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부근(오른쪽) 삼성전자 소비자 가전 담당 사장이 내놓은 첫 작품' 지펠 T9000'이 출시 한 달 만에 1만대 판매를 돌파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나 회장의 이름을 내건 제품이나 상품 출시가 줄을 잇고 있다. 이른바 'CEO 마케팅'이다. 카드, 스마트폰, 냉장고, 의류 등 그 품목도 다양하다.

이 같은 마케팅 기법은 일종의 '배수진 전략'으로 통한다. 잘 팔리면 CEO도 같이 뜨는 반면, 안 팔리면 체면을 구기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의 누가, 위험을 무릎 쓰고 홍보 최전선에 나선 걸까.

윤부근 냉장고
삼성전자 최대 용량 '지펠 T9000' 개발 지휘·홍보

최근 대기업 회장이나 CEO 이름을 내건 제품의 출시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초 출시된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 담당 사장의 '윤부근 냉장고'가 대표적인 예다.

지펠 T9000으로 명명된 이 냉장고는 사실 2년 전 800리터대 모델로 기획돼 완성 직전까지 갔던 제품이다. 하지만 갓 취임한 윤 사장이 900리터로 키우라고 지시했다.

소비자들은 '냉장고는 역시 용량이 큰 게 최고'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타사보다 먼저 대용량 냉장고를 내놓으면 시장을 선점할 수 있으리란 판단에서다.

실무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밤잠 못 자고 제품 개발에 매달린 끝에 이른바 '윤부근 냉장고'가 탄생했다. 이 냉장고는 가전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윤 사장이 생활가전사업부를 맡은 지 7개월 만에 처음 선보인 제품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지난달 4일 열린 발표회는 그간 생활가전사업부에서 평소 조촐하게 진행해오던 신제품 발표회와는 차원이 달랐다. 예년보다 규모가 크고 화려했다. 발표회를 진두지휘한 윤 사장의 '소비자가전제품도 스마트폰 행사처럼 하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어 지난달 17일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린 지펠 T9000 출시 기념 파티도 성대했다. 유명 연예인과 뮤지컬 스타들이 총출동 했다. 이날 파티에서도 윤 사장이 직접 나서 T9000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윤 사장이 직접 나선 마케팅에 화답하듯 '윤부근 냉장고'는 발매 직후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발매 첫날에만 400대가 넘는 초기 판매실적을 거둔 것이다. 이는 기존 양문형 냉장고인 그랑데스타일 모델의 동일 기간 판매량과 비교하면 세 배를 훌쩍 넘는 실적이다. 그리고 T9000은 출시 한 달 만에 1만대 판매를 돌파했다.

예상 밖의 실적에 윤 사장을 비롯한 생활가전사업부 임원들은 잔뜩 고무된 분위기다. 윤 사장 스스로도 이 정도로 수요가 몰릴 줄은 몰랐다며 반색하고 있다.

'윤부근 냉장고'가 이처럼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수출 전선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한국 시장의 뜨거운 반응을 확인한 삼성 측은 다음달부터 중동을 시작으로 가전제품의 격전지로 꼽히는 미국 시장에 이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타당성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구본준폰
LG전자 최상급 스마트폰으로 '배수의 진'

삼성에 '윤부근 냉장고'가 있다면 LG엔 '구본준폰'이 있다. '부회장님'의 이름을 내건 만큼 성능도 최상급이라고 한다. 디스플레이, 배터리, 카메라 등 LG전자와 LG그룹 계열사 역량을 총 집결한 폰이라는 게 LG의 설명이다. 여기에, 펀(Fun) 기능, 뛰어 난 사용자 환경, 생산성 올려주는 퀵 메모 등으로 기존 스마트폰과 차별화된 UX를 제공할 할 계획이다.

'구본준폰'은 LG그룹의 사활을 건 승부수다. LG 그룹 내부에선 그동안 스마트폰 분야의 부진이 전 계열사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애플 등 경쟁업체들은 차기폰에 대한 비밀주의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LG는 '구본준폰'의 등장을 예고하면서 공개적으로 배수의 진을 친 게 그 방증이다.

LG그룹이 '구본준폰'에 거는 기대는 크다. 스마트폰은 LG전자뿐 아니라 부품, 통신 등 그룹 내 실적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결국 '구본준폰'의 성과가 계열사들의 성적도 좌우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룹 내에서는 스마트폰의 성과가 외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힘겹게 흑자 전환했던 LG전자가 다시 적자로 돌아서며 LG전자 실적의 발목을 잡는 분위기다. 따라서 어느 때 보다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구본준폰'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하지만은 않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3가 연일 판매신기록 갱신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데다, 스마트폰의 최강자인 애플도 아이폰의 신제품을 내놓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기업 CEO 마케팅이 순항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망은 밝다.

윤용로 카드
외환은행 '2X카드' 행장이 직접 영업전선에

외환은행도 CEO 마케팅이 한창이다. 지난 6월 12일 외환은행이 야심차게 내놓은 2X카드를 홍보하기 위해 윤용로 외환은행장이 직접 나선 것이다.

외환은행은 론스타가 대주주였던 지난 10년간 적극적인 카드 영업을 하지 못했다. 윤 행장은 직원들에게 '외환은행을 카드 명가로 다시 부활시킬 수 있는 카드'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바로 2X카드다.

발급 후 첫 6개월 사용기간 동안에도 혜택을 받지만, 6개월이 지나면 혜택을 2배로 늘려주는 게 이 카드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처음엔 25%를 할인 받을 수 있지만 6개월 후에는 할인율이 50%로 늘어나는 식이다. 고객이 카드를 오래 쓰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카드는 현재 은행 안팎에서 '윤용로 카드'로 통하고 있다. 2X카드가 이런 별명을 얻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윤 행장이 직접 발로 뛰며 영업활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윤 행장은 점심과 저녁 약속 장소에 나갈 때마다 '2X(투엑스)카드' 가입신청서를 빠지지 않고 챙긴다.

매일 1~2장씩 가입신청을 받아 현재까지 '판매인 윤용로'로 기록된 카드가 수십여장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노력 끝에 윤 행장의 카드모집 영업사원에 버금가는 영업 능력을 체득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윤 행장은 또 2X카드의 홍보를 위해 금융권 최초로 '바이럴 마케팅'을 도입을 주문했다. 이는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게 하여 상품에 대한 긍정적인 입소문을 내게 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이에 외환은행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2분30초 분량의 2X카드를 홍보하는 동영상을 꾸준히 퍼뜨렸다.

윤 행장의 적극적인 마케팅은 빛을 발했다. '윤용로 카드'가 신용카드 시장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2X카드는 도입 후 한 달여 만에 10만장 이상이 발급됐다. 이처럼 카드가 인기를 끌다 보니 외환은행은 최근 180명이던 심사직원을 280명으로 늘렸다. 가입신청서 물량이 모자라자 정식 신청서 대신 복사용지를 사용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이서현 재킷
공개석상서 입은 제일모직 제품 '화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은 예기치 않게 CEO 마케팅의 효과를 누린 케이스다. 지난 6월 1일 서울 호암아트센터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엔 주최자인 이 회장 부부를 비롯 각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날 시선은 이 부사장에 집중됐다. 이 부사장이 입은 흰색 재킷이 때문이었다. 이 재킷은 제일모직 브랜드인 '에피타프'의 제품이었다. 에피타프는 제일모직이 올 3월 20~30대 직장 여성을 타깃으로 시작한 여성복 브랜드다. 트렌드를 반영하면서도 고급스럽고, 가격도 아주 비싸지 않은 게 특징이다.

이 부사장은 재계의 '패셔니스타'로 통한다. 입고 나오는 옷마다 화제가 됐다. 이 부사장은 평소 제일모직의 수입하는 해외 브랜드나 좀 더 높은 가격대의 옷을 주로 입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날은 40만원대의 제일모직 최신 브랜드를 선택했다.

에피타프의 흰색 재킷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이서현 재킷'으로 불리며 뜨거운 인기를 끌었다. 이 때문에 '이서현 재킷'은 초도 물량이 매진돼 재생산에 돌입해야 했다. 자연스레 에피타프의 다른 옷들도 주목을 받았다. 이를 통해 에피타프는 백화점 매장에서 여성복 브랜드 가운데 상위매출을 차지하게 됐다.

이처럼 이 부사장은 의도치 않게 행운을 안게 됐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이 부사장이 에피타프 브랜드의 홍보를 위해, 의도적으로 이 재킷을 고른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업계는 에피타프가 공식 블로그에 다른 연예인들의 협찬사진과 함께 이 부사장이 입고 나온 장면을 실은 걸 그 증거로 제시했다.

이처럼 최근 대기업 CEO나 회장들은 제품 홍보에 양팔을 걷어 부쳤다. 재계에선 CEO 마케팅이 재계의 트랜드로 자리 잡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쏠쏠한 마케팅의 효과를 누리고 있어서다. 다음엔 어떤 '회장님'이 어떤 제품을 들고 홍보전선에 나설까.

홈플러스, 툭하면 골목상권과 마찰


2009년 이후 SSM 관련 사업조정신청 186건 '최다'

송응철기자

국내를 대표하는 '유통 공룡' 중 하나인 홈플러스가 툭하면 '집(Home) 앞' 골목상권과 마찰을 빚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지식경제경제위원회 김한표 의원(무소속 거제)이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사업조정제도 도입 이후 지난 7월까지 총 신청건수는 509건에 이르렀다. 2009년 144건, 2010년 147건, 지난해 127건에 이어 올해도 91건이 접수됐다.

특히 대형 유통사들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빚어온 기업형 슈퍼마켓(SSM) 관련 사업조정신청이 가장 많았다. 2009년 144건 중 121건, 올해 또한 전체 신청건수의 절반이 넘는 51건이 SSM 관련이었다.

업체별로는 홈플러스가 186건으로 가장 많았고, 롯데그룹 114건, GS그룹의 GS슈퍼가 55건이었다. 홈플러스는 총 186건 중 172건이 SSM인 홈플러스익스프레스와 관련돼 있었다. 사업조정신청 1호도 홈플러스였다. 롯데의 경우 89건이 롯데슈퍼와 관련됐다.

이와 함께 최근 들어서는 대형마트와 할인점 분야에서도 크고 작은 마찰이 일고 있다. 신청건수가 지난 2009년과 2010년에는 12건과 9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9건으로 늘었고, 올해도 벌써 16건에 이르렀다.

이는 유통회사들이 SSM 규제가 강화되면서 대형마트와 할인점 확대로 사업 방향을 선회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주변 상인들과 입점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홈플러스 합정점 역시 대형마트다.

김한표 의원은 "SSM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자 대기업이 대형마트 또는 할인점 개점을 통해 골목상권 잠식에 나서고 있다"며 "정부가 중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사업조정제도를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업조정제도는 중소기업의 경영 피해를 막기 위해 일정기간 대기업의 사업 인수ㆍ개시ㆍ확장 유예 또는 사업 축소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자율적으로 합의하도록 정부가 중재하는 제도다. 자율 합의에 실패할 경우 정부는 조정권고를 내리게 된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