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명령처럼 보인다. "성사만 되면 무조건 승리한다"고 호언장담하는 이들도 있다. "누가 나가든 이기는 것 아니냐"고 한술 더 뜨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래서 야권 지지자 대부분은 낙관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는 12월19일에 치러지는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59) 민주통합당 후보와 (50) 무소속 후보간의 단일화 성사와 본선 승리를.

하지만 속내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문 후보나 안 후보 모두 승리를 자신하기에 단일화가 생각만큼 쉽지 않을 거라는 주장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는다.

일각에서는 "단일화 없이 양측 모두 완주할 것"이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렵사리 단일화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후보등록일(11월25일)은 넘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안 후보 측은 내달 10일을 전후해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대선 공약집을 발표할 것으로 안다. 공약집을 내고 2주 만에 레이스를 접는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안철수
심상치 않은 분위기

지난 10일 문 후보와 안 후보는 단일화를 둘러싸고 제법 무게 실린 펀치를 주고받았다. 문 후보는 전북 당원결의대회에서 "단일화만 되면 이길 수 있다는 낙관은 금물"이라며 "민주당으로 단일화만이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고 무소속인 안 후보를 겨냥했다.

여기에 맞서 안 후보는 "여당에서 대통령이 되면 밀어붙이기로 세월이 지나갈 것 같고, 야당 후보가 되면 여소야대로 5년 임기 내내 끌려 다니고 시끄러울 것 같다"고 응수,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에 앞서 지난 9일에도 양측은 거침없는 공방전을 펼쳤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정당대표연설을 통해 "무소속 대통령이 300명의 국회의원을 일일이 만나고 설득해서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은 성립될 수 없는 주장"이라고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論)을 폈다.

그러자 안 후보 측은 "국민들은 여야의 기존 정치에 큰 불만을 갖고 근본적인 개혁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정당정치 이론에만 매몰될 수 없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와 관련, 캠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요즘 분위기를 보면 단일화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는 것 같다"며 "특히 단일화 승부의 결정적 역할을 할 호남에서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앞서고 있다는 점도 양측의 각자 완주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광주MBC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 7일 광주 전남 유권자 8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안 후보가 55.3%를 얻어 31.0%에 그친 문 후보를 24.3%포인트나 따돌렸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문 후보는 안 후보가 정당이라는 조직이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거라고 주장하고, 안 후보는 문 후보가 친노 프레임 때문에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고 맞선다"며 "양측 모두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어 단일화까지는 큰 진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의는 깨졌다?

일각에서는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는 이미 어느 정도 합의된 사항이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른바 ' 대통령- 실세총리'가 합의 사항의 핵심이라고 한다.

실제로 여의도를 중심으로 한 정가에서는 대선 승리를 전제로 안 후보가 대통령으로서 통일 외교 국방 등을 맡고, 문 후보가 국무총리로 내치를 전담한다는 시나리오가 퍼졌다.

하지만 안 후보 측 박선숙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은 지난 9일 "대통령과 총리가 부처를 나눠 역할을 분담하는 것은 우리 기존 법에 보장된 권한의 범위가 아닌 것 같다"고 이 같은 시나리오를 부인했다.

그는 이어 "안 후보는 <의 생각>에서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총리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을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예상과 달리 문 후보와 안 후보간의 펀치가 '잽'을 넘어 '훅'으로 변하자 새누리당 등 여권에서는 철저한 표정 관리 속에 두 후보가 각자 완주하는 쪽으로 분위기를 잡아가고 있다.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지난 11일 "후보 단일화라는 꼼수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며 "민주당과 안 후보가 단일화 추진을 놓고 기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송호창)의 탈당까지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새누리당으로서는 1대1 대결은 버거울 수 있기 때문에 '1노 3김'이 모두 출마했던 13대 대선(1987년)의 구도를 바라지 않겠냐"면서 "앞으로도 새누리당은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를 명분 없는 야합으로 규정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시너지효과 극대화?

지금 같으면 단일화는 물 건너간 게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문 후보 측과 안 후보 측간의 신경전이 일촉즉발의 전면전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일화 가능성이 여전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끝까지 '치킨게임'을 벌일 경우 양측 모두 패할 게 거의 확실시되는 만큼, 정권 교체라는 대전제 앞에 어느 한 쪽의 양보는 숙명이라는 것이다.

송호창 의원이 지난 9일 민주당 울타리를 벗어나 캠프로 옮긴 것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는다. 송 의원은 지난 1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와 이 하나 되는 것은 절대적 과제"라고 힘줘 말했다. 단일화의 징검다리가 되겠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송 의원은 지난 9일 "안 후보가 현역 의원 한 명도 없이 혼자 벌판에서 이걸(가혹한 검증)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깊은 책임감을 갖게 됐다"고 탈당의 변을 밝혔다. 송 의원 등 캠프 관계자들 중 상당수는 참여정부 때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강금실 변호사와 가깝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양측이 후보등록일을 넘겼다가 선거 며칠 전에 극적인 단일화를 이룰 가능성도 있다"며 "그러면 시너지효과 극대화로 본선에서 손쉬운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문 후보와 안 후보가 후보등록일을 넘긴 뒤 단일화를 이루면 여권으로서는 그에 대응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야권은 단일화를 통해 감동을 극대화하는 반면 여권으로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것이다. 실제로 주요 선거에서 막판 단일화는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양측이 단일화를 추진한다면 현재로서는 '여론조사+경선'혼합 방식이 유력해 보인다. 두 후보 모두 여론조사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법에는 부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여론조사 30% ▦TV 토론 후 배심단원 평가 30% ▦현장투표 40%를 택했던 '박원순-박영선 단일화 안'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제1야당을 등에 업고 있는 문 후보는 물론이고 무소속인 안 후보도 이 같은 방식에 수긍하는 것 같다.

안 후보는 지난 7일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평가(배심원단 평가) ▦현장의 목소리(현장투표)를 언급하며 '박원순-박영선 단일화 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3후보 캠프 분위기


朴, "친박 독식" 불만 높아
文, 요직 거의 친노세력
安, 외부인사 영입 경직

최경호기자

유력 대선 주자들의 캠프는 철저한 집 단속과 함께 외연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자들이 직접 나서 당대 거물들을 달래거나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것이 좋은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캠프에는 말 못할 고민이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박 후보 캠프는 친박의 독식, 문 후보의 캠프는 친노의 자만심, 안 후보의 캠프는 경직성이 약점으로 꼽힌다"고 귀띔했다.

박 캠프 주변에서는 "친박이 다 해먹는다"는 불만이 나온다. 적어도 선거기간 동안에는 친박이 2선으로 물러나고 새로운 세력이 전면으로 나서야 비로소 반듯한 모양새를 갖출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남경필 의원(5선)과 유승민(3선) 의원이 잇달아 "박근혜 빼고 다 물러나라"고 핏대를 세운 것도 알고 보면 친박의 독식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박 후보는 지난달 25일 유 의원의 빙모 빈소를 찾은 자리에서 남 의원과 유 의원에게 선거대책위원회 공동 부위원장을 제안했다. 이를 두고 제안 시점이나 자리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임태희 안상수 김태호 전 대선 경선후보 등은 박 후보와 경선을 치렀다는 이유만으로 의장단에 속해 있는 반면 차차기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남 의원과 한때 친박의 핵심이었던 유 의원이 장례식장에서 부위원장 제안을 받은 것은 두고두고 생각해볼 일"이라고 말했다.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한광옥 전 대통령 비서실장 영입에 반대하며 사퇴까지 시사했던 이면에도 친박의 독식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는 전언이다.

캠프를 바라보는 당 안팎의 대체적인 시선은 착잡함으로 요약된다. 문 후보 측이 추석 연휴 직후 발표한 후보 비서실,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실, 선거대책위원회 산하 시민캠프 인선 결과, 요직은 거의 대부분 친노 인사들이 점령했다.

문 후보가 지난 4일 경제민주화위원장으로 영입한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친노 인사다. 이 위원장은 지난 10일 문 후보의 경제 기조에 대해 "참여정부와 비슷한 점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한 당 관계자는 "문 후보의 고민이 확장성인데 참여정부와 비슷한 점이 많을 것이라는 발언이 과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주당의 한 소식통은 "추석 연휴 직후 ' 캠프 사람들에게서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까지 엿보인다'는 말도 있었다"며 "문 후보의 지지율이 다시 주춤하는 듯하자 고민이 많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 측근들은 대부분 검사, 변호사, 교수 출신이다. 캠프 핵심 인사 중 5명이 법조인이라는 점도 이색적이다. 시민사회 쪽은 대외협력팀장을 맡고 있는 하승창 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뿐이다.

국회의원 출신인 박선숙 본부장을 비롯해 김형민 정책팀장, 박인복 민원실장, 한형민 기획팀장, 허영 비서팀장, 유민영 대변인, 조광희 비서실장, 금태섭 상황실장, 강인철 법률지원단장, 김경록 기획팀장 등이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세 후보 중 가장 늦게 출발한 캠프는 '작은 캠프 큰 외연'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게 안 후보가 주창하는 새로운 정치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은 캠프의 경직성이다. 기존 멤버가 아닌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캠프를 노크하기조차 어렵다고 한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자기들끼리 잘해보겠다는데 도리가 있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이에 대해 캠프 측은 "그렇다면 이제 와서 아무나 받으라는 말이냐"고 반박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