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청이 수프에서 발암물질 벤조피렌이 검출된 농심 너구리 라면의 전량 회수 결정을 내린 가운데 한 마트에서 시민이 라면을 고르고 있다.
'禍不單行.'(불행은 혼자 다니지 않는다)

요즘 농심을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고사성어다. 무차입 경영으로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외형확장보다는 내실을 다지기로 유명했던 농심이 휘청거리고 있다.

고요한 호수와 같던 농심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은 그동안 효자상품으로 불리던 삼다수, 라면 사업이다. 그룹의 주력을 차지하던 해당 사업들이 연달아 악재를 맞으며 식음료업계의 강자였던 농심의 위상마저 흔들리고 있다.

삼다수 독점 유통권 빼앗겨

농심이 제주 삼다수 유통권을 완전히 잃게 됐다. 대한상사중재원(이하 중재원)이 농심과 제주도개발공사(이하 개발공사) 간 맺었던 삼다수 유통대행계약 유효기간을 12월 14일까지로 판정했기 때문이다.

중재원은 농심이 개발공사를 상대로 낸 중재신청에서 "판매 협약기간이 자동 연장되기 위해서는 구매계획 물량에 대한 원만한 합의가 전제돼야 하지만 개발공사의 요청에도 농심이 구매계획 물량 협의에 응하지 않았다"며 "농심이 원할 경우 영구적으로 계약관계를 유지하도록 한 삼다수 판매 협약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농심이 삼다수 유통권을 독점해온 것은 1998년부터다. 일정 판매량을 달성하면 이듬해 다시 자동으로 유통권을 갖는 조항을 기반으로 계약을 이어왔다.

삼다수에 대한 농심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제주자치도의회가 지난해 12월 개발공사 설치조례 개정을 통해 "제품의 판매 유통에 대한 민간위탁 사업자의 선정은 일반 입찰에 의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부터다.

개발공사는 개정된 조례에 근거, 농심에 삼다수 유통대행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올해 3월에는 우선협상대상자로 광동제약을 선정했다. 이에 농심은 자사 이익을 직접적으로 박탈하는 처분적 조례라며 제주지방법원에 무효확인 소송과 효력정지 신청 등을 제기하며 법적 공방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내려진 중재원의 판정은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데다 단심제로 항소를 제기할 수 없어 농심은 삼다수 유통권을 잃게 됐다.

삼다수를 놓친 농심은 재빨리 새로운 생수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농심은 지난 1일 현재 중국에서 '백산수'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백두산 화산광천수를 가져와 내달부터 국내 시장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또한 기존에 보유했던 웰치, 카프리썬, V8, 파워O2 등 다양한 음료 제품군과 함께 기능성 커피를 출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으로도 기존에 삼다수 독점 유통으로 올렸던 수익을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농심은 삼다수 유통으로 약 1,9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총 매출 1조9,700억원의 10% 수준이고 전체 음료제품 매출의 77%나 차지하는 수치다.

라면 파동에 혼쭐

최근 있었던 발암물질 라면 파동은 빼앗긴 삼다수 유통권보다 더욱 큰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너구리'등 일부 라면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동안 농심을 지탱해오던 라면사업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의 조사결과 농심 라면제품에서 벤조피렌이 검출됐지만 식약청과 농심 측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난달 23일 일부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

해당 언론에 따르면 1급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스프에 포함된 제품은 농심의 봉지라면 '얼큰한 너구리', '순한 너구리'를 비롯해 컵라면 '너구리 큰사발면', '너구리컵', '새우탕 큰사발면', 생생우동 등 6종이다.

이에 식약청은 "라면 스프의 벤조피렌 검출량에 관한 기준이 없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해명을 내놓았고 농심 또한 "식약청의 통보를 받고 생산공정을 2개월간 멈추고 조미료 납품업체를 바꿨다"고 밝혔다. 그러나 증폭된 소비자들의 불만과 국감을 통한 정치권의 공세로 결국 식약청은 벤조피렌이 검출된 농심의 라면 전량을 회수하기로 지난달 25일 결정했다.

벤조피렌 논란에 한 목소리로 대처하던 식약청이 회수 명령을 내리며 농심의 입장만 더욱 곤란해졌다. 오락가락하는 식약청의 반응에 소비자의 불안감이 증폭되며 '믿을 수 있는 식품'만 만든다던 농심의 기업이미지가 급락한 것이다. 급기야 중국, 대만, 홍콩 등 해외에서도 잇따라 검사ㆍ회수명령이 내려지며 농심은 심각한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대해 식음료업계 관계자는 "벤조피렌이 발암물질인 것은 맞지만 사실상 그 수준이 미비한데 농심과 식약청의 어설픈 초기 대응이 화를 불렀다"며 "지난해 하얀국물 라면 사태에 이어 이번 일까지 겪은 이상, 시장 점유율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000억대 과징금 어떡해

삼다수 유통권 상실과 발암물질 라면 파동이 완전히 드러난 악재라면 라면값 담합 과징금 취소 청구소송은 진행 중인 악재다.

공정위는 지난 3월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현 팔도) 등 라면업체 4사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6차례에 걸쳐 라면 가격정보를 교환, 담합했다는 명목으로 총 1,362억4,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중 농심은 최고금액인 1,080억7,000만원의 과징금을 통보받았다. 이에 농심은 공정위가 발송한 의결서에 대한 법리검토를 마치고 서울고등법원에 부당경쟁제한 행위와 경쟁사와의 정보교환 행위에 대한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 취소 청구소송을 지난 8월 제기한 상태다.

만약 과징금 취소 청구소송에서 패하게 될 경우 농심은 지난 9월 우리ㆍ하나은행에서 단기차입금을 조달해 납부한 과징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된다. 과징금이 지난해 농심이 거둔 영업이익(1,101억원)과 유사한 규모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소송에서 패할 경우 지난 한 해 농사를 모두 망치게 되는 셈이다. 설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농심이 이른바 삼재(三災)를 딛고 다시 식음료명가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