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그룹 사옥
재계3세 CEO가 뛴다<33>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

엄격한 부친 밑에서 오랫동안 경영수업을 받아왔던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이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상 그룹의 생활산업부문 경영권을 넘겨받은 김 부사장이 올해부터 벌이는 글로벌 행보에 동원의 미래가 걸려있는 까닭이다.

일선 현장에서 경영수업

김남정 부사장은 김재철 동원 회장의 차남이자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의 동생이다. 김 부사장은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1996년 동원산업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부산의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며 참치통조림 포장과 창고 야적 등의 작업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김 부사장은 이후 3년 넘게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청량리도매시장을 휩쓸고 다녔다.

생산ㆍ영업ㆍ마케팅 관련 일선 현장에서 밑바닥 일을 경험한 김 부사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 MBA 과정을 2003년 마쳤다. 일찍부터 동원의 생활산업부문 후계자로 낙점된 김 부사장은 2004년 동원F&B 마케팅전략팀장, 2006년 동원산업 경영지원실장, 2008년 동원시스템즈 경영지원실장, 2009년 동원시스템즈 건설부문 부본부장 등 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철저한 경영수업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3월에는 마침내 상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해 그룹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를 이끌게 됐다. 그룹의 생활산업부문을 사실상 맡게 된 것이다.

동원 생활산업부문 사실상 승계

재계에서는 김 부사장이 지난해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으로 승진한 이후 바로 그룹 전체를 총괄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김 부사장은 지금까지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부친 김재철 회장을 보좌하며 그룹 미래전략을 꾸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형인 김남구 부회장이 2004년 동원증권 대표이사를 맡은 후 그룹의 금융부문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된다.

그러나 김 부사장이 그룹의 생활산업부문을 사실상 물려받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고 있다. 김 회장이 2004년 그룹을 계열분리하면서 김 부회장에게는 금융부문을 김 부사장에게는 생활산업부문을 맡긴다는 후계구도를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재 김 부사장은 그룹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의 대주주(지분율 67.98%)로 그룹을 장악하고 있다. 2001년 4월 김 회장 등 대주주가 계열사 주식을 현물 출자해 설립한 동원엔터프라이즈는 동원F&B(71.25%), 동원산업(59.24%), 동원시스템즈(79.90%), 대한은박지(79.97%) 등 그룹 주요 계열사들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어려서부터 형성된 소탈함

재벌가 자제들을 소개할 때 자주 언급되는 성품 중 하나가 바로 ‘소탈함’이다. 그러나 김남정 부사장의 소탈함은 가풍 및 김재철 회장의 교육방침과 밀접하게 연관돼있어 여느 재벌가 자제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향교장(鄕校長)이었던 부친 밑에서 자란 김 회장은 자녀들에게도 호된 교육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덕분에 김 부사장은 어릴 적부터 용돈을 받기 위해 집안일을 꾸준히 해왔다고 알려졌다. 첫 사회생활을 참치통조림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찬가지로 형인 김남구 부회장은 대학 졸업 후 6개월간 원양어선을 탔었고 누나들도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흙, 노동, 근검절약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전해진다.

김 회장의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간다”는 지론 아래서 자란 덕인지 김 부사장은 주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대학 시절 선후배들이나 참치통조림공장 동료들조차도 평소 행동거지를 통해서는 김 부사장이 재벌가 자제라는 것을 전혀 몰랐을 정도다.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에 오른 이후에도 묵묵히 맡은 일을 하면서 직원들과의 소통에 앞장서고 있다.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신입사원부터 임원에 이르기까지 여러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 직원들로부터 높은 신망을 받고 있다는 평가다.

동원의 글로벌 행보 이끌어

김남정 부사장은 올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해외 계열사인 미국 스타키스트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은 것이다.

미국 1위 참치통조림 업체인 스타키스트는 동원과 깊은 인연이 있는 회사다. 김재철 회장이 원양어선을 탔던 1960년대 초반에 납품거래를 했었고, 1969년 동원산업 설립 이후에도 거래관계를 꾸준히 이어왔다. 이후 동원은 1982년 국내 최초로 참치통조림을 생산하며 스타키스트 의존도를 낮췄고 2008년 6월에는 3억6,300만달러를 들여 아예 스타키스트를 인수했다.

김 부사장은 앞으로 한동안 미국에 머물며 스타키스트를 현장 경영하는 동시에 해당 브랜드로 글로벌 시장에서 참치 이외의 수산식품 시장을 개척하는 일을 추진할 계획이다. 최근 세계 4위 참치통조림 업체인 스페인 칼보에 대한 인수중단을 결정한 이후 멈칫했던 동원의 글로벌 경영 행보가 김 부사장의 양 어깨에 달린 셈이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