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준(왼쪽) 민주통합당 선대위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이 지난달 27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담쟁이캠프 1차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윤여준(73) 전 환경부 장관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정객이다. 그는 유신과 5, 6공 시절 주요 공직을 지낸 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정치에 입문했다.

정치부 기자 출신인 윤 전 장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인 1977년 공직에 들어와 주일, 주싱가포르 대사관 공보관을 역임했다. 또 그는 5, 6공 시절에는 청와대 비서관, 김영삼 정부 때는 환경부 장관에 올랐다.

1998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특보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윤 전 장관은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기획위원장, 2006년 지방선거 때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한동한 뜸하던 윤 전 장관은 지난해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는 안철수 무소속 후보(당시 서울대 교수)와 가까워지면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세간에서는 그를 '안철수의 멘토' '안철수의 후견인'이라고 불렀다.

그런 그가 지난달 26일 민주통합당에 둥지를 틀었다. 윤 전 장관의 정치이력에서 민주당은 처음이다. 문재인 후보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였다는 윤 전 장관은 선거대책위원회 내 '민주캠프'에서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을 맡았다.

한 정치권 인사는 "윤 전 장관의 민주당 입당과 문재인 캠프 합류 소식에 안철수 후보 측에서는 좀 착잡해했던 것으로 안다. 물론 민주당과 문 후보 측에서는 그런 점들을 다 고려해서 윤 전 장관을 영입했을 것"이라며 "윤 전 장관이 야권 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갈라진 尹-安, 파고든 文

윤 전 장관은 지난해 법륜 스님,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등과 함께 안 후보의 멘토로 부각됐다. 그러나 안 후보가 "윤 전 장관이 제 멘토라면, 제 멘토는 김제동 김여진씨 등 300명쯤 된다"고 말하면서 두 사람은 소원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한 정치권 인사는 "같은 질문이 수십 차례 반복되다 보니 안 후보로서는 지친 나머지 그렇게 대답한 것으로 안다. 안 후보가 윤 전 장관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면서 "그런데 안 후보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간극이 생긴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윤 전 장관과 안 후보의 멀어진 틈을 문 후보가 잽싸게 파고든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한때 '바늘과 실' 같았던 윤 전 장관과 안 후보이지만 지금은 경쟁관계, 좀더 솔직히 표현하면 적대관계에 있다. 문 후보와 안 후보는 단일화가 되든, 아니면 각자 완주를 하든 제18대 대선 정국에서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선거 전략가, 기획 전문가 등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윤 전 장관이지만 당내 여론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윤 전 장관이 강한 보수 성향을 띠기 때문에 실제 중도층 흡수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주장이다. 윤 전 장관은 지난 8월 한 신문 칼럼을 통해 "문 후보는 노무현 패러다임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입당 한 달 전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는 윤 전 장관은 지난달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면서 "두 시간 동안 얘기해보니 문 후보가 노무현 정부에 대한 자기 성찰이 있고 굉장히 신중하며 균형감각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서 "문 후보의 균형감각이 없다면 아무리 국민 통합이 중요해도 (문 후보의 캠프에) 합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윤 전 장관 영입으로 외연 확대라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는 쪽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안 후보와 야권 후보 단일화 경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는 하나 철새나 다를 바 없는 인사에게 중책을 맡긴 것은 되레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무슨 내용이 담겨 있기에…

윤 장관의 민주당 입당에 가장 긴장하는 쪽은 안철수 후보 측이다. 윤 전 장관은 '기업인' 안철수가 '정치인' 안철수로 변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랬던 윤 전 장관이 안 후보와 필생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문 후보, 즉 적진에 안긴 것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겉으로는 담담해하지만 안 후보 측은 윤 전 장관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윤 전 장관의 휴대폰이 야권 후보 단일화의 열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이 인사는 윤 전 장관과 안 후보가 가까웠을 때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중에는 세상에 공개됐을 때 파장이 상당할 내용도 있을 거라고 귀띔했다. 이를테면 안 후보의 정치 참여에 대한 진중한 고민 같은 것이 담겨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윤 전 장관은 안 후보와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 내용 등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때'가 되면 이런 내용들이 세상에 공개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 '때'는 야권의 후보 단일화 국면이 무르익을 시점, 즉 내달 중순 이후가 될 거라는 게 정치권 인사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런 가운데 윤 전 장관은 지난 12일 "무소속 대통령은 효과적 국가 운영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안 후보 측에 '잽'을 날려 눈길을 끌었다.

현재로서는 문자메시지 내용이 알려질 경우 안 후보 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이지만 반대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윤 전 장관이 안 후보와 친했을 때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 내용들을 공개한다면 되레 문 후보 측에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전혀 다른 주장도 있다. 윤 전 장관이 '공식적으로는' 후보 단일화 문제와는 거리를 둘 거라는 것이다. 실제로 윤 전 장관은 "후보 단일화는 후보 통합이지 국민 통합이 아니어서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문 후보 측이 정치 색깔이 전혀 다른 윤 전 장관을 영입한 것은 결국 안 후보를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어서 향후 윤 전 장관의 행보가 주목된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