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웅진그룹이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자칫 그룹이 와해될 수 있는 위기에 빠진 것이다. 화근은 무리한 사업 확장과 인수ㆍ합병(M&A)이었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는 도 결국 '승자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웅진그룹 이전에도 많은 기업들이 무리하게 다른 기업을 삼켰다가 토해낸 기억이 생생하다. 어떤 기업이 어떤 이유로 승자의 저주에 발목이 잡혔을까. <주간한국>이 그 안타까운 사례들을 짚어봤다.

극동건설 매입 후유증

웅진그룹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그룹의 생사가 법원의 판단에 놓인 것이다. 재계순위 28위로 '잘 나가던' 웅진이 한 순간에 주저앉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승자의 저주' 때문이다. '승자의 저주'란 기업 인수ㆍ합병(M&A) 과정에서 다른 기업과의 인수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과도한 비용으로 인수 후 후유증을 겪는 것을 말한다.

시간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웅진은 극동건설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극동건설의 업계 예상가는 3,000억원 수준. 그러나 웅진은 두 배 이상 높은 6,600억 원을 주고 극동건설을 사들였다. 사업구조를 다각화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서울 중구 충무로에 위치한 웅진그룹 본사 전경. 주간한국 자료사진
당시 시장에서는 빈 껍데기를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샀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리고 이는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인수 이후 웅진은 정상화를 위해 4,400억원을 투입했지만 정상화는 역부족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설경기가 침체되면서 극동건설의 손실은 깊어졌고, 결국 지금에 이르게 됐다.

이랜드도 홈에버 포기

국내 M&A 시장에서 '승자의 저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도 많은 기업들의 승자의 저주로 고통을 받았다. 대우건설을 인수한 대가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호는 2006년 대우건설을 6조4,000억원에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금호는 부족한 자금 3조원 가량을 산업은행 등 18개 금융기관에서 빌렸다.

이 과정에서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풋백옵션'이 발목을 잡으면서 대우건설을 다시 내뱉는 동시에 고난의 길로 접어들었다. 무리한 조건으로 외부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게 화근이 된 셈이다. 그 후유증은 대단했다. 금호는 아직까지도 채권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진그룹도 '승자의 저주'로 말 못할 고초를 겪었다. 유진은 과거 M&A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2004년 고려시멘트를 시작으로 2007년 로젠택배와 서울증권, 한국통운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5년 사이 자산은 10배 가까이 불어났다.

그러나 2008년 하이마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인수대금 1조9,500억원 중 80% 정도를 외부에서 충당하면서 94%이던 부채비율이 195%까지 치솟은 것이다. 막대한 부채를 짊어진 유진은 이후 유동성 악화로 주력사업이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이랜드그룹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이랜드는 2006년 1조4,800억원을 들여 홈에버를 인수했다. 이랜드는 인수에 들인 돈은 3,000억원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재무적 투자자와 금융회사 등이 보탰다.

그러나 이랜드는 채 2년이 되지 않아 홈에버를 포기했다. 점점 불어나는 부채와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해서다. 이랜드는 결국 홈에버를 삼성테스코에 2조3,000억원에 팔았다. 삼성테스코가 1조원의 홈에버 지분 100%와 1조3,000억원의 부채를 모두 떠안는 조건이었다. 이를 통해 이랜드는 간신히 원금을 건졌지만, 이미지 실추 등을 고려하면 밑지는 장사라는 평가가 많다.

한화그룹은 가까스로 '승자의 저주'를 피해갔지만 가슴을 쓸어 내리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한화는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도전해 포스코, GS그룹 등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을 제치고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한화는 대한생명, 갤러리아백화점, 한화리조트 등 전 계열사의 자금을 총동원해 인수 대금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화는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 자칫 무리한 인수에 나섰다가 그룹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일로 한화는 3,000억원의 계약금을 날렸다. 그러나 인수를 밀어붙였다면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란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기업들에게 '승자의 저주'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많은 대기업들이 M&A를 기업확장의 방식으로 애용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실제, 삼성은 지난 7월 반도체 설계사인 CSR의 모바일 부문을 인수했고, 동부그룹은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 MOU를 체결했다. 또 한화그룹(큐셀)과 GS에너지(하우톤인터네셔널), 대한항공(한국항공우주) 등은 인수에 나서거나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슬림화를 통한 유동성 확보 등 나름의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승자의 저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당장 동부그룹이나 한진그룹의 인수와 관련해 '승자의 저주'에 대한 적잖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전문가들은 '주주권 강화'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승자의 저주'는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을 외면한 M&A에서 발생하는 게 대부분이다. 이런 가운데 주주들의 발언권을 강화해 경영진의 전횡을 제어하자는 게 골자다.

이와 관련, 한 경제 전문가는 "경영진이 무리한 M&A로 기업을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것은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 뿐"이라며 "주주권을 강화해 '승자의 저주' 주된 원인인 주인-대리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