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 부산 공장 혼류 생산라인에서 직원들이 자동차를 점검하고 있다. 르노삼성차는올들어 지난 10월말까지 부산 공장 생산량이 22만3,606대에 달해 2000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간 생산 20만대를 넘어섰다고 10일 밝혔다.
대기업 직원들이 떨고 있다. 업황 부진이 장기화됨에 따라 재계에 인력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고 있어서다.

감축 바람이 불고 있는 업종은 다양하다. 자동차, 정유, 항공, 정보기술(IT) 등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상황은 심각하다. 정리해고의 찬바람이 몰아쳤던 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당연히 현재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회사의 직원들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구조조정을 진행하지 않고 있는 기업의 직원들도 밤잠을 못 이루긴 마찬가지다. 구조조정 칼바람이 대기업 전반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건설, 상시 구조조정 체제

GS칼텍스 여수공장
가장 먼저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어 닥친 건 건설업계다. 금융위기에 따라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건설업체들은 플랜트 등 수익성이 담보되는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 '돈이 되지 않는 곳'의 고비용 인력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후 건설업계는 상시적인 구조조정 체제를 유지, 장기적 '다이어트'에 돌입한 상태다.

이런 현상은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연합이 발표한 '건설사 인력조정 현황'에 뚜렷하게 드러난다. 자료에 따르면 9개 건설사에서만 모두 2,570명에 달하는 인력이 퇴직했다.

업체별로 보면 벽산건설 250명, 풍림산업 350명, 삼부토건 110명, 남광토건 170명, 우림건설 260명, 성원건설 660명, 삼안 400명, LIG건설 210명, 우방 270명 등이 감축됐다.

특히 최근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삼환기업은 임원 20명 전원에게서 사직서를 받기도 했다. 또 연이은 매각 실패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쌍용건설도 상황이 정리되면 자구책 마련 차원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건설업종의 장기불황에 따라 관련업을 영위하고 있는 KCC도 7월초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수년째 건축자재와 페인트 생산 등 업황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침체된 건설경기가 단기간 내에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는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KCC는 정규 사무직 40여명에 대해 해고를 통보했다. KCC는 '경영상 필요에 의한 퇴직'이라는 명목으로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 신청 절차 없이 개별적으로 해고사실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동안 KCC는 연말ㆍ연초 정기인사 때 희망퇴직을 신청 받는 식으로 인원을 소폭 감축해왔다. 그러나 연중에 인원감축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KCC가 업황 부진을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KCC의 '감량'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KCC는 현재 추가 감원을 위해 사업본부 별로 대상자를 선별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별개로 연말까지 5,000명에 이르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차 업계 직원들 '술렁'

암운은 자동차업계에도 드리웠다. 내수부진 등으로 인력 감축 바람이 불고 있다. 먼저 르노삼성이 지난 7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르노삼성이 희망퇴직을 시행한 건 2000년 회사 출범 이후 처음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내수부진의 돌파구로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르노삼성의 희망퇴직 대상은 전직원 5,500여명 중 개발자나 디자이너 등 연구개발(R&D) 인력을 제외한 4,500여명이다. 이는 전체 직원의 80%를 웃도는 규모다. 르노삼성은 대상자들의 직무나 직급, 근무연수 등과 무관하게 희망퇴직을 받는다. 또 신청자 제한도 없다. 몇 명이 신청하든 다 받아준다는 입장이다. 위로금은 근무연수에 따라 최대 봉급 24개월치가 지급된다.

아직까진 신청자가 몇 명인지 집계되지 않고 있다. 다만 현재 희망퇴직 접수는 1,500여명으로 구성된 사무직군, 그 중에서도 젊은 층에서 많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에서도 많은 직원들이 짐을 싸고 있다. 주요 구조조정 대상은 부장급 이상 직원들이다. 조직을 젊고 타이트하게 한다는 글로벌GM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한국GM은 지난 6월에서 7월 사이 사무직 부장과 임원들, 즉 고위 관리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그 결과 132명이 희망퇴직원을 냈고 이들은 현재 스케줄에 따라 속속 퇴직절차를 밟고 있다. 위로금은 24개월치 봉급이다.

현재로선 추가 감원계획은 없다는 게 한국GM의 입장이다. 그러나 회사 내부는 적지 않게 술렁이고 있다. 언제든 추가 감원조치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쌍용차는 당장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지는 않다. 다만 455명의 무급휴직자 문제가 3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다. 쌍용차는 2009년 노사 합의로 무급휴직을 도입했다. 당시 쌍용차는 1년 이후 2교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회사 사정이 좋아지면 해당 휴직자들을 다시 채용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업황 부진에 따른 판매량 저조 때문이다. 현재 쌍용차는 기존 인원의 하루 8시간 근무로 충분한 상황이다. 업계는 특히 쌍용차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은 2교대를 돌릴 일이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무급휴직자의 복귀는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정유ㆍ항공ㆍIT도 감축 바람

지난 상반기 국제유가 하락에 따라 앉은 자리에서 대규모 손실을 본 GS칼텍스도 지난 6월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대상은 영업본부 직원 800여명 가운데 차장급 이상이었다.

GS칼텍스는 주로 50대 초중반의 팀장급 이하 직원들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직영 주유소에 근무하도록 해주고 60세까지 정년도 보장해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70여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회사를 떠나 주유소에 배치됐다.

GS칼텍스는 석유혼합 판매제와 알뜰주유소 확산 등으로 내수에서 마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영업분야의 고비용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정유업체들은 인력 감축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면 영업 인력의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마찬가지로 상반기 적자를 기록한 대한항공은 지난 6월 근속연수 15년, 만 4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지난해 10월 직원 100명 이상이 명예퇴직 한지 불과 8개월여 만이다. 대한항공의 희망퇴직자는 모두 50여명으로, 대상자에게는 월급 2년치가 지급됐다.

국내 대형 온라인 게임 업체 가운데 하나인 엔씨소프트도 지난 6월 말 명예퇴직을 진행했다. 그 결과, 전체 직원 3,000여명 가운데 10%가 넘는 4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위로금은 상대적으로 박했다. 일반적인 수준의 반 이하인 6~12개월치 수준이었다.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금융권에서도 인력 강제 감축이 가시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주식 거래 감소로 수수료 수입이 급감한 증권회사는 이미 지점 수 축소 등을 통해 소리 없이 인력을 크게 줄여왔다.

이런 가운데 현재 일부 증권사는 '희망퇴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거래부진에 빠진 주식시장이 급반전되지 않는 이상 연말까지 여의도에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태풍이 예상된다.

당연히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대기업 '월급쟁이'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장 구조조정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회사 직원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재계 전반에 불어 닥친 구조조정 열풍이 언제 전방위로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전문가들이 내놓는 분석은 대기업 직원들의 표정을 한층 어둡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둔화와 내수 부진이 계속될 경우 산업계의 인력감축 바람이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국내·외 경기의 동반 침체에 따른 여파로 수출과 내수 기업이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하반기에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을 하는 기업들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대상 중소기업 1355곳 '역대 최다'


송응철기자

구조조정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루고 있는 건 대기업 직원들만이 아니다. 중소기업 직원들도 언제 직장에서 내몰릴지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양새다. 전세계적인 불황에 자금 사정이 갈수록 나빠진 결과다.

상황은 심각하다. 올해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중소기업이 역대 최다 규모를 기록했을 정도다.

지난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중소기업 1,355개(잠정치)를 올해 신용위험 세부평가 대상으로 선정해 금융감독원에 보고했다. 신용위험 세부평가는 대출 등 금융권의 신용을 50억원에서 500억원 끌어다 쓴 중소기업 가운데 위험한 곳을 추려 구조조정 여부를 정하는 제도다.

세부평가 대상에 오른 중소기업은 2010년 1,290개에서 지난해 1,129개로 12.5% 감소했다. 그러나 올해 다시 1,355개로 20.0% 증가했다. 이는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은행들은 다음 달 말까지 해당 기업들에 대한 세부평가를 마치고 이들 중소기업을 A∼D 4등급으로 분류할 계획이다. C등급과 D등급으로 분류될 경우 각각 워크아웃,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B등급은 패스트트랙(신속 금융지원 제도)으로 회생 가능성을 타진한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CㆍD등급을 받는 중소기업이 부쩍 늘어날 전망이다. 은행권은 건설ㆍ부동산, 정보기술(IT), 운송업 등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 구조조정 대상에 다수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조조정 대상이 역대 최다를 기록한 건 유럽발 경제 위기에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자금 사정이 곤란한 중소기업 비중은 지난해 12월 28%에서 올해 7월 30.2%까지 불어났다.

이처럼 중소기업 자금 사정이 나빠지자 금융당국은 추가적인 자금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현재 신용보증기금의 지점장 전결권을 제한하고 보증료를 더 낮추는 등의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신보 지점장 전결권의 경우 중소기업의 보증료율을 마음대로 올리는 것을 금지하되 내릴 때는 지점장이 인정하면 0.3%포인트 낮춰주는 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