게 지내보자는 취지에서 만든 모임이다. 이 모임을 앞장서 만든 신 부회장은 수시로 2세들을 불러 모아 허물없이 뭉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신 부회장은 신일고 출신의 재벌가 자제들 친목모임인 신수회에서도 핵심인물로 자리하고 있다. 신 부회장(7기)을 중심으로 위로는 모임의 맏형격인 이웅렬 코오롱 회장(6기)이 아래로는 김상범 이수 회장(9기), 최태원 SK 회장(10기) 등이 자리한 신수회는 골프 회동, 부부동반 송년회 등을 통해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경영권 승계 완성

신동원 부회장은 2003년 농심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부친인 신춘호 회장으로부터 사실상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농심은 2003년 7월 (주)농심에서 투자사업부문을 떼어내 지주회사인 농심홀딩스를 신설했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전인 2002년 말 주력사인 (주)농심의 지분은 신춘호 회장이 9.96%, 신 회장의 장ㆍ차남인 신 부회장과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이 각각 2.78%, 0.36%를 보유했었다.

그러나 농심홀딩스 신설 후 두 형제가 보유한 (주)농심, 율촌화학, 농심엔지니어링 주식과 농심홀딩스의 주식을 맞교환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며 신동원 부회장과 신동윤 부회장은 농심홀딩스의 1ㆍ2대주주로 올라섰다. 현재 농심홀딩스에 대한 신동원 부회장의 지분은 36.88%, 신동윤 부회장의 지분은 19.69%에 달한다. 지주회사의 최대지분을 보유함으로써 그룹 전체에 강한 지배력을 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배구조 상으로는 사실상 신 부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한 것과 다름없게 보일지라도 신 회장의 의중이 아직까지는 정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신 회장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형제들을 경쟁시킬 가능성도 있다는 내용이다. 신 회장이 경영을 신 부회장에게 맡긴 이후에도 영업실적이나 제품 개발과 같은 주요 현안은 직접 챙기는 등 아직까지 모든 실권을 완전히 넘겨주지 않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 같은 주장은 지난 3월 삼남인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이 (주)농심의 사내이사에 선임되며 더욱 강해졌다. 특히 지난해 신동원 부회장이 맡고 있던 농심의 실적이 악화된 반면 신동익 부회장이 운영하는 메가마트의 성적표는 좋았기에 농심의 후계 경쟁설은 더욱 힘을 받았다.

악재 넘어 재도약할까

신동원 부회장은 지난해 잇따른 악재로 최대 위기를 겪었다. 주력 사업인 라면시장에서 새롭게 등장한 '하얀국물 라면' 바람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며 점유율 하락을 경험했고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하는 삼다수 사업에서도 제주도 지방자치단체와의 유통계약 해지 문제로 법적 분쟁을 벌였다. 급기야 라면 가격 담합을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세 종류의 악재가 모두 만만찮은 것들이라 그룹 전체에 위기가 올 가능성도 있었지만 신 부회장 주도로 그럭저럭 잘 수습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최고수준의 재무안정성과 꾸준한 해외사업 매출 증대라는 굳은 뿌리로 모진 바람을 이겨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 부회장은 최근 담합 관련 과징금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일부 품목에 대한 가격 인상을 결정하는 등 하반기 분위기 전환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젊은 나이임에도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신 부회장이 극심한 추위를 이겨내고 농심을 다시 최고의 위치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