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이어져온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의 승부가 갈렸다. 승기를 잡은 건 애플.

미 법원은 삼성에 1조원 이상의 거액 배상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삼성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즉각 이의를 제기하고 항소를 예고하면서 소송은 장기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졌다.

해외 기업과의 특허분쟁은 비단 삼성전자만의 일이 아니다. 국내 어느 기업도 특허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업을 글로벌 무대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해외 경쟁사의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글로벌 기업들 대부분은 다년에 걸친 특허소송을 겪으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을 쏟고 있다. 현대차, LG, 포스코 등 국내서 내로라하는 대기업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특허분쟁에 휘말려 있는 상황이다.

특허소송 급증 추세

국내 글로벌 기업과 해외 기업의 특혜전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미국 무역협회에 모두 53건의 특허소송이 제소됐다. 미국의 254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피소를 당했다.

이런 추세는 특허청 자료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국내 업체와 해외 특허전문관리기업 간의 특허소송 건수는 2008년 50건에서 2009년 54건, 2010년 58건으로 점증하는 추세를 보였다. 특히 지난해 94건에 이어 올해는 상반기에만 모두 61건이 발생하는 등 최근 들어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도 애플과 한창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4월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업계에선 삼성전자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경쟁사들은 잇따라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에 뛰어들었다. 애플은 시장을 지키기 위해 특허를 내세워 경쟁사를 압박하고 있다. 그중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바로 삼성전자다.

그리고 지난 8월 24일 1년 넘게 끌어온 삼성-애플 간 소송의 결론이 났다. 기선을 제압한 건 애플이다. 삼성전자와 애플 간 특허소송 1심을 맡은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연방북부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배상금으로 10억4,934만달러(약 1조1,900억원)를 지급하라고 평결했다.

그러나 아직 싸움이 끝난 건 아니다. 삼성전자는 즉각 평결에 이의를 제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9월 중으로 예정된 특허소송 1심 판결 결과에 따라 미 워싱턴 연방순회항소법원에 항소할 계획이다. 소송이 대법원까지 간다면 최종 확정판결까지는 2년 정도가 소요될 전망이다.

현대차ㆍLG도 특허전

해외기업과의 특허소송은 삼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의 많은 기업들이 특허소송을 치르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영토 전쟁을 벌이는 기업들 간에 소송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당장 현대차만 봐도 그렇다. 현대차는 현재 미국의 파이스와 특허분쟁에 휘말려 있다. 지난 2월 파이스가 쏘나타와 K5 하이브리드 모델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하이브리드 차량의 자동차 동력전달 기술 등 특허 3건을 침해했다는 게 파이스의 주장. 그러나 현대차는 쏘나타와 K5 하이브리드의 경우 일본 토요타와도 전혀 다른 자체기술을 적용해 특허 침해 사실이 전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업계는 후발주자인 현대차가 기존에 나온 특허들을 모두 피해가기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차는 전자와 기계가 융합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 소송은 아직 초기단계다. 아직 양측이 답변서를 제출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하지만 파이스가 토요타의 프리우스가 미국시장에 진출하자마자 특허소송을 제기해 8년여의 법정공방을 끌고 갔던 만큼 길고 지루한 싸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LG전자와 LG이노텍도 오스람과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시장을 놓고 한판승부를 벌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스람과 특허전쟁을 벌이던 삼성전자는 지난 전격 합의에 성공하면서 관련 특허를 서로 공유하고 차세대 LED 기술을 공동개발하기로 했다. 반면, LG는 아직도 오스람과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LG-오스람 특허전은 오스람이 먼저 특허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오스람이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급성장하고 있는 차세대 조명시장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전세계 조명 시장은 네덜란드 필립스와 독일 오스람,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등 세 기업이 지배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과 LG가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조명시장의 무게중심이 형광등과 백열등에서 LED로 이동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제조경쟁력을 갖춘 삼성과 LG가 LED조명 시장에 뛰어들면서 업계는 조명시장 판도가 급격히 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합의를 이끌어 낸 삼성과 달리 LG의 조명사업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독일과 미국에서 벌어진 소송에서 연패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LG전자와 LG이노텍이 오스람의 LED 특허 1건을 침해한 사실을 인정했고, 독일에서 벌어진 특허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이에 따라 LG는 미국과 독일 수출길이 막힐 위기에 처한 상태다.

포스코 코오롱도 곤욕

포스코도 특허 전선(戰線)에 서있다. 신일본제철이 지난 6월 포스코를 상대로 도쿄지방법원에 1조4,000억원대의 특허소송을 제기하면서다. 앞서 신일본제철은 지난 4월 도쿄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 및 포스코 전기강판 제품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바 있다.

업계는 고부가가치 부문인 전기강판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는 포스코에 대해 신일본제철이 견제에 나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신일본제철이 문제를 삼은 고성능 전기강판은 전기적 성질을 가진 강판이다. 최근 하이브리카 또는 전기차 등에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일반 강판보다 3~4배 가량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데다 마진율이 30%대를 넘을 정도로 고부가 분야다.

전기강판 시장은 과거 일본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왔다. 그러나 포스코가 자체 기술을 개발, 시장에 진입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아직까진 신일본제철이 20% 중반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포스코가 20% 초반을 기록하며 바짝 따라붙고 있는 상황이다.

신일본제철은 포스코가 이 전기강판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사 퇴직자를 통해 불법적으로 특허 기술을 획득해 활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철강업계에서는 최근 포스코의 시장점유율이 상승하는 것에 대해 위협을 느낀 신일본제철이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흠집을 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코오롱 역시 미국 듀폰과 차세대 첨단 고강도 섬유 '아라미드(Aramid)' 상용화 기술을 놓고 1조 원이 걸린 소송을 벌이고 있다. 코오롱은 고(故) 윤한식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박사가 1979년부터 추진하던 아라미드 섬유의 국산화 연구를 1981년부터 본격 지원했다. 그 끝에 관련 물질특허를 미국, 영국, 일본 등 7개국에 출원했다.

그러나 코오롱은 듀폰의 견제로 특허 소송에 휘말리게 됐다. 2009년 코오롱이 듀폰의 전직 직원과 컨설팅 계약을 한 데 대해 듀폰이 미국 버지니아 동부법원과 서울중앙지검에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이에 코오롱은 듀폰이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코오롱의 미국 진출을 방해했다며 미국 법원에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지난해말 미국 법원은 코오롱이 듀폰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손해배상금 9억1,990만달러(한화 1조440억원)를 배상하라는 배심원 평결을 받아들였다.

또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도 35만달러(한화 3억9,000만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에 코오롱이 지난 7월 항소하면서 법정 분쟁은 장기전으로 접어들고 있는 모양새다.

대책마련 절실

이처럼 국내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은 특허소송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아직 특허전에 대한 대비가 미흡한 게 사실이다. 미국의 특허소송 승소율이 59%에 달하는 반면, 한국은 26%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이를 대변한다.

이에 따라 세계 무대에서 활동할 기업이라면 특허와 관련된 대비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허가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어 더욱 그렇다.

전문가들은 특히 특허소송에 잘못 대처해 내리막길을 걷게 된 코닥과 같은 사례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한다. 코닥은 1980년대 후반 폴라로이드와의 특허소송에서 패소하면서 8억7,300만달러(현재 환율 9,900억원)를 지불해야 했다. 여기에 제품 회수 및 공장 폐쇄 등에 든 비용을 합하면 손실금은 30억달러(현재 환율 3조4,000억원)를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와 관련, 한 특허 전문가는 "코닥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부서의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제품 개발 및 기획 단계부터 특허 관련 전략을 세우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DVD기술 무단 사용" LG, 도시바삼성에 손배소 SK와도 분리막 특허분쟁
● 국내 기업끼리도 '티격태격'

국내 기업들이 해외 기업들하고만 특허소송을 벌이는 건 아니다. 국내 기업끼리 특허전을 벌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 LG전자와 삼성전자-도시바 합작법인인 도시바삼성스토리지테크놀러지(TSST)의 특허전이 대표적인 예다.

선공은 LG전자가 날렸다. LG전자는 지난 8월 22일 미 법원에 광학저장장치(DVD) 기술과 관련 표준 기술 4건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특허 침해 기술은 컴퓨터와 캠코더, 비디오 녹화장에 쓰이는 재기록 및 녹음 재생 기술이며 2000년에 미국에서 특허 등록됐다.

그동안 TSST는 LG전자와 계약을 맺고 DVD 관련 기술 사용료를 지불해왔다. 그러나 2010년 특허 사용 기간이 만료되면서 LG전자 측에선 계약 갱신을 요구했지만 TSST는 특허 사용 기간 계약을 갱신하지 않았다.

이에 LG전자는 TSST측이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현재까지 무단으로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며 특허권 보호 차원에서 소송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LG전자는 2년간 관련 기술의 무단 사용으로 얻은 수익과 로열티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에 나섰으며, 아직 자세한 규모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LG는 SK와도 특허 분쟁을 벌이고 있다. 2차 전지 특허침해 여부를 두고서다. 분쟁은 지난해 12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분리막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SK이노베이션은 이에 맞서 곧바로 LG화학의 분리막 특허에 대한 무효심판을 청구했다.

문제가 된 LG화학의 분리막 특허는 종래 분리막에 도포된 활성층의 기공 구조를 이용함으로써 기존 분리막에 비해 열 수축과 전기적 단락이 발생하지 않아 전지 성능과 안정성을 개선한 기술이다.

분리막은 2차 전지의 핵심 소재로 양극과 음극이 접촉해 단락 되는 것을 방지하고 이온 통로 역할을 한다. 세계 분리막 시장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연평균 29.1% 성장했으며 올해 시장 규모가 1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최근 특허전에서 SK와 LG의 희비가 엇갈렸다. 지난 8월 9일 SK이노베이션이 특허심판원에 제기한 무효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로 SK이노베이션은 2차 전지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됐다.

하지만 이 특허심판원의 결정은 아직 1라운드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SK이노베이션은 "사실상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지만 LG화학은 "특허법원에 심결취소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