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국회의원이 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분권형개헌추진국민연합 창립대회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안철수(50) 무소속 대선후보는 언제부터 야권이었을까. 여권과는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해 명쾌하게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안 후보는 지난달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정권 교체'라는 말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그리고 박근혜 후보와 치열한 전선(戰線)을 구축했다. 그렇다고 안 후보가 새누리당 전체와 선을 그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새누리당 내에는 친이(친 이명박)계 등 박 후보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세력도 적지 않다.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정몽준 의원, 김문수 지사 등은 고민 끝에 박 후보의 품에 안겼지만 MB(이명박)의 '복심'(腹心)이라 할 이재오 의원은 여전히 독자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 의원과 김 지사 등은 차차기 대권을 바라보는 만큼 일단은 박 후보의 당선을 돕는 게 현실적인 선택이다.

현정권 출범과 함께 당내 최대 계파로 자리매김했던 친이계는 지난해 박 후보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의 전면에 나섬과 동시에 뒷전으로 밀려났다. 진수희 전 의원, 김해진 전 특임차관 등 친이계의 상당수는 4ㆍ11 총선에서 낙천되거나 낙선했다.

이와 관련, 한 정치권 인사는 "아직은 이르다"고 전제하면서도 "이재오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이계가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형태로 양측이 힘을 모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 전제와 연결고리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이 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5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한 돼지국밥집에서 지지자가 싸온 김밥을 돼지국밥과 함께 먹고 있다. 연합뉴스
李 "대선보다 개헌!"

이재오 의원은 지난 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분권형 개헌 추진 국민연합' 창립대회 후 기자회견에서 "유력 대통령 후보가 쿠데타와 유신을 비호하는 인식을 갖고 있으면 국민들은 '아 다시 독재로 회귀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국민이 박근혜 의원의 역사 인식에 대해 주목하고 긴장하는 것"이라고 박 후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발언을 두고 이번 대선에서 이 의원이 박 후보를 돕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의원은 '대선에서 박 후보를 도울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정권 재창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라의 미래다. 일단 나는 이 운동(개헌)에 전념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 의원은 개헌 서명을 받은 뒤 청원서를 청와대와 국회는 물론이고 대선후보들에게도 전달할 계획이다. 후보들의 개헌에 대한 입장에 따라 '분권형 개헌 추진 국민연합'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표명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 의원은 "내가 이 단체의 대표가 아니니 말하기 어렵다"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 의원은 그러나 "대선후보 등록(11월25, 26일) 전까지 총력을 다해 국민 동의를 받아내고 (지지 후보 결정)결과는 그때 가서 다시 논의하지 않겠냐"고 말해 개헌과 관련된 대선후보들의 입장에 따라 지지후보를 결정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분권형 개헌 추진 국민연합'은 지난 22일 창립대회에서 최병국 전 새누리당 의원, 성타 불국사 주지스님, 차진영 '아름다운 공동체' 대표 등 3명을 공동대표로 선출했다.

이 단체는 대통령이 국가 수반으로 외교ㆍ안보를 담당하고 국무총리가 행정부 수장으로 행정을 책임지는 4년 중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을 목표로 300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安 "개헌? 국민 합의 필요!"

안철수 무소속 후보 측은 개헌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안 후보 측은 "개헌은 다른 현안과 연관성이 많은 문제"라며 "충분한 국민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진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안 후보는 그러나 지난 7월 출간한 <안철수의 생각>에서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일수록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되지 않고 견제장치가 잘 작동하게 돼 있다"고 말하는 등 대통령의 권력 분산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안 후보는 지난달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뒤에도 ▦대통령 권한 축소 ▦정당 공천권 포기 ▦국회의원 특권폐지를 '정치혁신 3대 과제'로 제시했다. 심지어 안 후보는 "청와대 인사권을 10분의 1로 줄이겠다. 여론을 수렴해서 청와대를 옮기겠다"고도 했다.

지금까지 안 후보 측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개헌의 필요성에서는 어느 정도 공감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야권 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민주통합당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기 위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단일화를 정권교체의 전제조건으로 주장하는 문재인 후보는 "대선 운동 과정에서부터 개헌의 구체적인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고 선택을 받아야 한다"며 개헌에 적극적인 찬성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이는 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를 개헌에 대한 국민적 '허락'으로 간주하고 개헌을 적극 추진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유력후보들은 개헌과 관련해 하나같이 '국민적 공감대와 협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또 1987년 제13대 대선 전에 제정된 현행 5년 단임제는 구조적으로 결함을 안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이재오 의원 등 친이계가 개헌을 연결고리 삼아 특정후보와 연대할 거라는 관측도 여기서 비롯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력후보들이 개헌의 필요성을 느끼는 만큼 이 의원 측이 주도하는 서명운동도 점차 설득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세 후보 모두 개헌의 당위성에 공감한다 하더라도 이 의원 등 현실적으로 친이계의 선택의 폭은 한정돼 있다. 굳이 지난 22일 이 의원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박 후보 측과 핵심 친이계가 한 배를 타기는 무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렇다고 핵심 친이계가 친노(친 노무현)의 적자(嫡子)인 문 후보 측과 손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안 후보 측이 개헌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여론이 모아진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며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개헌 논의는 더 활발해질 것이고, 결국 핵심 친이계는 안 후보 쪽을 바라보지 않겠냐"고 전망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