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주자인 문재인(오른쪽) 후보가 지난달 25일 제주시 한라체육관에서 열린'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제주 경선'에서 선거인단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부터 정세균 김두관 손학규 문재인 후보.
돌아온 친노(친 노무현)가 독주하고 있다.

독주는 곧 승리를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1차 플레이오프에 국한된 얘기일 뿐, 2차 플레이오프는 되레 멀어질 수도 있다. 특정 세력의 독주는 반대편의 결집을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야권 입장에서 1차 플레이오프는 민주통합당 당내 대선 경선, 2차 플레이오프는 출마를 전제로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최종 단일화다. 1, 2차 플레이오프를 통과한 후보만이 '한국시리즈'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최종 승부를 겨룬다.

범친노로 분류됐던 김두관 후보가 "노무현 이름을 이용하는 세력과는 완전히 결별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터라 민주당 내 대선 예비후보 4명 중 '공식' 친노 인사는 문재인 후보 1명뿐이다.

지난 25일 시작된 민주당 제18대 대선 경선에서 문 후보는 초반 순항하고 있다. 문 후보는 제주 울산 강원 충북 등지에서 연승을 거두며 대세론을 굳혀가려 하고 있다.

하지만 초반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모바일 투표의 문제점과 공정성 논란, 그에 따른 흥행 저조로 온갖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한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 후보에게 독주가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은 이유다.

민주당 관계자는 "경선이 흥행에 성공하고 나아가 당 후보가 안철수 원장과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역동성이 필수"라며 "최대 승부처가 될 6일 광주 전남 경선까지는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분위기가 좀 그렇다"고 말했다.

어게인 2002? 2007?

민주당에 2002년은 테이프가 닳도록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추억의 명화(名畵)'다. 당내 경선에서 무명에 가깝던 노무현 후보가 대세론으로 무장한 이인제 후보를 누르고 민주당 '대표선수'로 선출됐다. 노 후보는 이어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거친 끝에 본선에서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57만 표 차이로 꺾고 청와대의 주인이 됐다.

이처럼 짜릿한 승리의 원동력은 경선 흥행에 있었다. 2002년에 민주당은 최초로 국민참여경선을 도입했고, 그 결과 경선은 역동성으로 가득 찼다. 노 후보가 97년 대선주자였던 이인제 후보를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역동성에서 비롯됐다.

반면 민주당에 2007년은 다시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다. 2002년과 마찬가지로 국민참여경선이 도입됐지만 '버스 떼기'로 비유된 동원 경선으로 역동성은커녕 진부함만 부각됐다.

선거인단 불법 동원 논란으로 경선 일정이 중단되고 8개 지역 순회경선이 한꺼번에 치러지는 파행을 겪었다. 여러 도덕적 논란에 휩싸였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530만 표 차로 대패했던 데 '맹탕 경선'이 단초가 됐다.

정권 교체를 다짐하는 민주당은 '어게인 2002'를 외치며 2012년 경선에 돌입했다. 비록 초반이긴 하지만 2012년 민주당 경선은 2002년보다 2007년 쪽과 닮은 듯하다.

최근 민주당이 진행한 모바일 투표율은 1ㆍ15 전당대회 80%, 6ㆍ9 전당대회 73.4%, 4ㆍ11 총선 82.9%였다. 하지만 대선 경선에서는 제주 58.6%, 울산 68.6%, 강원 69.82%에 그쳤다.

한마디로 역동성과 흥행성이 떨어진다. 대통령 후보를 뽑는 선거의 열기가 당대표나 국회의원을 선출할 때보다 못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참담한 결과"라는 탄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각 캠프의 득표 경쟁이 과열되면서 투표 의지가 약한 사람들까지 선거인단에 등록하는 바람에 투표율이 낮아졌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경선 자체의 역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모바일 투표를 관장하는 정청래 당 선거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은 "투표율이 60% 이상이면 성공한 것으로 봤다"며 "대선 경선은 선거인단 규모가 당대표 경선 규모보다 커서 투표율이 내려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고해지는 친노 패권주의

첫 경선이 열렸던 지난 25일 민주당 한 관계자는 "초반 기선 제압이 중요하기 때문에 친노가 대거 결집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당초 이날 레이스에서는 손학규 김두관 후보의 1위 다툼이 예상됐으나 문재인 후보가 총 유효투표 2만102표 가운데 59.8%인 1만2,23표를 얻어 압도적 1위에 올랐다.

문 후보는 다소 열세가 점쳐졌던 울산 강원 등지에서도 손 후보와 김 후보를 따돌리고 1위에 올랐다. "결선투표에 가기 전에 문 후보가 끝낼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와 관련 손 후보 측 김영춘 전략기획본부장은 지난 29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애초 경선이 시작되기 전부터 예상됐던 게, 문 후보는 과거 노사모부터 시작해 아주 열성도가 높은 전국적 조직망이 있다"면서 "상대적으로 그분들이 모바일 투표에 익숙하다"고 분석했다.

김 본부장의 발언은 모바일 투표는 친노 진영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라는 주장의 우회적인 표현이다. 이번 경선에서 민주당은 현장 투표, 순회 투표, 모바일 투표의 비중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안방에서 전화로 스크린을 터치하든, 현장에 직접 나가서 투표하든 무조건 1표다.

김두관 후보 측은 지난 27일 오후 경선 복귀 의사를 밝히면서 "이해찬 대표는 불공정 경선과 부실한 선거 관리로 당을 위기로 몰아넣고 국민을 실망시킨 데 대해 사과하라"며 친노의 대표 격인 이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이 대표는 지난 6월 당대표에 선출되기 전부터 '이(해찬)-박(지원)-문(재인) 담합' 비판을 받았다.

오는 16일까지 진행되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안 나오면 1, 2위만을 상대로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이른바 비문(비 문재인) 후보 3명은 1차 투표에서 문 후보의 과반 득표를 저지한 뒤 결선투표에서 역전드라마를 쓰겠다고 별렀다.

하지만 초반 분위기가 6일 광주 전남 경선까지 이어진다면 승부는 일찌감치 결정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어느 때보다 광주 전남 경선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더욱 공고해지는 친노의 패권주의에 반발하는 기류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바일의 왜곡

이해찬 대표는 지난 29일 교섭단체대표 라디오 연설에서 모바일 투표와 관련된 불공정 논란에 대해 "처음부터 형평성 논란이 일어날 이유가 전혀 없었다"며 "(모바일 투표는)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것으로 세계에 유례가 없는 정치 혁신"이라며 모바일 투표를 한껏 치켜세웠다. 그러나 당 안팎의 많은 이들은 이 대표와 친노 진영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모바일 투표의 표심 왜곡 가능성과 여러 부작용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모바일 투표는 직접선거, 비밀선거의 공정성 확보가 쉽지 않은 데다 장년층과 노년층의 표심 반영이 어렵다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모바일이 결코 만능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유세 전에 미리 투표가 이뤄진다는 점도 코미디에 가깝다. 비문 주자들의 불만도 여기서 비롯된다.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 비문 후보 세 사람은 지난 25일 제주 경선 직후 모바일 투표 기권표에 대해 강력히 문제를 제기하며 울산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다.

손 후보 등은 "모바일 투표에서 4번 문재인 후보의 이름까지 다 듣지 않고 1∼3번 중 하나를 택한 뒤 전화를 끊으면 미(未)투표자로 집계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이런 오류 가능성을 사전에 예상하지 못한 것은 엄청난 실책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당에서는 로그파일을 분석한 결과 본인 인증까지 마쳤어도 기권표로 처리된 문제의 표는 제주에서 599명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1표가 됐든 1만 표가 됐든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만으로 모바일 투표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것만은 자명한 사실이다.

민주당 경선 관련 시스템을 운영, 관리하는 업체의 대표가 문 후보 특보의 친동생인 것도 개운치 않다. 이 업체는 지난달 실시된 경선 선거인단 접수 대행업체 선정에 단독으로 응찰해 사업자로 선정됐다.

문 후보의 특보는 "동생 업체는 전문성 때문에 일을 하고 있을 뿐 나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지만 특정 후보 측 사람의 친동생이, 그것도 대선 경선 관련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논란의 소지는 충분하다.

민주당 관계자는 "모바일 투표가 진행되다 보니 실제 선거 때는 투표율이 높은 50, 60대의 표심이 잘 반영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며 "모바일 투표로 인해 표심의 왜곡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많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손·김 '협동작전과 각개전투'


1차 문재인 과반득표 저지 협공
결선 진출권 2위 쟁탈전은 치열

최경호기자

손학규 김두관 후보의 문재인 후보에 대한 협공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범친노 진영으로 분류됐던 김 후보는 지난 28일 원주에서 열린 순회경선 때는 문 후보와 악수조차 하지 않아 냉랭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비문(비 문재인)의 선봉 격인 손 후보는 "이(해찬)-문(재인) 담합의 증거"라며 지난 27일 공개한 문 후보 측의 '모집 선거인단 전화투표 독려팀 운영 지침'이라는 문건이 전화 방식으로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손 후보 측이 내놓은 문건은 문 후보 경선대책총괄본부가 지난 24일 지역위원장 등 71명에게 발송한 이메일에 첨부됐다. 문건은 선거인단을 우군과 비우호군으로 분류한 뒤 '특별관리'를 통해 비우호군의 우군화를 주문하고 있다.

김 후보 측의 공세는 한층 더하다. 김 후보 측은 "사실상 콜센터를 운영해 지지를 유도한 불법선거나 다름없다"며 "2011년 4월 강원지사 보궐선거 당시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의 '강릉 콜센터' 불법선거 운동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고 문 후보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에 대해 문 후보 측 이목희 공동선대본부장은 "(전화투표) 독려팀은 없다. 문 후보를 지지하는 간부나 활동하는 분들이 스스로 전화한다"고 해명했다.

'1차 투표 과반득표 저지'에는 공동전선을 형성한 손 후보와 김 후보이지만 결선투표 진출권(1, 2위)을 놓고는 치열한 대결을 펼치고 있다. 이른바 '따로 또 같이'다.

지난 27일에는 양측의 이 같은 전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김 후보는 이날 오후 경선 복귀를 선언하면서 "복귀를 결정하는 데 손 후보 진영과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손 후보보다 먼저 복귀를 선언한 김 후보로서는 '선점 효과'를 염두에 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김 후보는 지난 30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손학규 후보와 연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경선은 김두관의 힘과 비전으로 완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 후보 측은 6일 광주 전남 경선에서 승리한다면 대역전승을 일궈낼 거라 자신하고 있다. 광주 전남 선거인단은 약 14만 명으로 서울 경기를 제외한 지역 중 최대 규모다.

손 후보 측 김영춘 전략기획본부장은 "상대적으로 선거인단 숫자가 많은 호남과 수도권에서 역전으로 손 후보를 당선시키겠다"고 힘줘 말했다.

'꼴찌' 정세균 인기는 최고?


박준영 사퇴로 유일한 호남 주자
문·손·김 "함께하자" 잇단 러브콜

최경호기자

정세균 민주당 대선후보가 상한가다. 초반 레이스에서 순위는 비록 최하위였지만 인기는 최고다. 박준영 전남지사의 후보 사퇴로 정 후보는 유일한 호남 주자가 됐다.

호남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노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초반에 1위로 나선 문재인 후보로서는 호남에서 연착륙해야 결선투표 없이 1차 투표에서 승부를 끝낼 수 있다.

또 문 후보 입장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호남을 품어야 경선은 물론이고 안철수 원장과의 야권 후보 최종 단일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의 본선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2위를 다투는 손학규 후보와 김두관 후보에게도 정 후보의 손길은 절실하다. 손 후보와 김 후보는 정 후보만 함께 해준다면 문 후보의 과반득표를 저지하고 나아가 결선투표에서 역전에 성공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여러 진영의 구애를 받는 정 후보이지만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4선을 안겨줬던 '무진장임(무주 진안 장수 임실)'을 떠나 당선을 장담하기 어려운 '정치 1번지' 종로에 도전장을 낸 것은 대선까지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게 정 후보 자신에게는 되레 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본다. 경선이 중반전에 접어드는 만큼 후보들 간 연대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