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여당측 금품 수수 의혹 덮기 위해” 검찰 수사 태도 놓고 진실게임 양상

검찰이 양경숙 '라디오21'전 대표의 공천헌금 수수 수사 시기를 의도적으로 조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4ㆍ11 총선 공천과 관련해 32억여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라디오21' 대표 양경숙(51)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양씨는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참회의 심정을 담은 글을 올려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검찰 안팎에서는 양씨가 그동안 32억여원을 '라디오21'에 대한 투자금 명목으로 받았다고 주장해 왔으나 수사가 확대되면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양씨의 정체다. 일각에서는 양씨가 거물급 정치브로커가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것은 물론, 학력과 경력 등이 상당 부분 허위인 점을 들어 신분 조작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양씨 수사를 둘러싼 검찰의 모호한 태도에도 여러 소문들이 나돌고 있다. 여기에는 검찰이 의도적으로 양씨 수사 시기를 조절했다는 의혹도 포함돼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올해 초 양씨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는 흔적이 보인다. 또 검찰은 내사를 통해 양씨의 혐의와 관련된 정황 증거도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4월쯤 돌연 수사를 뒤로 미루고 사건 일체에 대한 보안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검찰이 총선을 앞두고 야당에 대한 정략적 수사라는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을 피하기 위해서 라는 게 일반적인 추측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은 것은 아니고, 은밀하게 사실 확인 및 증거 확보에 주력했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공천헌금과 관련해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양경숙 '라디오21'전대표가 지난달 28일 새벽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양씨 검찰 수사 어디까지

양씨는 올해 3월까지 서울 강서시설관리공단 이사장 이양호(56ㆍ구속)씨, H세무법인 대표 이규섭(57ㆍ구속)씨, 부산지역 시행업체 F사 대표 정일수(53ㆍ구속)씨에게서 각각 2억8,000만원, 18억원, 12억원을 여러 차례에 걸쳐 송금 받은 혐의로 지난달 28일 구속됐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는 지난 4일 1차 계좌추적을 마치고 계좌의 실질적인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본격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3일 라디오21 총무국 간부 홍모씨를 불러 밤늦게까지 입출금 내역에 대해 확인했다. 1차 계좌추적에서 홍씨 명의의 계좌로 수억원이 들어간 사실을 포착, 추궁한 것이다. 검찰은 홍씨의 계좌가 양씨에게서 제3자에게 돈이 건너가기 전 중간단계용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입금된 돈의 사용처를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또 PR미디어 전 대표 정모씨 등 2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한화갑 전 의원의 처제로, 양씨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건물의 다른 층에 살고 있으며, 양씨와는 오랜 기간 친분을 쌓은 사이인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특히 정씨는 양씨가 지난 총선에서 선거 홍보용 로고송 사업과 유세용 홍보차량 대여 사업을 할 때 자금도 일부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궁금한 것은 검찰이 양씨 사건을 어떻게 인지했을까 하는 점이다. 새누리당 출신의 현영희 의원 3억원 사건처럼 측근의 제보가 있었다는 정황은 거의 없다.

<주간한국>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정씨가 사건을 의뢰하기 위해 부산지역 모 변호사를 찾아가 논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듯하다. 모 변호사는 부산지역 새누리당 A의원과 절친한 관계여서 정씨가 연루된 양씨 사건을 그에게 귀띔했고, 그 내용을 들은 A의원이 당에 전한 것으로 파악된다. 결국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 논의된 내용이 첩보 형태로 새누리당으로 들어갔고, 검찰로까지 흘러간 셈이다.

"친박 공천헌금 위기 무마용"

검찰은 지난 4월까지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고 한다. 총선을 앞두고 수사를 중단한 것은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을 피하기 위해서 이었겠지만 총선 후에도 계속 미뤄둔 까닭은 무엇일까? 검찰은 이미 그동안 내사를 통해 양씨 사건과 관련된 상당한 내용을 확보한 상태였을 텐데.

야권은 검찰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수사를 의도적으로 쥐고 있다가 새누리당의 공천헌금 파문이 불거지자 꺼내든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민주당은 현영희 의원 3억 수수 사건을 계기로 새누리당의 공천헌금 전반은 물론, 친박계 진영의 총선 비리 의혹을 은밀하게 조사 중이었다. 민주당은 입수한 여러 첩보를 바탕으로 조사를 벌여 상당한 정황을 파악하고 이를 정식으로 문제 삼으려 준비 중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이 양씨 사건을 꺼내든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그 타이밍이 절묘하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민주당이 문제 제기를 하기 적전에 검찰이 양씨 사건을 터뜨린 셈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 총선과 관련해 친박계 안팎에 여러 비리 의혹이 나돌고 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집중 조사해 쟁점화 하려고 준비 중이었다"며 "문제 삼으려는 시점에 양씨 사건이 터졌다. 검찰이 지난 4월 이미 양씨 사건과 관련된 상당한 내용을 확보하고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우리가 문제 제기를 하려는 시점에 이를 꺼냈는지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조사한 친박계 공천헌금 비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치권에 적지 않는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검찰 일부도 그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용은 현영희 의원 사건과 비슷하다. 박근혜 후보의 최측근 인사가 지난 총선을 앞두고 정치에 입문하려는 B씨로부터 두 세 차례에 걸쳐 거액을 수수했다는 것이다. 이 측근은 적어도 두 명 이상의 복수 인사들로부터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백억원대에 이르는 금품을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민주당은 B씨외에 또다른 친박 핵심인물 C씨도 공천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민주당은 대선을 앞두고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을 예정이었으나, 양씨 사건으로 일단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적절한 시점에 터뜨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치권의 궁금증은 양씨의 정체에도 쏠리고 있다. 양씨의 학력과 경력 등에 각종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역시 양씨의 배후에 누가 있느냐가 최대 관심이다.

양씨의 경력과 관련, 확실한 것은 별로 없다. 양씨는 구속되기 전 KBS PD와 TBN한국교통방송 고위직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주변에서는 그가 88서울올림픽을 앞둔 1985년 올림픽 주관방송사로 다양한 직종에서 신입사원을 뽑은 KBS에 성우로 입사해 DJ 등을 거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양씨의 경력도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또 다른 소식통들은 양씨가 방송가 상품 협찬을 담당하면서 처음 방송가에 발을 담갔다고 전한다. 한화갑 전 의원실에서 한때 잔심부름을 하기도 했단다.

한 소식통은 "양씨와 함께 일했다"고 확인하면서도 "한 전 의원실에서 그가 처리한 업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또 "방송가에서도 그가 여러 일에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문을 갖는 이들이 있었다"며 "주변에서 듣기로는 양씨가 이 사람 저 사람 소개로 그때그때 주어지는 다양한 일을 처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양씨는 언노련에서도 활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모 방송사의 고위인사를 만났는데, 이 인사를 통해 양씨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고위 인사가 정치권에 진출할 때 양씨가 도움을 줬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검찰 주변에서는 또 양씨가 2008년 총선 당시 모 주요인사의 밀사로 민주당 핵심 관계자를 만나 공천헌금 5억원을 전달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이 부분까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지는 않지만 필요할 경우 뒤져볼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