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지난달 29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검(劍) 겨루기 5라운드다. 지난달 3, 4라운드에 이어 한 달 만의 재격돌이다. 1라운드는 2003년 대북송금사건, 2라운드는 2009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 인사청문회였다. 3, 4라운드는 지난 7월을 뜨겁게 달궜던 저축은행 사건과 고려조선 사건이다.

지난 7월 불의의 '일격'을 당했던 검찰은 '설욕'을 벼르고 있다. 단 한 방으로 검찰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었던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조용히 역공을 준비하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는 4ㆍ11 총선 과정에서 친노 성향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 '라디오 21'의 전 대표 양경숙씨가 공천 약속과 함께 서울시내 구청 산하 단체장 등에게 수십억원(약 40억원)의 투자금을 받았다는 제보를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양씨와 서울 강서구청 산하 단체장 이모씨, 세무법인 대표인 또 다른 이모씨, 부산지역 사업가 정모씨 등 4명을 정치자금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지난 28일 구속했다.

검찰은 양씨가 이씨 등에게 돈을 받는 과정에서 박 원내대표를 언급했을 뿐 아니라, 양씨와 박 원내대표가 여러 차례 전화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의 칼끝이 박 원내대표를 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 공천헌금과 관련해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양경숙 라디오21 전 대표가 28일 새벽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 측은 "올해 초 양씨와 이씨 등을 만난 것은 사실이고, 이후 (이씨 등에게) 500만원씩의 후원금이 들어온 것도 맞다"면서도 "그러나 이를 공천과 연결 지으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노골적인 대선 개입"

민주당은 "검찰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이를 갈고 있다. 현기환 전 의원과 현영희 의원의 공천헌금 비리 수사에 대한 물타기이자 민주당 대선 경선에 재 뿌리기이며 박 원내대표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다. 실제 '양경숙 사건'이 터진 이후 새누리당 공천헌금 비리는 조용히 묻혔다.

지난 7월 저축은행 수사가 정국을 강타했을 때 검찰은 박 원내대표를 소환했다. 박 원내대표가 버티기로 일관하자 검찰은 7월30일 체포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튿날 체포동의요구서를 국회로 보냈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는 체포동의요구서가 국회로 넘어온 불과 몇 시간 뒤 검찰에 자진 출석해서 당당하게 조사에 응했다. 솔로몬 저축은행 등에서 8,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던 박 원내대표가 단 일격으로 상황을 역전시켜놓은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10월에 진행되는 국정감사는 야당에 큰 호재인데 박 원내대표 문제가 자칫 악재가 될 수 있다"면서 "한편으로는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적전분열과 자중지란을 유도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비난했다.

"원칙대로 할 뿐"

실체적 진실을 떠나 대검 중수부에서 사건을 맡은 데 대해 의심의 눈초리가 적지 않다. 대선이 석 달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검찰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라는 지적도 많다.

통상 검찰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 총선이나 대선 전에는 자체적으로 범죄 혐의를 인지해서 수사에 착수하는 것은 자제한다. 특히 검찰총장의 '칼'인 중수부가 대선 직전 수사에 나선 전례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이번 '양경숙 사건'은 검찰이 제보를 통해 첩보를 입수한 뒤 수사에 나섰다. 새누리당 공천헌금 수사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의뢰에서 비롯됐다는 점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또 새누리당 공천헌금 사건은 부산지검 공안부에서 맡았다. 선거사건은 공안에 해당된다는 논리였다.

이와 관련, 검찰은 어디에서 수사를 할지에 대해 결정하는 것은 고유권한이라는 입장이다. 또 서울에서 발생한 사건은 서울에서, 부산에서 발생한 사건은 부산에서 맡는 게 당연하다고 검찰은 설명한다.

새누리당 공천헌금 사건은 3억원 정도이지만 '양경숙 사건'의 경우 그 10배가 넘는 만큼 중수부에서 수사할 만하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원칙대로 진행할 뿐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중수부는 지난 30일 "양씨가 검찰 조사에서 자신의 사업에 대한 투자를 받은 것이라고 하면서도 공천과 관련해 돈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혐의를 잡았으면 계좌 추적으로 돈의 흐름을 밝혀야지 엉뚱한 (양씨와 박 원내대표 간의) 문자 흐름으로 밝히고 있다. 이런 해괴한 수사기법이 중수부의 수사기법이냐"면서 "검찰은 박 원내대표 한 명만 겨냥한 몽니 수사, 떼쓰기 수사를 하고 있다"며 중수부 해체를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에 앞서 지난 28일에는 양씨에게 돈을 줬다는 3명은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 공천 과정 때 1차 서류심사에서 모두 탈락했다며 공천헌금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따라서 향후 검찰이 공천헌금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 명쾌한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할 경우 '정치 검찰' '야당 죽이기' '정치 개입' '검찰 무용론' 등 온갖 비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검찰이 헛발질을 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관건은 양씨의 진술이다. 구속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는 양씨가 지금까지와 다른 방향의 진술, 즉 공천헌금이 박 원내대표와 관련이 있다는 취지로 말한다면 검찰이 박 원내대표를 소환할 명분을 갖게 된다.

검찰이 바라는 대로 양씨의 진출이 나온다면 '검찰의 소환 통보→박 원내대표 불응→검찰의 체포영장 청구' 순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결국 '공(체포동의안)'은 7월 저축은행 사건 때처럼 국회로 넘어오게 되고, 대선을 앞둔 야권으로서는 치명상을 면키 어려워진다.

한 검찰 소식통은 "저축은행 사건 때는 박 원내대표가 기습적으로 출석하는 바람에 검찰이 허를 찔렸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며 "한 차례 '학습효과'를 경험한 검찰이 저축은행, 고려조선 등 박 원내대표와 관련해 진행되고 있는 다른 수사도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검찰 분위기를 전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