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고 있는 2012G-FAIR Korea에 참가하고 있는 중아트갤러리 전시장에 미국의 유명 캐리커처 작가인 마커스 사코다가 그린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주요 대선후보의 익살스러운 캐리커처가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연합뉴스
재벌개혁 정책에 중점
당초 예상 이상의 파문 세 후보 정책 온도차
'공정경쟁' 부문은 유사 '지배구조 개선'엔 대립
재계 연일 성명 날선 반응

朴후보 "기존 출자는 인정"… 文·安 "기존 출자도 적용"
삼성 경우 50조원 소요… 사실상 재벌 해체 의미

"의미도 불분명한 경제민주화 논의가 결국 무분별한 재벌 때리기로 변질되고 있다. 경기가 안 좋아 가뜩이나 내년에 뭘 먹고 살지가 걱정인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요즘 만나는 재계 인사들마다 푸념하듯 늘어놓는 말이다. 과장과 엄살이 어느 정도 섞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재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재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은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대세로 부상 중인 '경제민주화' 때문이다. 대선 유력주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저마다 경제민주화 정책을 들고 나오며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세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대ㆍ중소기업간 갈등 완화, 서민 복지, 소득 불평등으로 인한 양극화 해소, 조세 정의, 재벌개혁 등 폭넓은 사회적 의제들이 하나로 묶여가며 점차 그 힘을 더해가고 있다.

물론 경제민주화 화두 자체가 넓은 폭을 지녀 다양한 의미로 끌어다 쓸 수 있는 데다 그 층위 또한 두터워 대선 이후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표퓰리즘에 입각해 너도나도 외친 공약(公約)이니만큼 헛헛한 공약(空約)으로 끝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대선 레이스에 나선 유력 후보 모두가 경제민주화를 가장 중요한 공약으로 내세운 이상 누가 집권하더라도 일정 부분 정책으로 이어질 것은 확실하다. 직접적인 제재 당사자인 재계가 경제민주화라는 말에 부담을 느끼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대선이 다가올수록 세 후보의 선명성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어느 한 쪽이 선점하기 어려워진 이상 각론 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변이 없는 이상 세 후보 모두 지금보다 더욱 강한 공약을 내세우며 샅바싸움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문, 안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이 예상했던 것 이상의 파문을 낳고 있는 데다 박 후보 또한 진정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새누리당의 기존 입장보다는 강한 정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박ㆍ문ㆍ안 후보가 내세우는 경제민주화 공약들을 미뤄볼 때 각 후보가 집권한 이후 재계는 어떤 변화를 겪을까? 이에 <주간한국>에서는 경제민주화 공약들 중 세 후보가 가장 차이를 보이는 재벌개혁 관련 정책들을 위주로 대선 이후를 전망해봤다. 단, 아직까지 구체적인 재벌개혁안을 제시하지 않은 박 후보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발언들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유력 대권 주자 3인 중 경제민주화 정책 구상을 가장 먼저 밝힌 것은 문재인 후보였다. 문 후보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경제민주화 관련 타운홀 회의에서 재벌개혁을 중심으로 한 10가지 정책을 발표했다. 경제민주화 정책으로는 지난 7월 공개된 '골목상권 보호와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10대 정책'에 이어 2탄 격인 셈이다.

"재벌개혁 두번 실패 안해"

문 후보는 노무현 정부의 재벌개혁 실패를 사과하며 "두 번 실패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이어 "경제민주화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한국경제의 미래는 한 마디로 공정경제"라며 "공정한 시장경제질서의 법과 제도를 확립하고 엄정하게 집행함으로써 재벌개혁을 성공시킨 대통령이 되겠다"고 전했다.

이날 문 후보가 발표한 재벌개혁 정책은 크게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혁 ▲재벌 총수일가의 부당한 사익추구 방지 ▲재벌 반칙 엄단 등 3대 축으로 나뉘었다. 이중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혁을 위해 출자총액제한제(이하 출총제) 재도입, 순환출자 해소 등의 항목이 포함됐다.

문 후보에 이어 안철수 후보도 경제민주화에 대한 각론을 밝혔다. 안 후보는 14일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7대 재벌개혁과제를 발표했다. 안 후보는 경제민주화 3대 원칙으로 ▲기회의 균등 ▲과정의 공정 ▲약자의 보호를 제시하고 이를 위한 7대 영역으로 ▲재벌개혁 ▲금융개혁 ▲혁신경제 및 패자부활 ▲노동개혁 및 일자리 창출 ▲중소ㆍ중견기업 육성 ▲민생안정 ▲공공개혁을 선정했다.

이날 안 후보는 "경제민주화는 대통령이 지켜야 할 헌법적 가치"라며 "재벌총수의 편법 상속ㆍ증여방지, 재벌총수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 등 1단계 개혁조치를 추진한 뒤 그 결과가 미흡할 경우 계열분리명령제 등 강력한 구조개혁 조치를 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안 후보가 저마다 강력한 경제민주화 공약을 들고나온 것에 반해 박근혜 후보 측은 여전히 세부적인 사항을 발표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경제민주화의 원조 격인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영입한 데다 이미 새누리당 내부의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 관련 법안들을 내놓기도 했지만 여전히 잦아들지 않은 당내 논란이 부담으로 작용한 까닭이다. 그동안 새누리당 경선 토론회 등에서 나온 발언을 살펴보면 박 후보의 입장은 '공정경쟁은 강화하되 재벌개혁에는 신중'으로 요약된다.

민형사 책임까지 거론

현재까지 나온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상당 부분 유사하다. 바로 '공정경쟁' 부문이다. 세 후보 모두 골목상권 보호, 하도급 거래 개선, 일감 몰아주기 제재 등을 동일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대기업의 횡포로 문제가 됐던 부분들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는 입장이다.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도 박 후보는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방안을 제시했고 문 후보는 엄정한 과징금 부과를, 안 후보는 부당이익 환수와 과세를 제시했다. 재벌 총수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목소리도 높다. 재벌 총수가 배임ㆍ횡령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박, 안 후보는 집행유예 금지와 사면제한을, 문 후보는 처벌 강화와 경영 배제 조치를 내놨다.

세 후보의 차이점은 재벌개혁, 그중에서도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부분에서 극명히 갈린다. 특히 출총제 재도입, 순환출자 해소 등 그동안 재벌개혁의 단골 메뉴로 제기됐던 사안들에 대해 세 후보는 다른 각론을 내놓고 있다.

박 후보는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되 기존 출자는 인정하자는 입장이다. 다만 기존 출자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안 정도를 검토하고 있다. 출총제에 대해서는 실효성 문제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재벌개혁 정책의 대표격인 순환출자 해소 및 출총제 부활에 사실상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반쪽짜리 경제민주화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왼쪽)
문 후보는 신규 순환출자는 물론이고 기존 출자분까지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3년의 유예기간을 둔 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의결권을 제한하고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는 입장이다. 출총제는 재도입하기로 결정해 세 후보 중 가장 강한 재벌개혁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된다.

불안한 재계, 반발 심해

안 후보는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되 기존 출자분의 경우 주식처분 권고 등 재벌의 자발적 해소를 유도한 뒤 재벌개혁위원회의 판단을 거쳐 계열분리명령 등 강제 이행방안을 적용하는 2단계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계열분리명령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낸 만큼 어떤 면에서는 문 후보보다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출총제 부활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재벌개혁 정책상 박ㆍ문 후보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고 평가된다.

층위는 다르지만 대권 주자 세 명이 저마다 재벌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며 재계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대선을 두 달 앞두고 점차 깊어지고 있는 경제민주화 논의가 관련 법 개정으로까지 진행될 경우 큰 타격을 피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 같은 불안과 반발은 재계의 대변인으로 통하는 전경련의 입을 통해 강하게 드러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11일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로 하향 조정한 직후 내놓은 논평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우리 경제의 위기 상황을 깊이 인식하고 경제살리기를 위한 비상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해당 논평에는 경제민주화 정책 경쟁이 자칫 기업의 투자 활동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 도입으로 이어질 것에 대한 우려로 가득했다.

이정우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위원장(오른쪽)과 문재인 후보
문재인 후보에 이어 안철수 후보까지 강력한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을 발표한 14일에는 '대선후보 대기업정책에 대한 논평'을 내놓으며 후보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에 나서기도 했다. 전경련 측은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인위적으로 바꾸거나 기업의 투자활동을 제한하는 반시장적인 규제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지양해야 한다"며 "기업가 정신을 발현시켜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는 친시장 정책을 발표해달라"고 주장했다. 전경련이 대선 후보들의 정책 공약에 대해 반대 성명을 낸 것은 처음이다.

큰 타격 없는 출총제 부활

전경련에 이어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도 강한 대응을 보였다.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회장단 회의에서 손경식 서울대한상의 회장은 "대기업 지배구조가 잘못됐다는 전제 아래 순환출자 규제나 금산분리 강화를 거론하는 것은 과하다"며 "지금 같은 경제위기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투자와 고용이며 이를 위해 기업들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출총제 부활, 순환출자 해소 등의 재벌개혁 정책이 시행될 경우 국내 주요 재벌들이 실제로 입게 될 피해가 얼마나 되기에 재계가 이토록 난리일까?

문재인 후보만 공약으로 내세운 출총제 부활의 경우 실질적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상이 되는 재벌들이 많지 않을뿐더러 빠져나갈 구멍도 많기 때문이다. 이는 1987년 도입된 이후 여러 차례 폐지와 부활을 반복해온 역사에서도 드러난다.

장하성 교수(왼쪽)와 안철수 후보
대규모 기업집단 혹은 계열사가 자산의 일정 범위 이상을 다른 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출총제는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혁을 위해 1987년 도입된 이후 정권 교체기나 선거 때마다 여덟 번이나 모습을 바꿔가며 폐지와 부활을 거듭했다.

출범 당시 순자산액 대비 출자총액 한도 40% 수준이었던 출자총액한도는 1994년 법 개정을 통해 25% 수준으로 하향 조정됐다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원활한 구조조정과 부채비율 감축을 유도한다는 명분 하에 폐지됐다.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25%의 출자총액한도로 부활한 출총제는 2002년, 2004년, 2007년의 연이은 법 개정으로 구속력이 대폭 완화됐다가 2009년 공식적으로 폐기됐다.

출총제의 완화 명분은 기업들의 투자의욕과 고용창출을 저해한다는 것이었으나 폐기 당시 가장 큰 명분은 사실상 구속력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은 문 후보가 제시한 출총제도 마찬가지 과정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 후보 공약의 출총제는 10대 재벌에 대해 출자총액한도 30% 이상의 부분을 3년 유예를 거쳐 해소토록 하는 방법이다.

한도 30% 이상 3년 유예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출자 해소가 필요한 곳은 SK(2조7,008억원), 현대중공업(1조5,631억원), 한진(2조1,659억원), 한화(2조9,552억원) 등이다. 각종 적용제외 및 예외를 고려하지 않은 최대치로 환산했음에도 이 정도다. 어떤 예외 조항이 따라붙을지는 미지수지만 2001년 부활 이후 출총제의 예외조항에 사회간접자본시설 사업, 기업구조조정, 외국인투자 유치 또는 중소기업과의 기술협력을 위해 주식을 취득한 경우(2001년), 남북교류사업, 차세대 성장동력사업(2004년) 등이 포함됐음을 감안한다면 위의 재벌들 또한 별 영향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삼성(27조3,473억원), 현대차(9조8,634억원), 롯데(6조4,645억원) 등은 아예 상당한 출자 여력이 남는다.

가장 오랫동안 갑론을박의 주제가 돼왔던 경제민주화 정책이 출총제라면 현재 재계에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순환출자 해소 정책이다. 순환출자는 재벌이 적은 지분으로 수많은 계열사를 지배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방식은 간단하다. A→B→C→A와 같이 그룹 내 계열사끼리 연쇄적으로 출자, A사를 확실한 지배주주로 만드는 방법이다. 국내 재벌 총수 중 상당수는 이 같은 방법으로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현재 신규 순환출자 금지에는 세 후보 모두 동의하는 바이지만 기존 출자의 경우 문재인, 안철수 후보만 규제의 칼을 뽑은 상태다.

기존 순환출자 해소 정책에 재계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출자해소 비용 때문이다. 10대 재벌 중 순환출자구조를 취하고 있는 5개 재벌의 경우 수직형 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해 적게는 수천억부터 많게는 10조원이 넘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야만 하는 상황이다.

착한자본주의연구원(이하 연구원)이 지난 9월 발표한 '한국 재벌그룹의 순환출자해소비용과 착한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서 ▲약한 연결고리를 단절하는 방법 ▲수직적 지배구조를 만드는 방법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법이 존재한다. 연구원 측은 약한 연결고리를 단절하는 방식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할 경우 오히려 취약한 지배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수직적 지배구조를 만들거나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대안이라고 전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이 수직적 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금까지 총 10조1,745억원이, 아예 지주회사를 설립하기 위해선 최소 50조원이 필요하다. 19개의 출자고리를 지니고 있는 롯데의 경우 위의 두 가지 방법을 따라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각각 5조2,927억원, 7조5,451억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비교적 단순한 순환출자구조를 취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한진의 경우 두 방법 모두 11조 6,587억원, 1조8,638억원, 3,643억원이 필요하다.

두 방안 중 비교적 적은 비용이 소요되는 수직적 지배구조도 기업들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까닭에 적절한 해소기간은 필요하다. 연구원 측은 차기 정부 5년간 의결권 제한, 주식교환과 주식거래에서 세제혜택 등 적절한 방법을 통해 실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문ㆍ안 후보의 경우 재벌들의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시간을 어느 정도 책정해놓은 상태다. 문 후보는 3년의 유예기간을 뒀고, 안 후보는 재벌들이 자율적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켜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유력 대선후보 3인의 재벌개혁 공약이 다르지만 기존 순환출자 해소 정책을 기준으로 볼 때 문ㆍ안 후보가 당선될 경우 주요 재벌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삼성, 현대차 등 순환출자를 통해 경영권 승계를 계획하고 있는 재벌들의 경우 눈에 보이는 비용 이상의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상태다.

세제혜택 등 통해 실현 가능

만약 기존 순환출자 해소에 더해 문ㆍ안 후보가 추진 중인 금산분리법까지 시행될 경우 문제는 더욱 커진다. 특히, 삼성에버랜드를 일반지주회사로 하여 중간금융지주회사인 삼성생명과 일반지주회사인 삼성전자를 지배해야 하는 삼성은 그룹의 유지를 위해 최소 50조원의 비용이 필요, 사실상 해체까지 갈 수도 있다. 주요 재벌들을 필두로 한 재계 전체가 세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 대결에 막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 과장이나 엄살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 3후보측 '경제민주화' 추진 누가 이끄나


朴후보측 김종인, 서강학파 출신 요직 두루 거쳐
文후보측 이정우, 노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
安후보측 장하성, 참여연대서 '재벌 저격수' 역할

김현준기자

경제민주화라는 하나의 화두로 수렴되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경제정책들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지난 4일 문 후보가 '미래캠프'의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에 이정우 경북대 교수를 임명한 것을 마지막으로 세 후보 경제정책의 장수들이 모두 공개됐다. 문 후보 측의 이 위원장에 맞서 박 후보 측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안 후보 측의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포진하면서 흥미진진한 삼각대결을 펼치게 됐다.

박 후보 측의 김 위원장은 서강학파 출신으로 박정희 정부 시절엔 의료보험제도를,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했던 노태우 정부 때는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했던 사람이다. 제11대, 12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 위원장은 1987년 헌법 개정 때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헌법 119조 2항 입안을 주도한 경제민주화의 원조 격이다. 당시 헌법에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처음 도입했을 뿐 아니라 균형성장, 소득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의 방지 개념을 새로 정리해 포함한 바 있다.

4선 의원으로 정ㆍ관계 요직을 두루 거치며 한때 안 후보의 멘토로도 알려졌지만 지난해 말 새누리당 비대위에 합류,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 선봉에 서 있다. 그러나 정작 새누리당에 들어와서는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한 당내의 이견이 만만치 않아 입지를 넓히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문 후보 측의 이 위원장은 경북대 교수로 재직하다 참여정부 때 발탁,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지낸 '노무현의 남자'다. 노 대통령의 초기 경제정책을 입안했고 정책기획위원장,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 등 정책 분야 핵심요직을 두루 거쳤다. '분배주의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뚜렷한 개혁성향을 지닌 학자였던 이 위원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한 것을 기점으로 참여정부와 멀어졌다.

지난 5월부터 문 후보의 싱크탱크이자 외곽 지원그룹인 '담쟁이포럼'의 연구위원장을 맡아 멀리서 지원하던 이 위원장은 '미래캠프'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며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점잖은 선비 스타일인 데다가 친노 이미지가 강한 까닭에 당내 다른 계파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안 후보 측의 장 교수에겐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아 소액주주운동을 펼치며 얻은 '재벌 저격수'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1998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소액주주 대표로 참석, 총수의 경영 전횡과 편법 상속을 고발하며 주총을 13시간이나 끌었던 경력을 지니고 있는 장 교수는 이후 국제지배구조네트워크 이사,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운영위원 등을 맡으며 사회적 발언을 계속해오고 있다.

현재 안 후보의 외교ㆍ안보ㆍ통일을 제외한 정책분야 공약 전반을 총괄하고 있는 장 교수는 별명답게 재벌개혁에 초점을 맞춘 경제민주화 정책을 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장 교수가 역량을 발휘하기엔 안 후보 캠프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