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대권 도전을 선언함과 동시에 야권 단일화 여부가 정치권의 뜨거운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안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단일화에 앞서 누가 협상의 밀사인지 파악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야권의 모 인사가 밀사 역할을 하고 있다거나 안 후보와 절친한 특정인사가 민주통합당과 안 후보 양쪽을 오가며 뜻을 전달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와 관련, 안 후보가 대권 출사표를 밝히기 직전부터 부각되기 시작한 인물이 있다. 바로 안희정 충남지사다. 안 후보 출마 선언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안 지사가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의 역할론은 이제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안 지사의 움직임이 대권에서 중요한 변수로 꼽히는 충청권 표심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역할론에 점점 무게가 실리는 느낌이다. 특히 정통 친노 인사로 꼽히는 안 지사는 안 후보와 문 후보 양쪽 모두와 친분이 있어 범야권 후보 단일화를 모색하는 데 메신저로 손색이 없다.

안희정 대권 블루칩 급부상

안 지사와 안 후보의 관계는 이미 공식적으로 인정된 바 있다. 안 지사는 지난 12일 유럽 순방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안 원장과는 이미 아는 사이다. 작년에도 만난 적이 있다"라며 친분이 있음을 밝혔다.

더욱 주목을 끄는 대목은 안 지사가 최근 안 후보와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는 점이다. 양측은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안 지사 주변에서 들리는 말을 들어보면 두 사람의 접촉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안 지사 측은 "만나기는 했지만 정치적인 의미는 없었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뤄볼 때 이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안 지사가 대선을 앞두고 안 후보-문 후보 단일화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정치권 일부에서는 "안 지사가 안 후보를 만나 이미 단일화 문제에 대해 논의한 것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안 지사 주변에서는 안 후보와의 접촉에 대해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안 지사의 한 측근은 "안 후보가 대선 출마 선언을 하기 전에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이었다"고 전제, "정준길 전 새누리당 공보위원의 불출마 협박 의혹 이후, 목동 30대 여자 문제 등이 시중에 거론됐다. 여론에 따라서는 안 후보가 불출마 선언도 고려하고 있다는 말도 나와, 접촉한 것은 단지 안 후보의 정확한 의중을 알아보려 했던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권의 한 인사는 "안 후보가 안 지사와 정치 문제를 협의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안 후보가 한 말을 꼽고 있다.

이 인사는 "안 후보는 꼭 대통령이 되려는 게 아니라 국민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라고 말한 적 있다"며 "이는 상황에 따라 후보 단일화에 적극 나설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문 후보 진영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측에서는 안 후보의 힘을 흡수하면 대권을 거머쥘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안 지사의 단일화 역할론은 더 부각될 조짐이다.

문 후보 측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높아지는 데 한껏 고무된 상황이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안 후보가 단일화 과정에서 양보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역할론에 대한 부정 입장

안 지사는 자신의 역할론이 정치권에서 부각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야권의 한 소식통은 "안 지사와 안 후보, 문 후보의 성격과 정치적 상황으로 미뤄볼 때 안 지사가 전면에 나서 후보 단일화 논의를 이끌지는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소식통은 "안 지사 측근을 통해 들어보면 안 지사는 그 동안 야권의 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고 도정에만 신경 썼다. 이제와 새삼 혼란스러운 정치권에 관여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안 후보와 문 후보가 단일화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 여러 사람이 들어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안 지사가 메신저 역할을 담당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안 후보와의 만남에 대해 "사실 특별한 내용도 없고, 자꾸 그 얘기를 하면 도지사가 너무 그쪽(대선)에 끼어들게 된다"며 "대선 국면에서 이 문제로 초점이 되고 싶지도 않다"고 밝혔다.

이 같은 안 지사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관련 소문이 계속 생산되고 있다. 여권 소식통에 따르면 안 지사는 서울에 자주 올라와 정치인들과 만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이 만날 때도 안 지사가 서울에 올라와 안 후보를 만났다고 한다. 두 사람의 만남은 안 지사가 먼저 원해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안 지사가 왜 안 후보를 만나고 싶어 했는지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한편 안 후보가 출마 선언 직전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난 것을 두고도 여러 관측이 나돌고 있다. 지난 5월쯤 정치권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돌았다. 안 후보가 매달 한 번씩 경기 모처에서 박 시장 측과 만나 향후 계획을 논의했다는 것. 그 논의에서 안 후보는 10월쯤 대권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 막바지에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꾀한다는 시나리오도 아이디어로 나왔다고 한다.

안 후보의 멘토로 알려진 법륜스님이 이 계획에 동참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안 후보가 출마를 선언하기에 앞서, 더욱이 박 시장을 만나기도 전에 법륜스님을 먼저 만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 후보의 오락가락 행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기 시작하자 당초 10월이었던 대권 출마 선언을 9월로 앞당긴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안 후보와 관련된 일련의 시나리오가 사실이라면 안 후보는 11월 쯤에 단일화 선언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또다른 일각에서는 안 후보와 문 후보의 단일화 논의는 아직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단일화에 대한 양측의 논의는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11월쯤 두 후보 중 지지율이 낮은 후보가 지지율이 높은 후보쪽으로 단일화하는 방향으로 말을 맞춰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