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한 조찬간담회에 앞서 대기업 대표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짧은 기간 몸집 불려 경제 좌지우지… '양극화 주범'-'성장 견인차' 엇갈린 평가
삼성, 반도체가 결정적 '효자'… 현대차, 기아 인수하며 급성장 길에

SK그룹 성장엔 정유·통신이 양대축 역할
구-허씨 동업 LG 다시 쪼개져 각개약진

롯데제과 67년 태동 유통으로 자리잡아
현대중 계열사 25개 10대그룹중 최소

국내총생산(GDP) 4분의 3을 넘어서는 매출, 전체 상장사의 70%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으로 우리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10대 그룹. 이른바 '재벌'이라 불리며 서민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하는 양극화의 주범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만 이들이 국내 경제를 사실상 이끌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도 최근 경제민주화 논란속에 가진 '한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관한 강연에서 "경제민주화를 통해 재벌들의 사업다각화와 선단식 경영, 왜곡된 소유구조를 비판하는데 이는 역사성을 무시한 잘못된 지적"이라고 말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이에 <주간한국>은 창간 기념 특집으로 10대 그룹의 역사성을 더듬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핵심 계열사는 어디고 대표이사는 어떤 사람인지, 향후 후계구도는 어떻게 될지 등 속사정을 샅샅이 살펴볼 계획이다.

매출, 시가총액 등 재계 순위를 매기는 여러 기준 중 <주간한국>은 그룹의 위상을 가늠하는데 여전히 가장 중요한 분석틀로 꼽히는 자산규모를 기준으로 10대그룹을 선정했다. 2011년 말 자산규모를 기준으로 살펴본 우리나라 10대그룹 명단에는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현대중공업, GS, 한진, 한화, 두산 등이 이름을 올렸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새로 문을 연 가게에 걸린 액자들에 주로 담긴 이 문구는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작은 규모로 장사를 시작했을지라도 크게 성공하라는 뜻으로 자주 이용된다.

삼성 1938년 첫 태동

부산항에 쌓여 있는 수출용 컨테이너들. 한국 GDP의 75%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10대그룹의 성장동력은 해외수출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10대 그룹의 첫 모습 또한 소박했다. 미약한 규모로 시작했지만 수많은 회사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 부침의 세월을 넘어 지금의 거대한 모습에 갖추게 된 셈이다.

재계 1위 삼성그룹은 1938년에 문을 열었다. 고 이병철 창업주가 대구에서 설립한 삼성상회가 오늘날 삼성그룹의 효시다. 만주, 북경 등지에 건어물을 수출하고 제분업을 병행하며 큰 이익을 내고 있던 삼성상회와 1943년 인수한 조선양조장의 흑자에 고무된 이병철 창업주는 회사를 서울로 옮겼고 1948년 서울 종로 2가에 삼성물산공사를 세우며 본격적인 사업확장에 나섰다. 크고 많고 강하다는 의미의 석 삼(三)자와 밝고 높고 깨끗이 빛난다는 별 성(星)자로 이름을 붙였다.

삼성그룹은 10대그룹 중에서도 도전과 사업다각화에 앞장 선 회사로 꼽힌다. 1953년 제일제당을 설립하며 식품업계에 발을 담갔고 이듬해에는 제일모직으로 섬유사업에 진출했다. 1958년에는 안국화재를 인수, 보험업에 뛰어들기도 했고 1963년에는 동화백화점 인수하며 백화점 사업까지 시작했다. 수많은 도전 중 오늘날의 삼성그룹을 있게 한 것은 1969년 삼성전자의 전신인 삼성전자공업의 설립과 1978년에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시작한 반도체 사업이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이끈 반도체, 휴대폰 사업 등의 세계적인 성공은 삼성그룹이 재계 1위 회사로 도약하는 발판이 됐다.

현대자동차그룹은 10대그룹 중 그 시작이 늦은 편에 속한다. 모회사인 현대자동차는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동생인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에 의해 1967년 설립됐다. 초대 사장으로 취임한 정세영 명예회장은 1987년 회장에 취임, 1999년 퇴진할 때까지 30여 년 동안 현대자동차를 이끌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정세영 명예회장으로부터 현대자동차의 바통을 이어받았는데, 2000년 '왕자의 난'을 계기로 10여 개의 계열사를 이끌고 현대그룹에서 독립, 세계 굴지의 자동차 전문 그룹으로 키워냈다. 현대차그룹이 급격하게 성장한 것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면서부터다. 1998년 열린 국제입찰에서 포드 등을 제치고 기아자동차 인수에 성공한 현대차그룹은 국내 자동차 시장의 70~80%를 차지하고 있다.

SK그룹은 삼성그룹 설립 이듬해인 1939년에 문을 열었다. 당시 조선의 선만주단과 일본의 경도직물이 합작해 만든 선경직물이 SK그룹의 모태다. 선경직물 수원공장에서 견습 기사로 일하던 최종건 SK그룹 창업주는 해방 이후 국가에 귀속된 선경직물을 1956년 인수하며 사업을 일으켰다. 이후 통신ㆍ에너지 회사들을 인수하며 사세를 확장한 선경그룹은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한 사전 작업 차원에서 1997년 그룹명을 SK로 변경한다.

SK그룹은 정부의 사업을 인수하면서 성장한 경우다. SK그룹은 1980년 정부가 민영화 방침을 밝힌 대한석유공사의 주식 50%를 인수하며 정유사업에 뛰어들었다. 또 1994년 민영화를 추진한 한국이동통신을 정부로부터 넘겨받아 정유ㆍ통신사업을 축으로 10대그룹에 SK의 이름을 올리게 됐다. 현재 SK그룹의 총수는 최종건 창업주의 조카인 최태원 회장이 맡고 있다.

사업실패 후 허씨와 동업

LG그룹은 1947년 시작된 락희화학공업으로부터 시작됐다. 본래 구인회 LG그룹 창업주가 시작한 첫 사업은 1931년 진주에서 문을 연 '구인회상점'이었으나 두 번에 걸친 장마로 떠내려가고 말았다. 이후 구인회 창업주는 사돈이자 진주의 만석꾼 거부였던 허만정씨와 동업을 시작, 오늘날 LG그룹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금성사 이름을 합쳐 럭키금성이라는 회사명이 만들어졌고, 그 영문 머리글자를 따 지금의 이름인 LG로 확정됐다.

LG그룹의 오늘을 만든 것은 1958년에 설립된 금성사(현 LG전자)였다. 금성사는 국내 최초의 라디오(1959년), 선풍기(1960년), 전화기(1961년), 흑백TV(1966) 등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며 LG그룹의 기틀을 다졌다. 구본무 회장이 LG그룹을 이끌고 있다.

롯데그룹은 현대차그룹과 같은 1967년에 태동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를 계기로 재일교포였던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한국에 세운 롯데제과가 시초다. 현재 롯데그룹은 한국과 일본에 별도의 회사를 두고 있다. 롯데그룹은 1973년 롯데호텔을 설립하며 호텔업계에 발을 들였고 1978년에는 평화건설을 인수하며 건설업에 진출했다. 오늘날 롯데그룹의 주력인 유통사업은 1979년 설립된 롯데쇼핑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또한 현대차그룹과 마찬가지로 '왕자의 난'을 계기로 현대그룹에서 독립하면서 출범했다. 핵심회사인 현대중공업은 1973년 현대조선중공업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으나, 실제로는 1970년 현대건설 내부조직으로 만들었던 조선사업부가 떨어져 나온 것이다. 1982년 제4대 사장으로 취임했던 정몽준 새누리당 전 대표의 영향력은 계열분리를 거쳐 재계 6위에 오른 지금까지도 그룹 전체에 적용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그룹에서 독립해 나온 2002년 삼호중공업(현 현대삼호중공업)을 편입시켜 세계 최대의 조선ㆍ중공업 전문회사의 입지를 다졌다.

GS그룹의 나이는 이제 7세에 불과하다. 창업 이후 오랫동안 동업자로 일했던 LG그룹에서 에너지ㆍ유통 계열사 위주로 분리돼 2005년 공식 출범한 까닭이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을 필두로 LG그룹에서 분가할 당시 GS그룹 계열사들의 자산을 합하면 18조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잡음이 나오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GS그룹의 핵심회사는 GS칼텍스로 1967년에 국내 최초 민간정유회사로 시작된 호남정유가 모태다.

한진, 화물수송이 밑거름

한진그룹은 1945년에 문을 열었다. 고 조중훈 한진 창업주가 발족한 '해방둥이' 한진상사가 현재 한진의 효시다. 조중훈 창업주는 1956년 주한미군과 화물수송계약을 체결하면서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진그룹은 1969년 정부로부터 대한항공을 인수하며 급성장궤도에 올랐다. 이후 1977년 한진해운을 설립한 조중훈 회장은 항공ㆍ해운운송 전문회사인 한진그룹의 틀을 완성했다. 현 총수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다.

한화그룹의 모태는 1952년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가 세운 한국화약이다. 그룹의 이름도 한국화약의 '약자'다. 김종희 창업주는 1965년 한화석유화학 및 한화종합화학의 전신인 한국화성공업을 세워 석유화학 사업을 시작했고 1968년에는 제일화재해상보험을 인수해 금융업계에 뛰어들기도 했다. 김종희 창업주에 이어 그룹을 맡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둔 회심의 한 수는 2002년의 대한생명보험 인수였다. 올해 한화생명보험으로 이름을 바꾼 대한생명보험은 그룹의 주요한 수익창출원으로 기능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으로 꼽힌다. 창업주인 고 박승직씨가 1896년 서울 종로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박승직상점'을 모태로 하는 두산은 1995년 한국기네스협회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인정받았다. 1945년 폐쇄됐던 박승직상점은 이듬해 두산상회라는 상호로 운수업을 시작했다. 이때 처음으로 사용한 '두산' 명칭은 박승직씨의 장남인 고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이름 첫 자인 말 두(斗)자와 뫼 산(山)자를 붙여 만들었다.

두산, 중공업쪽 변신 성공

소비재기업이었던 두산그룹은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2001년과 2005년 각각 인수하며 중공업기업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현재는 그룹의 환골탈태를 이끈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대부분 창업 2세들로, 아버지가 일으킨 회사의 기틀을 단단히 다지고 있는 10대 그룹의 총수들은 지닌바 지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강한 지도력으로 회사를 장악하고 있다. 정몽준 새누리당 전 대표의 경우, 겉으로는 2002년 이후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상태지만 지금까지도 사실상의 총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강고한 총수들의 그룹 지배력이 후계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느냐다. 후계 후보자들이 아직 어리다거나 친척 간의 공동경영체제를 취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10대 그룹 중 상당수의 후계구도가 불명확한 상태인 것이다.

삼성그룹,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한화그룹은 어느 정도 후계구도가 안정화된 것으로 보인다. 유력한 후계자가 수면위로 떠오른 상태인 데다 그들의 경영 능력도 일정 부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분을 통한 경영권 승계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삼성그룹은 10대 그룹 중에서도 가장 탄탄한 후계구도를 완성한 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삼성그룹 순환출자구조의 정점에 있는 삼성에버랜드의 주식을 25.1% 보유, 사실상 경영권을 넘겨받은 상태다. 그에 반해 현대자동차그룹과 LG그룹, 한화그룹의 후계자들은 아직 그룹 보유 지분이 낮은 편이라 완전한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는 큰 고비가 남은 상황이다.

대표적인 집단경영체제 회사로 꼽히는 GS그룹과 두산그룹 또한 후계구도가 애매한 상황이다. 두 그룹 모두 형제경영에서 사촌경영으로 넘어서고 있는 데다 지주회사인 (주)GS와 (주)두산에 대한 보유 지분이 얽혀 있는 까닭이다. GS그룹의 경우 허창수 회장의 아들인 허윤홍 GS건설 상무보의 나이가 어린 데다 사촌인 허세홍 GS칼텍스 전무까지 있는 터라 후계구도가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두산그룹 또한 박정원 (주)두산 회장이 차기 총수 후보 1순위에 올라 있지만 차례를 대기 중인 사촌들이 많아 그룹의 미래를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SK그룹, 롯데그룹, 현대중공업그룹의 후계자들은 아직 나이가 너무 어려 그룹을 떠맡기에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SK그룹에서는 최신원 SKC 회장의 아들인 최성환 SKC 부장(32세)이 유일하게 그룹 내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정몽준 전 대표의 아들인 정기선씨(30세)는 지난해부터 보스턴컨설팅에서 근무 중이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아들인 신유열씨(26세)는 현재 일본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고 전해진다.

10대 그룹은 평균적으로 59.6개사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중 상장사는 9.3개사, 비상장사는 50.3개사다. 10대 그룹 중 계열사가 가장 많은 SK그룹으로 총 96개사(상장사 18개사, 비상장사 78개사)나 된다. 반면 가장 적은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현대중공업이다. 현대중공업은 총 25개사의 계열사(상장사 3개사, 비상장사 22개사)를 갖고 있다.

10대 그룹의 대표 계열사는 해당 그룹의 성격 자체를 규정하기도 한다. 소비재기업이었던 두산그룹이 중공업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했던 것도 대표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의 인수 덕분이었다. 대표 계열사가 그룹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매출로도 확인된다.

<주간한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그룹 대표 계열사들은 약 358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10대 그룹 전체의 매출이 947조원 내외임을 감안한다면 37.8%에 달하는 대표 계열사들의 비중과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삼성전자 매출 121조원

삼성그룹의 대표 계열사는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1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그룹 전체 매출인 271조원의 44.6%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권오현 부회장이 이끌고 있다. 권오현 부회장은 서울대 전기공학과-카이스트 전기공학 석사-스탠퍼드대 전기공학 박사 과정을 밟은 전문가다. 삼성전자 내에서 꾸준히 반도체 외길만을 걸어왔던 권오현 부회장은 올해 초 삼성전자의 대표이사로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모회사인 현대자동차가 핵심 계열사도 겸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011년 전체 매출(156조원)의 27.6%에 해당하는 43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대표이사는 김충호 현대자동차 사장. 중앙대 행정학과 출신의 김충호 사장은 현대자동차 판매사업부장(2007년), 국내영업본부장(2010년), 국내판매 및 마케팅 사장(2011년)을 거친 영업통이다.

SK그룹에서는 지난해 출범한 SK에너지가 대표 계열사를 맡고 있다. SK에너지는 2011년 50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SK그룹 전체 매출(144조원) 34.7%에 달한다. SK에너지는 연세대 화학공학과-서울대 화학공학 석사과정을 이수한 박봉균 SK에너지 사장이 이끌고 있다. 박봉균 사장은 SK에너지를 포함, 그룹의 종합화학 계열사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LG그룹의 대표 계열사인 LG전자는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맡고 있다. 시카고대에서 MBA 과정을 이수한 구본준 부회장은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서 처음 이사로 일한 바 있다. 이후 LG화학 전무(1996년), LG반도체 대표이사 사장(1998년), 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2007년) 등 그룹 내의 다양한 계열사를 전전하다 지난해부터 대표 계열사인 LG전자를 맡게 됐다. LG전자는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112조원)의 25.2%에 달하는 28조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 참패하며 체면을 구겼다.

롯데그룹의 대표계열사인 롯데쇼핑은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55조원)의 27.3%에 달하는 15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대표이사는 이인원 롯데쇼핑 부회장이 맡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출신의 이인원 부회장은 롯데백화점에서 일하다 1987년 롯데쇼핑으로 넘어와 10년 만인 1997년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올해로 15년째 롯데쇼핑을 이끌고 있는 장수 대표이사인 셈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대표 계열사는 모기업이기도 한 현대중공업이다.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이 이끌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25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전체 그룹 매출(62조원)의 40.3%에 육박하는 수치다. 이재성 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한국과학원 산업공학 석사-펜실베이니아대 경영학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2009년부터 현대중공업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GS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GS칼텍스는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사촌인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맡고 있다. 허동수 맛揚?그룹 총수의 친척이기 전에 '미스터 오일'이라 불릴 만큼 국제 정유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연세대 화학공학과-위스콘신대 화학공학 석ㆍ박사 출신의 허동수 회장은 1973년 호남정유에 입사한 이래 GS칼텍스에서만 40년 가까이 일해왔다. GS칼텍스의 2011년 매출은 45조원으로 GS그룹 매출(67조원)의 67.2%에 달한다. 그룹 전체의 3분의 2가 넘는 매출을 단일 계열사가 올리고 있는 셈이다.

한진그룹의 대표 계열사인 대한항공은 지난해 12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한진그룹 전체 매출(24조원)의 절반 수준이다. 대표이사는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이 맡고 있다. 서울대 교육학과 출신의 지창훈 사장은 1977년 입사 이후 호주, 미국, 중국 등 해외 지역을 30여 년간 거친 여객 영업통이다.

한화그룹의 핵심 계열사는 한화생명보험이다. 올해 대한생명보험에서 개명한 한화생명보험은 지난해 12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화그룹 전체 매출(35조원)의 34.3% 수준이다. 한화생명보험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신은철 한화생명보험 부회장이다. 삼성생명보험 보험영업총괄담당 사장(1999년)을 역임한 신은철 부회장은 2005년부터 한화생명보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두산그룹의 대표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인 21조원의 33.3%를 차지하는 7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두산중공업은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이 이끌고 있다. 박지원 부회장은 2001년 두산중공업 기획조정실장(부사장)을 맡은 이래 줄곧 두산중공업에서만 업무를 보고 있다.

삼성 제외하면 모두 순위 이동
대우-동아그룹은 역사 속으로


● 10대그룹 세월 따라 부침

김현준기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강산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 것들도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면 조금씩 그 모습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재계 순위는 더욱 급격하게 변한다. <주간한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자산규모를 기준으로 선정한 20대 그룹 중 지난 10년간 순위 밖으로 밀려 나간 기업은 총 5개사였고 1위인 삼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룹들이 자리이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인 2002년의 재계 순위도 IMF위기와 현대그룹의 분할이라는 급격한 변화의 산물이었다. 재계 1위를 고수하고 있던 현대그룹이 2000년 '왕자의 난'을 겪으며 현대그룹,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으로 분리됐고, 재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던 대우그룹도 IMF 위기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2001년부터 자취를 감췄다. 2000년 14위를 기록했던 동아그룹도 주력사인 동아건설의 부도 처리와 함께 사라졌다. 다시 말해 2002년 20대그룹에 이름을 올린 회사들은 IMF 경제위기를 통해 걸러진 역전의 용사라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20대그룹 중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삼성그룹뿐이다. 현대그룹의 분리 이후 재계의 정점에 자리잡게 된 삼성그룹은 이후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한때 재계 수위를 차지했었던 현대그룹은 분리 이후 사세가 기울어 18위로 밀려났다. 대신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이 10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체면을 차렸다. 2002년 당시 재계 2위였던 LG그룹 또한 2004년과 2005년 LG전선그룹(현 LS그룹), GS그룹을 각각 독립시키며 4위로 주저앉았다. LG그룹에서 분리된 LS그룹과 GS그룹은 현재 재계서열 13위, 7위에 올라 있다.

지난 10년간 눈에 띄는 변화는 금호그룹(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 굵직한 인수합병을 성공시키며 재계의 복병으로 불리던 금호그룹은 주력 獰汰?부진에 이어 총수일가의 경영권 다툼으로 재계서열 14위로 주저앉았다.

그밖에 하나로통신(현 SK브로드밴드)은 SK그룹에 인수되며 자취를 감췄고 효성그룹, 코오롱그룹, 동국제강그룹, 한솔그룹 등도 2012년 현재 재계서열 20위권 밖으로 밀려난 상태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