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4일 서울 국민대를 방문, 중간고사를 치르는 학생들에게 김밥 간식을 나눠주고 '시험과 스펙 대신 꿈을 말하다'란 주제의 담소를 나누며 물을 마시고 있다. 손용석기자
이래저래 '단독' 3위다. 흔히 하는 얘기로 "100% 신뢰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여론조사 결과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2위도 힘겨운 마당에 3위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문재인(59)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위기에 처했다. 박근혜ㆍ문재인ㆍ안철수 3자 구도가 정립(鼎立)된 이후 문 후보는 줄곧 3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 추석연휴 직후였던 10월 초 가파른 상승세를 타는 듯했으나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고 말았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22일 발표한 10월 3주차 대선주자 다자구도 선호도 조사(10월15~21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5,250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1.4%포인트)에선 박 후보가 42.5%, 안 후보가 28.5%, 문 후보가 22.0%를 기록했다.

그런가 하면 야권후보 단일화를 전제로 한 양자대결 구도에서는 안 후보 49.4% 대 박 후보 43.9%, 박 후보 47.2% 대 문 후보 44.9%로 나왔다. 또 야권후보 단일화를 가상한 문재인-안철수 대결에서는 안 후보가 42.7%로 문 후보의 35.2%에 7.5%포인트 앞섰다

"결국 정당을 업고 있는 문 후보가 야권 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승리하지 않겠냐"는 낙관론도 있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정당 개혁'을 강조하고 있는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반드시 단일화 테이블에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소설가 황석영 정도상씨와 임옥상 화백이 22일국회 정론관에서 문화예술인을 대표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민주당 한 관계자는 "문 후보는 3위다. 그런데도 막연하게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이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문 후보는 크게 4가지 측면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게 풀리지 않으면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1. 친노 프레임

문 후보 캠프에서 활동해온 친노(친 노무현) 핵심 인사 9명이 지난 21일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나왔다. 이른바 '3철'로 불리는 양정철 메시지팀장과 전해철 기획본부장, 이호철 문재인 후원회 운영위원을 비롯해 김용익 공감2본부 부본부장, 박남춘 특보단 부단장, 윤후덕 비서실 부실장, 정태호 전략기획팀장, 소문상 정무행정팀장, 윤건영 일정기획팀장 등 9명은 "문재인 승리의 노둣돌이 되겠다"며 성명을 내고 선대위에서 사퇴했다.

당초 이들은 동교동계 가신 그룹처럼 "임명직은 맡지 않겠다"고 선언하려 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3등인 마당에 되레 오만하게 비칠 수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선대위 사퇴만 선언했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모셨고 참여정부에서 몸담았다는 사실을 한 번도 부끄러워해본 적이 없다. 그 낙인이 명예든 멍에든 숙명처럼 받아들이겠다"고 성명서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재야 원로들이 25일국회에서 열린 '희망2013. 승리2012 원탁회의'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문 후보는 한편으로는 안타까워하면서도 "새로운 정치를 이루는 데 밑거름이 되겠다는 충정으로 받아들이겠다. 고맙다"며 측근들의 선대위 사퇴 의사를 수용했다.

문재인과 노무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대통령 노무현'이 없었다면 '대통령 후보 문재인'도 없다. 문 후보가 짧은 정치경력에도 불구하고 당내 주자로 선출된 데 친노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대선 후보가 된 지금, 문 후보에게 '노무현 그림자'는 되레 부담이 되고 있다. 상대가 친노 프레임을 걸고 들어오면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 요즘 정국이 실제 그렇다. 또 많은 유권자들도 '문재인≒노무현'으로 인식하고 있다.

민주당 소식통은 "추석 연휴 직후 지지율이 가파르게 오르자 문재인 진영 일부 인사들의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다 끝난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조심하고 자세를 낮췄다면 친노 직계의 선대위 사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 조직 不動

민주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민주당의 바닥 조직, 특히 호남지역 조직이 잘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정치 관계자는 "호남지역에는 손학규ㆍ정세균 전 대표 등의 기반이 탄탄한 데다 문재인과 안철수 사이에서 고민하는 당 실무자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문 후보는 호남지역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에게 10%포인트 정도 뒤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문 후보는 지난 21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호남지역 의원들과 식사를 하며 여론을 경청했다. 이 자리에서 문 후보는 "국민의 눈으로 보면 민주당에 대한 불만도 있을 것이고 후보의 부족함도 있을 것"이라며 "(야권) 후보 단일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의원들께서 잘 것이다.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문 후보는 이어 "후보 단일화 (경쟁)에서는 호남이 매우 중요하다. 의원님들이 도와주면 될 것"이라며 거듭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공동선대위원장인 이낙연 의원은 "후보 단일화에 사활이 걸릴 만큼 중요하지만 누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느냐도 중요하다"며 "누구로 단일화가 되느냐의 차이가 무엇이고, 문 후보의 장점은 무엇인지를 의원들이 당원과 주민들께 진정한 마음으로 말씀 드려야 한다"고 화답했다.

이날 모임은 대체로 화기애애했고, 문 후보와 의원들간에 친목과 단합을 다지는 성격이 짙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그럼에도 문 후보가 여전히 호남 의원들의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모임에는 김성곤 주승용 김윤덕 김관영 의원 4명이 개인 사정을 이유로 불참했고, 22명만 참석했다. 또 일부 의원들은 문 후보가 만찬 모임 참석을 요청하면서 직접 전화하지 않고 문자메시지로 통보한 것은 "아직도 멀었다는 것 아니겠냐"며 시큰둥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3. 단일화에서 乙?

많은 야권 지지자들은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를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소설가 황석영씨 등 문화ㆍ종교계 인사 102명은 지난 22일 "정치 개혁과 단일화가 민주주의이자 시대정신"이라며 "후보 단일화 실패로 민주주의와 사회 발전 수준을 후퇴시켰던 1987년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며 문 후보 측과 안 후보 측을 동시에 압박했다.

신중한 태도로 일관하던 안 후보 측도 이날 단일화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박선숙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은 "국민이 단일화 과정을 만들어주면 그에 따르고 승리할 것"이라며 "정치 교체와 정치 혁신을 위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이어 "단일화 과정에서는 반드시 (본선에서) 이길 수 후보가 선출돼야 한다"며 "(국민은) 정권을 바꾸고 정치를 바꾸는 두 가지 과제를 다 해낼 수 있는 후보는 안 후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측 모두 원론적으로 단일화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더 급한 쪽은 문 후보 측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현실적으로 문 후보가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안 후보에게 밀리고 있을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여론의 압박도 더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측이 단일화 테이블을 차릴 경우 문 후보 측에서 협상의 세부 방식을 먼저 제시하고 안 후보가 선별적으로 수용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안 후보로서는 단일화 방식이 불리하거나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면 굳이 테이블에 앉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문 후보 측이 갑(甲)의 자세로 나온다면 협상 테이블은 차려지기 어렵다. 결국 문 후보 측은 단일화 국면에서 을(乙)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4. 당내 갈등

지난 23일 민주당의 당내 갈등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당초 문 후보는 자신과 함께 경선을 치렀던 손학규ㆍ정세균 고문, 김두관 전 경남지사와 이날 오전 '4자 회동'을 계획했다.

그러나 손 고문이 참석하지 않았고, 문 고문은 부랴부랴 약속을 잡아 점심 때 손 고문과 단독 회동했다. 우상호 공보단장은 "손 고문이 '그동안 문 후보를 드러나지 않게 도왔다.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오전 회동 불참 이유와 관련해 손 고문 측은 "제대로 연락도 오지 않은 상황에서 손 고문이 어떤 지역을 맡을 거라는 식으로 언론에 내보내는 것은 경쟁 후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문 후보 측의 일방통행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방증이다.

문 후보와 손 고문의 전격 회동으로 외형상 당내 갈등은 봉합된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하지만 경선 과정에서 치열하게 대립했던 문 후보와 손 고문간의 앙금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경선 때 손 고문을 보좌했던 일부 측근들이 현재 안 후보 캠프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측이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 이유는 지난달 22일 회동으로 보인다. 조찬을 겸한 1시간30분간의 단독 회동 중 첫 20분가량 문 후보는 손 고문에게 모바일 투표의 정당성을 역설했고, 이에 손 고문의 심기가 많이 불편해졌다는 후문이다.

민주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지난달 16일 당내 경선 직후 문 후보가 손학규 정세균 김두관 예비후보와 만나서 진심 어린 도움을 요청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서로 서먹서먹한 감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文 낮추고 더 낮춰라"


최경호 기자


"지나친 낙관·고자세 문제"
호남 의원들 잇단 쓴소리

지난 21일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 호남 의원들간의 식사자리에서는 비교적 진솔한 말들이 나왔다고 한다. 개인별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의원들은 "문 후보가 변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는 의견을 위기 탈출 해법으로 제시했다.

광주지역 한 의원은 "광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문 후보가 참여정부의 호남 홀대를) 사과했지만 또 사과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했고, 전북지역 한 의원은 "전북도 삐쳐 있다. 상황이 나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1987년 이후 민주당은 최악의 대선을 치르고 있다. 참여정부의 공과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일침을 놨고, 한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도 선대위도 3위 주자임에도 1위 주자로 착각하고 있다"고 안일한 현실인식을 질타했다.

문 후보의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 대한 '자세'를 지적하는 의원도 있었다. 그는 "안 후보와 관련해 '무소속은 안 되니 입당하라'고 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다. 내가 후보가 안 되더라도 안 후보는 민주당 후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진정성 있어 보인다"고 조언했다.

간담회가 끝난 후에도 의원들의 성토는 계속됐다. 몇몇 의원들은 "문 후보는 대선 구도에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이런 자세로는 단일화도 정치 쇄신도 어렵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의원들은 "안 후보로 (단일화가) 되면 진다는 생각은 곤란하다. 문 후보는 바둑 검토실 이야기를 하며 우리의 조언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했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별로 마음에 안 든다"고 털어놓았다.

문 후보는 간담회 마무리 발언을 통해 "바둑을 두면 대국자가 있고 검토실의 관전자가 있다. 검토실이 훨씬 많은 것을 생각하고 그것이 맞는 것 같지만 대국자는 더 많이 생각하고 이미 그것도 다 알고 있다"고 말해 의원들의 지적을 우회적으로 반박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