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거취는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후보 매수죄로 재판을 받던 곽 교육감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될 경우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는 제18대 대통령선거와 같은 날인 12월 19일에 치러지기 때문이다.

곽 교육감의 낙마를 전제로 여권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대선과 동시에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만큼, 교육감 후보는 사실상 대선주자의 러닝메이트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능력 있고 참신한 인사가 서울시교육감 후보로 나선다면, 상대적으로 수도권에서 열세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도움이 됐으면 됐지 손해는 없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도 지난 15, 16대 때와 마찬가지로 50만 표 안팎에서 승패가 갈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야권에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후보 매수죄로 도중하차한 것도 불명예스러울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내세울 만한 후보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야권은 내부적으로 곽 교육감의 낙마를 대비해 후보 물색 작업을 벌여왔다. 여권과 마찬가지로 대선주자의 러닝메이트로 적합한 후보를 찾는 데 주력했다.

이주호
그런 가운데 지난달 27일 곽 교육감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고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이제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는 가정이 아닌 현실이 된 것이다.

한 정치권 소식통은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는 더 이상 여권에 호재가 아니다"고 전제한 뒤 "야권이 제대로 된 후보만 낸다면 대선에서 오히려 플러스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겠냐"고 전망했다.

野, ", 도와줘요"

민주통합당에서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구원 등판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조 교수는 진보 성향의 학자로 야권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조 교수만 등판해준다면 보궐선거 승리는 물론이고 대선에도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조 교수에게 '도와달라'고 요청은 했지만 수락 여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대영
민주당 입장에서 조 교수의 출마는 단순히 서울시교육감직 유지 차원이 아니다. 조 교수가 등판한다면 대선주자의 러닝메이트 성격을 띠는 만큼, 정권 교체 선봉에 투 톱을 세울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셈법이다.

조 교수는 그러나 아직까지는 출마할 뜻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각종 선거를 앞두고 야권의 끈질긴 출마 권유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조 교수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번 대선에서도 멘토 역할을 희망하고 있다.

지난달 조 교수는 "정권 교체를 위해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 신뢰받을 수 있도록 혁신해야 하고, 민주당에 묶이지 않는 안철수 지지세력의 마음도 얻어야 한다"면서 "두 가지를 위해 내가 할 역할을 하겠다"며 민주당 입당 제안을 거절했었다.

한 순간 처지가 뒤바뀐 여권은 대항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자천타천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은 수십 명이지만, 야권의 '급'에 걸맞은 상대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투입이 거론되고 있으나 정작 본인은 고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현직 장관이 옷을 벗고 교육감 선거에 나선다는 것도 모양새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신영복
조 교수와 이 장관 모두 끝내 고사할 경우 여야는 대선후보가 직접 나서 후보를 영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여권에서는 서울시교육감 권한대행 등이, 야권에서는 성공회대 석좌교수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文ㆍ安의 온도차

조 교수는 "국민들께 문(文) 안(安) 드리자"고 제안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가 정권 교체의 전제조건이라는 의미다. '문안 드림'은 조 교수의 현재 '중립 스탠스'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조 교수는 최근 일부 언론이 안철수 후보의 논문 중탕 및 무임승차 의혹을 제기하자 "안철수 논문 표절 의혹 제기는 정말 한심하다"고 안 후보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런가 하면 다운계약서(허위 가격으로 작성한 계약서) 논란 때는 안 후보의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조 교수의 출마를 더 바라는 쪽은 아무래도 문 후보 측이다. 문 후보 측은 조 교수가 출마한다면 일찌감치 민주당 기치 아래'문-조 콤비' 이미지를 굳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 비서실장인 김태년 의원이 지난달 1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조국 교수에게 대선후보 선대위 참여를 요청하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됐다. 김의원은 "국민이 아파한다. 지금 이때가 교수님의 높은 신망과 능력을 국민을 위해 쓰실 때가 아닌가 사료된다"며 "자세한 내용은 이(해찬) 대표와 만나서 나누면 좋겠다"고 적었다. 연합뉴스
그럴 경우 문 후보 측은 시너지효과는 예상외로 클 것이고, 안 후보와 야권 후보 단일화 경쟁에서도 한 발 앞설 것으로 확신하는 눈치다. 조 교수의 거듭된 고사에도 민주당과 문 후보 측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안 후보 측은 문 후보 측과는 약간의 온도차가 있다. 초중고생의 교육을 책임지는 서울시교육감 자리를 굳이 대선과 연계시키려는 발상에 다소 거부감이 있다.

안 후보 측은 아직까지 민주당에 입당한 것도 아닐뿐더러 경우에 따라 단일화 없이 각자 완주할 경우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현재로서는 문 후보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는 게 절체절명의 과제다.

안철수 캠프 측 한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서울시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교육감이라는 자리는 초중고생의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이라며 "그런 자리인 만큼 대학교수나 저명인사보다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교사 출신이 후보로 적합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