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 9일 시중에서 유통된 섬유유연제를 조사해 보니 한국피앤지의 베트남산 '다우니 베리베리와 바닐라크림향' 제품에서 글루타알레히드가 나왔다. 사진은 지난 3월 '다우니' 출시 행사. 주간한국 자료사진
한국P&G가 발칵 뒤집혔다.

한국P&G가 내놓은 섬유유연제 '다우니'에서 유독 성분이 검출되고, 소비자들로부터 환불이나 자발적 리콜 요구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성분은 글루타알데히드. 두통과 어지러움을 유발하고 심할 경우 피부염, 천식 등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이다. '다우니'는 피부에 직접 닿는 의류에 사용하는 제품이어서 소비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당장 환불과 리콜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출된 성분이 미량으로 인체에 무해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수경 한국P&G 사장은 지난 7월 취임사에서 "한국 소비자에게 최상의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우니' 건으로 이 사장의 약속엔 차질이 생기게 됐다.

오래 노출되면 피부염·천식

한국P&G는 지난 3월 섬유유연제 '다우니'를 국내에 론칭했다. 다우니는 전 세계 섬유유연제 시장에서 1위를 기록한 제품으로 당초 병행수입 등을 통해 대형마트 일부와 코스트코 등에서만 판매돼 왔다. 다우니는 오래가는 향 등을 강점으로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고, 국내 출시 직후부터 단숨에 섬유유연제 매출 비중 2위로 뛰어 오르는 등 판매 호조를 보였다.

그런 다우니에서 유독성분이 검출됐다. 소비자시민모임(소시모)은 지난 9일 시중에 유통 중인 섬유유연제 10개 제품에 대해 방부제 성분 등을 조사한 결과 한국피앤지(P&G)가 수입ㆍ판매하는 베트남산 다우니 '베리베리'와 '바닐라크림 향'에서 유독성분인 글루타알데히드가 98㎎/㎏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소독용과 방부제로 사용되는 글루타알데히드는 독성이 강해서 모든 점막을 자극하고 두통, 졸림, 어지러움 등을 유발하는 성분이다. 오랫동안 노출될 경우 접촉성 피부염, 천식 등에 걸릴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글루타알데히드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유독물로 분류돼 있고 환경부도 이 성분을'과민성 물질 46종'으로 관리하고 있다. 농식품부 역시 지난해 구제역 발생 시 글루타알데히드가 발암물질 논란을 일으키자 생체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런 유독성분이 버젓이 섬유유연제에 사용될 수 있던 것은 관련 기준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 섬유유연제의 유해물질 규제 기준을 만들 때 이 물질을 사용한 제품이 없었기 때문에 관련 기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식경제부 산하 기술표준원은 유기성 유해물질 관리대상 목록에선 글루타알데히드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업계에선 한국P&G가 글루타알데히드가 포함되지 않은 미국산이 아닌 베트남산을 들여오는 것을 두고 규제 기준 상의 허점을 노린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내놓고 있다.

한국P&G "수치 낮아 안전"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소비자들 사이에선 환불이나 자발적 리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쇄도하고 있다. '자연유래성분 함유', '민감 피부에도 안심' 등의 문구를 앞세워 홍보를 해 온 터라 더욱 그렇다. 대형마트는 해당 제품의 판매를 일시 중단했다. 일각에선 불매운동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P&G는 인체에 무해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P&G 관계자는 "한국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 글루타알데히드는 25%이상의 농도를 사용하는 제품인 경우에 유독물로 분류된다"며 "이번 다우니에서 검출된 수치는 0.0098%로 안전하다"고 말했다. 한국P&G측은 신문 광고를 통해 '다우니는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우려를 씻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피부에 직접 닿는 의류 등에 잔류할 가능성이 있어 가능하면 사용을 자제하는 게 좋다"며 "특히 성인에 비해 민감한 어린아이들에겐 자극이 강하게 올 수 있으므로 유의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한국P&G는 여전히 환불 교환 불가라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자발적 리콜에 대한 계획도 없다. 대신 다우니 제품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제공을 통해 소비자들의 걱정과 우려를 줄이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이런 대응에 소비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돼 소비자들의 안전은 뒷전"이라는 거친 언사도 서슴지 않고 있다.

다우니 '인산염' 논란도

한국P&G의 다우니가 유해성 물질 논란에 휩싸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7월에도 인산염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소비자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과거 세제 등에 사용돼 온 인산염은 피부질환이나 아토피 등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이다.

따라서 국내 세제 업계는 1988년부터 이미 인산염의 대체 원료를 사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환경위원회도 오는 2013년부터 세제 내 인산염 사용을 전면 금지할 예정이다.

당시 한국P&G의 대응은 이번과 다르지 않았다. 인산염이 기준치보다 적게 함유돼 있어 문제없다는 것이었다. 실제 다우니에 첨가된 인산염은 0.005%로 국내법 규제 기준인 2%미만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피부에 직접 닿는 의류용 세제인 만큼 불안은 여전하다.

이번 파문으로 새로 취임한 이 사장의 약속은 무색하게 됐다. '소비자에게 최상의 가치'는 결국 믿고 쓸 수 있는 안전한 제품이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